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진들의 역할이 예전하고 달라지겠다. 어떤 캐릭터를 잡느냐보다 ‘박명수의 기습 공격’처럼 아이템을 낸다거나, 자발적으로 에피소드를 즐겨야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올 거 같다.
김태호:
그런 게 좋다. 할 거면 즐겁게 해야 한다. ‘프로젝트 런어웨이’때 박명수는 처음에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정말 땅바닥에 앉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1등을 하게 됐는데, 그런 의외의 과정이 훨씬 재밌다. 박명수가 4년 동안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처음 봤고. 자발적으로 하면서 정말 좋아하는 리액션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출연자의 감정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도 일종의 공익 아닐까”

그 과정에서 굉장히 독특한 순간이 나오는 것 같다. ‘Yes or No’에서 전진이 자장면을 먹으면서 기뻐하는 장면은 꼭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저 자장면을 먹는 장면일 뿐이었는데.
김태호:
그만큼 전진의 감정이 크게 느껴진 부분이 있을 거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의 역할을 무시 못 할 거다. 우리 카메라팀이 5년째 함께 하다 보니까 우리에게 어떤 그림이 가장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안다. 예를 들어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에서 박명수와 노홍철이 자전거를 타고 도망갈 때는 카메라맨도 자전거를 타고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든 채 바로 옆에서 찍었다. 그리고 박명수가 돈가방을 들고 요트에 있는데 멤버들이 숨어서 오다 유재석이 멀리서 포커스가 딱 잡히는 장면도 카메라 감독이 임의적으로 찍은 거다.

<무한도전>만의 제작 시스템이 갖춰진다고 할 수 있을까. ‘박명수의 기습 공격’의 경우는 하루 사이에 도와줄 식당을 정하고, 수십 명을 섭외하고, 그들을 컨트롤한다.
김태호:
작년만 해도 <무한도전>에 대해서 1년 동안 어떻게 가야 한다는 큰 계획이 있었는데, 올해는 다 오픈해놓고 함께 반응을 보고 간다. 계획은 없고 느낌은 있는 건데,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의 50%는 회의실에서 채우고, 나머지 50%는 현장에서 함께 채워 나간다. 나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스토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Yes or No’는 각자 출연자들이 나눠져 있으니까 그 상황마다 나에게 정보를 보내고, 그러면 내가 그 상황을 파악하면서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편집도 이제 조연출이 1년 정도 함께 해서 맡기게 된 부분도 있다.

‘Yes or No’는 하루 사이에 굉장히 많은 경우의 수가 나왔다. 어떻게 준비했나.
김태호: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다. ‘Yes or No’가 네다섯 단계니까 32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점점 넓혀갔다. 오히려 비행기표 취소하는 게 어려웠다. (웃음) 이런 걸 찍을 때 특히 제작진의 역량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누군가를 즉석으로 섭외하는 건 4년 동안 같은 작가들과 출연자들이어서 수월하게 진행되는 거니까. 늘 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뭔가 사고 질문하고 인터뷰하는 게 즉흥성인데, 이미 익숙하다 보니까 그런 게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면서 요즘 <무한도전>은 굉장히 컴팩트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복잡한 이야기인데도 크게 벌리지 않고 하루 사이에 힘주지 않고 찍는 것 같다.
김태호:
예전엔 조그만 소재로 크게 뻥튀기를 하는 작업이었다면, 요즘은 복잡한 걸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 요즘 우리 분위기는 독립 편성된 3년 전과 비슷한 에너지가 있다. ‘박명수의 기습 공격’도 공익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모두가 즐거운 방법을 찾자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식의 솔루션 프로그램을 할 때 도움 받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치부까지 들춰내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그러는 건 싫었다. 운동하는 학생들도 실컷 먹고, 파는 사람도 실컷 팔고. 우리는 그 사이의 매개체 역할만 한 거다. 모두가 즐거운 것으로 공익적인 걸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청률 1% 떨어졌다고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 분위기가 요즘의 <무한도전>을 독특한 지점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리얼리티 쇼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을 위한 새로운 시나리오와 제작 시스템을 가진 무엇 아닌가.
김태호:
<무한도전>은 작가주의 예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PD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영화 <배트맨>도 팀 버튼이 찍을 때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할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나. 그런 것처럼 <무한도전>도 지금 출연진과 제작진이라면 PD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스토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예전에 버라이어티 쇼에 꼭 러브라인을 넣은 것도 스토리를 끌고 가기 위해서였는데, 그런 걸 벗어나려면 새로운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현장에서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소재 자체는 고갈될 일이 없다. 그걸 어떻게 끌고 갈 플롯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현실적인 제약 같은 건 없나.
김태호:
일단 아이템의 공개 문제다. 우리는 아이템이 늘 변하는데다 출연자들이 아이템을 몰라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감춰야 한다. 패리스 힐튼이 왔을 때도 원래는 노홍철이 패리스 힐튼인 줄 모르고 소개팅을 하는 거였는데, 언론에 아이템이 공개되면서 할 수 없었다. 우리로서는 알 권리보다는 시청자들이 볼 권리가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시청률에 만족한다. 1% 떨어졌다고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웃음)

제작상의 어려움은 없나.
김태호:
언제나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녹화 바로 전날 며칠만 더 준비하면 될 거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준비가 반 밖에 안 돼서 현장에서 멤버들에게 기댈 때도 있다. 예전에는 그걸 위해 노력도 했는데, 이제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게 제일 아쉽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래도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무한도전>을 계속 끌고 왔다. 앞으로 <무한도전>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나.
김태호:
글쎄… 하고 싶은 건 많다. 소재는 늘 많으니까. 그걸 담아낼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필요한 거고. 다만, <무한도전>이 다른 예능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예능과는 다른 예능.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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