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와 대중에 의해 이단자인 여성들이 마녀로 규정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이것이 ‘마녀 재판’이다. 집단 히스테리에 의한 억울한 죽음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마녀 재판이 근 미래의 일본에서 행해진다. 후지TV에서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 중인 <마녀 재판>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여성과 그 사건의 재판에 참여하게 된 배심원들을 둘러 싼 범죄 서스펜스 드라마다. <마녀 재판>에서 마녀로 손가락질 받는 이는 카시와기 쿄코(이시다 유리코)다. 카시와기는 동거 중이던 내연남인 토죠 소이치로(하야카와 준이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 당했다. 토죠 홀딩스 사(社) 회장인 토죠는 후두부를 벽돌로 가격 당한 뒤 불타는 난로 속에 머리부터 처박힌 채 죽었다. 그는 죽기 2주 전 60억 엔에 이르는 유산을 애인인 카시와기에서 남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토죠의 죽음이 유산을 노린 카시와기의 계획된 살인이 아닌가 의심받고 있다. 게다가 카시와기는 10년 전에도 남편을 사고로 잃고 3000만 엔의 보험금을 탄 적이 있어 매스컴과 세간에서는 그녀를 ‘마녀’라 부르며 비난한다.

마녀재판에 모인 각지각색의 사람들

하지만 카시와기는 토죠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살인 사건이라 단정 짓는 검찰 측과 무죄를 주장하는 카시와기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이 재판에 참여할 배심원들이 결정된다. 질문지와 면접, 그리고 추첨을 통해 선택된 배심원은 요시오카 토오루(이쿠타 토마)를 비롯하여 6명의 배심원과 2명의 보충 배심원이다. 무명의 디자이너이자 프리터인 토오루(이쿠타 토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심원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배심원 제도를 비롯하여 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와타베 이즈미(카토 아이)는 유치원생인 외동딸을 둔 평범한 주부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배심원 자리를 꺼린다. 그 외에 중학교 과학 교사인 타도코로 히데오(나카무라 야스히), 캬바쿠라(술집) 호스테스인 오쿠데라 리카(스에나가 하루카), 법학대학원생인 아이바 타쿠(히라카타 겐키), 간병인인 우츠미 노부시게(마츠모토 쥰) 등이 ‘마녀 재판’의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그리고 여기에 토오루의 여자친구이자 카시와기 사건을 취재하는 신문 기자 모토미야 카오리(히가 아이미)까지 이 ‘마녀 재판’에 휩쓸리게 된다.

들어본 적 있습니까? 배심원 컨설턴트!

우리에게는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로 익숙한 배심원 제도는 올해 5월 21일부터 일본에서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재판원 제도’라 불리는 이 일본식 배심원 제도는 영미식 배심원 제도와 재판관에 의한 기존의 참심원 제도가 혼합된 형태다. 그래서 재판의 판결은 재판관과 배심원들 토의 후 다수결로 결정된다. 이들의 선택에 의해 카시와기는 무죄가 될 수도 있고 유죄가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을 수도 있다. 토오루처럼 별 의식 없이 배심원을 맡게 된 이들은 처음엔 단순히 감정에 휘둘리거나 매스컴에 좌우되며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는지 실감하지 못 한다. 그러는 와중에 이들 배심원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금전적으로 곤란함을 겪고 있는 토오루 앞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보내지고 전혀 팔리지 않던 그의 옷이 전부 다 팔려 나간다. 한편, 귀갓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은 타도코로는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결코 알려져서는 안 될 그의 비밀이 담긴 사진이 사방에 놓여 있다.

이는 모두 배심원에게 접근해 판결을 매수하는 ‘배심원 컨설턴트’의 농간이었다. 카시와기의 변호사인 신도 료스케(와타나베 코헤이)에게 의뢰를 받은 의문의 조직이 배심원들의 약점을 이용해 카시와기에게 무죄를 판결하도록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다. 재판이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을 눈치 챈 토오루는 이에 반항해 보지만 각자 치명적인 약점을 잡힌 다른 배심원들의 선택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마녀’ 카시와기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게 될까. 그 이전에 그녀는 정말 토죠를 살해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주장대로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뿐일까. 사건의 전말이 여전히 미궁인 채 지난 주 방송된 4회에서는 지금까지의 전개를 일거에 뒤엎는 반전도 등장했다. <마녀 재판>은 <인간의 증명>, <마왕> 등을 통해 선 굵은 이야기와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선보인 바 있는 마에카와 요이치 작가의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전개는 작가의 명성에 비해 흡입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배심원제 라는 사회적 이슈를 작품 속에 녹아내는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글. 김희주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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