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이라는 공간과 김은숙 작가의 조합을 접했을 때,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결과는 ‘시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다. 그것은 작가가 전작 <파리의 연인>, <온에어> 등을 통해 이국적인 배경 혹은 방송국이라는 커리어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애담 특유의 스타일로 구축해온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진정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작가의 말로 SBS <시티홀>을 그저 단순한 로맨스로 취급할 수 있을까? 시청 말단 공무원 신미래(김선아)는 부시장 조국(차승원)과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시장이 된다. 소시민적 정의감과 상식을 가진 여주인공이 결국 리더가 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선 사랑도 피어나고, 로맨틱 코미디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찰이 자랄 수도 있다. 윤이나 TV평론가와 최지은 <10 아시아> 기자가 <시티홀>을 다시 보았다. /편집자주

SBS <시티홀> 속 인주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인주시민들은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고 타성에 젖어 투표를 하며 ‘좋은 게 좋은 거지’를 입에 달고 산다. <시티홀>의 특이한 점은 인주시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현실 사회의 정치 풍경을 코믹하게 묘사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전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장 선거에 대한 걱정과 음모를 혼잣말로 늘어놓던 민주화(추상미)가 옆에 시민들이 지나가자 생긋 웃으며 ‘개과천선, 승리당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현실 속의 정치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런 상황들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창조된 것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시민의 인식 수준 정도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시티홀>의 정치는 부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정치를 말하는 방식으로 <시티홀>은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우습고, 막장 드라마보다 더욱 막장인 정치 현실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꽤 인상적인 풍자의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이건 본 적이 없는 그런 정치드라마

<시티홀>의 ‘정치’는 ‘시청’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운명을 바꾸는 현실이다.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에 출전할 때까지만 해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짱가와 같은 캐릭터로 코믹한 모습에 방점이 찍혔던 신미래(김선아)는, ‘개인적인 의도’가 ‘정치적인 의도’로 변질되는 것은 순간이며, 그 변화로 인하여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삶까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경험하며 변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인주시라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시티홀>에서 정치는 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단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두드러진 장점으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인 특성마저도, 정치적인 관계 속에 편입된다. 조국(차승원)과 미래 사이에는 분명한 계급차이와 정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그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시티홀>은 ‘시청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훌쩍 뛰어넘는다.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태생에 콤플렉스를 가진 현실주의 정치인과, 세상에 대한 올곧은 시선과 정의감, 진심만으로 바른 정치를 하기 원하는 이상주의 정치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이들의 ‘연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티홀>을 통하여 <제 5공화국>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전형적인 정치드라마나 <영웅시대>와 같은 현대사 미화의 영웅드라마가 아닌,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치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의 상금을 돌려받기 위한 1인 시위를 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가, 삶 속에서의 ‘정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래가 깨달은 것처럼, 개인의 삶과 정치는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시티홀>의 미덕은, 이 간단하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실을 가볍게, 재미있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전해준다는 데 있다.

판타지로라도 만나고 싶은 희망

만든 이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앞으로의 신미래는 이전의 신미래가 아닐 것이다.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이 정치라고 믿는 이상적인 정치인이 있고, 그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깨어지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신미래가 만들어갈 인주시는 분명한 판타지다. 하지만 현실의 어떤 정치인도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신미래처럼 살아야 한다. ‘못 사는 사람 잘 살게, 잘 사는 사람 좀 베풀게’, 그래서 모두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어쩌지? 이젠 저 여자가 안 이상해”라는 조국의 말처럼, 당연한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드라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남아있는 8회 동안 중의적 의미로서 ‘조국의 신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글 윤이나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SBS 은 20세기 중반 의 대표적 저널리스트였던 제임스 레스턴의 말과 함께 시작된다. 그 밖에도 정치에 대한 다양한 격언이 극 초반을 장식하며 일상 속 정치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1회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면서도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인주시청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가 커피를 타들고 시의회 본회의장에 들어갔을 때 화면 하단에 실시간으로 뜨던 4.29 보궐선거 개표율과 당선유력자 명단이었다. 의 김은숙 작가가 방영 전 “정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던 것과 달리 이 기묘한 우연의 일치는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현실 정치의 면면을 비춰낼 거라는 데 대한 예고처럼 보였다.

김은숙-신우철 콤비가 꺼내든 새로운 카드

을 비롯한 ‘연인 시리즈’와 지난해의 까지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던 김은숙-신우철 콤비는 을 통해 흥미로운 카드를 꺼냈다. 이렇다 할 정의감은 없지만 약자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신미래(김선아),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한꺼번에 패스한 천재 관료로 신미래를 이용해 자신의 야심을 구축하려는 조국(차승원), 지방 자산가의 딸이자 구시대적 정치를 답습하는 시의원 민주화(추상미), 민주화의 남편으로 청렴한 공무원인 이정도(이형철) 등 네 명의 주인공은 흔히 예측 가능한 사각관계를 통해 움직이지 않는다. 조국과 신미래는 필요에 의해 손을 잡는 파트너에 가깝고 신미래에게 이정도는 멘토이며, 연민과 애증이 뒤섞인 이정도-민주화의 부부 관계는 복잡하게 얽힌 애정사를 대신해 작품을 이끌어간다.

초반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라는 이벤트로 시선을 모은 뒤 신미래의 1인 시위, 시장의 구속 등 큰 사건들을 터뜨리는 과정에서도 은 소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뻔한 비리 혐의를 두고 “올곧은 반평생”이라며 버티는 시장의 태도와, 낙하산 인사에 차례로 줄서는 시청 공무원들의 행태 묘사 등은 민주화의 말대로 “촌구석 정치가 얼마나 염치없고 터무니없는지”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오로지 이미지만을 위해 재래시장을 찾는 민주화의 캐릭터나 실업계 고교가 혐오시설이라 주장하는 집단 등은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라마와 접목하는 방식이고, 신미래가 1인시위에서 드는 피켓의 영화 포스터 패러디 역시 인터넷에서 종종 보게 되는 정치인 패러디 물과 흡사하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친 감상에 젖기도 하지만 선의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에 대해 주인공의 인간적 매력이나 타고난 재능에 기대어 쉽게 가지만은 않는다는 것과 ‘날로 먹는’ 장면이 없다는 것은 이 갖는 상당한 미덕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매 순간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 작품에 흐르는 에너지의 근원이자 정치의 속성이기도 하다.

“개그 프로는 왜 보나 몰라. 뉴스가 저렇게 웃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 제작진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것 만큼의 화제성이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방송되는 수목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배우들 역시 호연을 펼치지만 이 작품에는 의외로 ‘강력한 한 방’이 없다. “개그 프로는 왜 보나 몰라. 뉴스가 저렇게 웃긴데”라는 조국의 대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의 일부를 알려준다. 요즘 세상에 드라마를 왜 보겠나. 뉴스가 이렇게 스펙터클한데.
글 최지은

글. 윤이나 (TV평론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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