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는 몸 아플 때 약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운동선수가 임산부도 아니고 왜 약을 먹으면 안 돼? 당연히 몸 아프면 먹어야지.

확실해? 이번에 무슨 야구선수가 다른 선수들 약물 복용했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던데?
난리는 지금 내 가슴에서 난다. 그거랑 그건 전혀 다른 거지. 네가 말한 야구선수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해영인데 최근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자기가 활동하던 시기에 약물 복용하던 선수가 있단 걸 말한 거야. 그리고 그 약물은 무슨 감기약 같은 게 아니라 선수의 기록을 향상시켜주는 금지 약물이라 문제가 되는 거고.

기록을 향상시켜주다니? 그걸 먹으면 야구를 잘 하게 되는 거야? 홈런 치고?
물론 내가 금지 약물, 그 중 대표적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고 해서 약물 복용 안 한 이승엽보다 홈런을 잘 치게 되는 건 아니지. 말하자면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은 잘하던 걸 더 잘하게 만드는 약물이라고 할 수 있어. 이해가 잘 안 되려나? 보통 어떤 일을 할 때 물리적으로 가장 힘든 건 역시 체력적인 부분이잖아. 아무리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어느 수준에선 힘에 부치고 많이 지칠수록 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어. 그런데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복용하면 근육의 회복 속도가 빠르거든. 게다가 근육 성장을 돕기 때문에 약물 복용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면 근육 역시 엄청나게 불어나지. 그러면 어떻겠어. 근육의 회복 속도가 빠르니 체력도 좋아지고, 근육이 불어나면 힘 역시 좋아지겠지? 그럼 잘 달리던 사람은 더 빠르게 달리고, 홈런을 잘 때리던 사람은 더 잘 때릴 수 있겠지. 심지어 공을 잘 맞추지만 힘이 모자라서 홈런까진 못 때리던 타자라면 파워 증강을 통해 전혀 새로운 홈런타자가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약물을 좋아하겠네?
약물의 유혹을 이겨내는 선수들이 훨씬 많다는 면에서는 틀리지만 종목마다 골고루 약물을 쓰는 선수들이 있다는 면에선 사실이야. 가장 대표적인 건 과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현재의 로니 콜먼 같은 세계적인 보디빌더들이지. 이 사람들은 근육을 크게 만드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니까 공공연하게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거나 주사로 맞아. 격투기 선수들도 체력과 근력 때문에 약물 복용하는 경우가 있고, 야구에선 우리나라에서 시즌 MVP를 타기도 했던 외국인 용병 리오스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가 테스트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서 구단에서 퇴출된 적이 있어.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도 체력 때문에 아로나민 골드나 삐콤씨 같은 거 먹잖아.
그 두 가지 모두 기본적으로 비타민제고, 우리 식생활에서 비타민을 필요한 만큼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약으로 보충하는 거야. 말 그대로 영양제지. 게다가 비타민은 적정량 이상을 복용하면 몸에서 알아서 배출하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말한 약물은 단기간에 엄청난 신체 능력의 향상을 가져 오거든. 마찬가지로 근육을 키우는데 있어서도 삶은 계란 먹는 거랑 약물 복용을 같은 차원에서 놓고 볼 수는 없지. 그리고 정말 큰 차이는 이들 약물은 나중에 부작용이 생긴다는 거야.

부작용? 그게 아주 심각한 수준인 거야?
생각해봐. 우리 몸이 일을 하고 피로를 느끼고 회복하는 주기가 있다는 건 그게 가장 몸에 무리가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그 주기를 억지로 빠르게 하면 당연히 몸에 문제가 오지 않겠어? 신진대사가 빨라지면서 심박수가 증가하는데 그게 우리 몸이 견디기 어려운 속도면 어떻겠어. 심장질환이 생기겠지? 그 외에도 스테로이드는 피부를 얇고 약하게 만들고 호르몬 이상 분비 때문에 성격까지 포악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이렇게 위험한 걸 선수들에게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 문제가 되는 약물은 그 스테로이드인가 하는 것밖에 없는 거야?
꼭 그렇진 않아. 물론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스테로이드 계열의 아나볼릭 같은 호르몬제지만 신경안정제도 쓰일 때가 있어. 가령 집중력이 필요한 골프의 경우 베타안정제라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서 훨씬 평온한 마음으로 경기하며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위험한 거야?
개인적으로 어떤 약물이든 부작용은 꼭 있다고 믿지만 아직 스테로이드만큼 위험한 뭔가가 있다고는 밝혀지진 않았어.

그럼 그냥 복용해도 되지 않아? 아니, 사실 스테로이든가 하는 것도 본인이 그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좋은 성적 내겠다고 복용하면 말릴 수 없는 거 아닌가? 결국 스포츠란 건 이기려고 하는 거잖아.
그건 기업이 중요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정권에 뇌물을 줘도 된다는 거랑 똑같은 논리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스포츠가 이기거나, 혹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있는 걸로 보는 거야. 하지만 스포츠의 진짜 매력은 순수한 육체와 정신, 지성의 능력을 이용해서 정해진 룰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맞부딪히는 거거든. 박태환의 기록이 위대한 건 순수하게 근육의 힘만으로 물의 저항을 이겨내며 만들었기 때문인 거지. 재능의 차이야 있겠지만 스윙 한 번을 더 연습하고 운동장 한 바퀴라도 더 돈 사람이 우위일 수 있는, 노력에 결과가 비례하는 몇 안 되는 영역이 스포츠인 건데 누군가 약물 같은 편법을 써서 좋은 성적을 내면 정직하게 땀 흘린 선수들의 박탈감이 얼마나 크겠어.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데 왜 이제야 밝혀진 거야?
소홀했던 거지. 어쩌면 좋은 기록과 승리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걸로 생각했던 걸 수도 있고. 사실 경쟁 외의 가치를 요구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당하고 밀려나는 게 낯선 일은 아니잖아.

사진제공_ 롯데 자이언츠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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