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봐도 어디서 본 듯한, 그래서 뻔하게 느껴지는 배역이 있다. 장르 불문하고 한 번쯤은 등장해서 여주인공 앞에서 깽판을 치는 사채업자가 그렇다. 얼굴보단 “말로 해선 못 알아듣겠구먼”이라는 클리셰로 기억되는 그들은 한 번의 자기 몫을 끝내고 사라진다. MBC <신데렐라맨> 첫 회에서 “자, 그만들 물러가라”라고 말하는 오대산(권상우)에게 “네, 알겠습니다. 네가 뭔데? 마, 괜히 폼 잡다 개망신 당하지 말고 가서 싸던 똥이나 마저 싸라”라는 대사를 적당한 껄렁함과 경상도 억양으로 귀에 착 감기게 구사하던 사채업자 마이산과 그를 연기하는 정우가 인상적인 건 그래서다.

“마이산 캐릭터는 연기하기에 너무 편해요”

“제가 좀 장난기가 심해요.” 사실 굳이 스스로 밝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우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말끝마다, 심지어 “열심히 하는데 시청률이 안 나와서 걱정”이라면서도 ‘큭큭’ 웃음을 터뜨리는 타입이다. “9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엄한 집안에서 자라 “억눌린 걸 학교에서 분출”했노라 자못 비장하게 말하지만 당시 그의 탈선이란 건 고작 수업 땡땡이 정도였으니 오대산과 서유진(윤아)을 괴롭힐 때도 마치 친구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며 낄낄 거리는 고교생 같은 장난기를 보이는 마이산과 정우는 많이 닮았다. 악역에 가까운 그에 대한 관심 담긴 글들이 드라마 게시판에 올라오고, “원래는 오대산의 정체를 알아채고 곤경에 빠뜨리는 역”이었던 마이산이 오대산의 개점을 축하하려고 사장 명패를 선물하다 구박을 당하기까지 하는 귀여운 이미지로 바뀐 건 아마 “마이산 캐릭터는 너무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우의 장난기가 자연스레 드러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산 출신인 그의 착착 감기는 사투리와 숨길 수 없는 장난스러움이 대본 속 캐릭터와 결합해 만들어진 마이산의 자연스러움은 눈에 띄되 정우의 연기 전반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건 단순히 그가 두려움에 망설이면서도 돈을 위해 건우(연정훈)에게 총을 겨누던 MBC <슬픈연가>의 민호나 눈빛만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표현한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경호원처럼 전혀 다른 느낌의 역할 역시 잘 연기해서만은 아니다. “연기보단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해서” 찾은 서울예대 면접에서 “학원에서 시킨 대로 알 파치노와 숀 펜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론 왜 그들 연기가 좋은 건지 모르던” 풋내기가 <7인의 새벽>에서 ‘양아치 3’, <라이터를 켜라>에서 ‘부하 7’ 같은 역할을 거치며 가슴에 품게 된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까’라는 잘 여문 화두는 “3분의 1이 애드리브인” 마이산의 시선처리나 의미 없는 감탄사의 효과적 사용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스페어>에서 마이산처럼 깐죽거리는 성격의 이길도를 또박또박한 표준어로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뭔가 해낼 것 같은 그 나중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래서 정우는 툭하면 땡땡이를 치고 수능 총점보단 당구 ‘다마수’가 높지만 선생님에게 ‘그래도 저 놈은 나중에 뭘 해도 할 거야’란 소리를 듣는 그런 친구를 연상케 한다. 그는 거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다른 아이들을 째려봐도 무시하거나 오히려 덤벼들더라는 별로 멋지지도 않은 무용담을 으쓱 거리며 늘어놓는 아직 철 안든 남자애 같은 모습을 가졌지만 동시에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말하는 내용과 패턴 자체를 바꾸는” 강한 오기도 지녔다. 성격의 장점과 단점이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때, 추진력과 굳은 심지를 통해 그의 장난기와 솔직함은 연예인답지 않은 태도가 아닌 인간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매력은 마이산에 이어 최근 시작한 SBS <녹색마차>의 의리 있는 건달 강석종 역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으니 뭔가 해낼 것 같던 그 나중은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스타일리스트_신지영
Ttrton / 앤듀 / 카아이크만 / T.I FORMAN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