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이른바 ‘스타 PD’다. 물론 주철환과 김영희처럼, MBC 예능국에는 늘 스타 PD가 있었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그들과는 또 다른 영역의 스타다. 그는 입은 옷 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패셔니스타고, 한국의 예능 PD로서는 유례없을 만큼 ‘결혼설’ 기사가 난 셀러브리티다. <무한도전>의 팬들은 그를 연출가라기보다는 ‘제 7의 멤버’처럼 받아들이고, 그는 <무한도전>의 자막을 통해 혹은 자신의 미니홈피와 디씨 인사이드의 ‘<무한도전> 갤러리’에 글을 남기며 팬과 직접 소통한다. 과거의 선배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지고, 대중문화에 마니아적인 자세를 가진 세대가 방송사에 입사하기 시작할 때,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이어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김태호 PD가 등장했다.

살아있는 쇼를 움직이게 하는 조물주

그러나 지금 김태호 PD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치는 단지 그의 패션이나 개성 있는 퍼스낼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퍼스낼리티가 <무한도전>에 그대로 녹아들어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와 <무한도전>이 따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태호가 2002년 입사한 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상상원정대’를 잠시 연출한 것을 빼면 계속 <무한도전>만 연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교체되지 않고 <무한도전>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설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놀리는 <무한도전> 특유의 분위기는 그의 ‘궁서체 자막’에서 틀이 잡혔고, 지난 5년여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한도전>의 콘셉트는 이미 3년 전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여행을 떠나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던 그의 비전에서 시작됐다.

물론 <무한도전>은 김태호 PD의 것이 아니다. 요즘 <무한도전>은 ‘하루 만에 세계여행’처럼 출연자들이 수도권 곳곳을 누비면 프로그램 연출의 일부는 ‘영재 PD’인 제영재 PD가 담당한다. ‘박명수의 기습공격’은 박명수가 아이디어를 내고, 출연자들이 섭외를 담당했다. 한 명의 PD나 MC의 이름만을 내세우기엔, 지금 <무한도전>은 1주짜리 아이템부터 ‘달력 만들기’ 같은 1년짜리 아이템까지 얽히고, 그 스케줄에 따라 모든 제작진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김태호 PD의 퍼스낼리티는 바로 그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한도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는 <무한도전>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시켰다. 카메라에 보이는 출연자들이 전부였던 것 같았던 오락 프로그램은 어느새 PD와 코디, 매니저가 카메라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쇼가 됐고, 이제는 제작진이나 ‘돌+아이 컨테스트’처럼 일반인까지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 그 다음을 설계하다

그 사이 <무한도전>은 몸개그를 주로 하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한 명마다 다양한 별명이 있는 캐릭터 쇼로, 런웨이에 서는 리얼리티 쇼로, ‘Yes or No’처럼 제작진이 정해놓은 조건 안에서 출연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어드벤처 게임으로 변해간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후발 주자들이 <무한도전>과 경쟁중인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이 쇼가 마치 생물처럼 끝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계속 <무한도전>의 세계를 넓혀간다는데 있다. 김태호 PD는 오락 프로그램의 연출자의 관점과 스타일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디렉터’다.

특히 최근 김태호 PD의 선택은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쇼의 미래와 맞물려 더욱 흥미롭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이 절정을 지나 조작 논란이 일어날 때 쯤, <무한도전>은 전국체전과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는 ‘리얼 월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리얼리티 쇼 뒤에 이어진 ‘Yes or No’는 출연자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예스와 노의 선택에 따라 제작진이 짜 놓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출연자들은 게임판의 말처럼 미션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유재석마저도 진행자가 아니라 다음 스케줄에 쫓겨 빨리 미션을 수행하려는 인간적인 모습이 두드러진다. 전진이 하루 종일 고생 끝에 미션이었던 자장면 먹기를 하며 영화의 클라이막스 같은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낸 건 제작진이 짜놓은 설계도와 예측할 수 없는 출연자들의 감정이 결합한 독특한 결과물이다. 김태호 PD는 MC가 아닌 제작진이, 출연진의 애드립이 아닌 제작진의 설계도가 쇼를 끌고 나가는 새로운 방식의 쇼를 조율해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작가주의’를 말할 수 있다면, 김태호 PD는 분명히 그 중 한 사람에 들어갈 것이다.

김태호를 보면 예능의 연대기가 보인다

지금 김태호 PD가 ‘셀러브리티이자 패셔니스타인 예능PD’라는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원천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에 대한 관심은 곧 그의 조율 아래 만들어질 새로운 <무한도전>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카메라 앞에서 화려한 진행으로 시청자를 열광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김태호 PD는 카메라 뒤에서 특유의 궁서체 자막과 그 다음을 예측하기 어려운 비전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기본처럼 자리 잡은 지금, 김태호 PD는 그 다음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그리고 김태호 PD는 다시 새로운 해답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박명수의 기습공격’에서 출연자와 PD, 제작진을 넘어 다른 연예인들과 일반인들마저 <무한도전>의 출연자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불황에 빠진 식당의 음식들을 마구 먹어치우면서 ‘무한도전식’ 난장을 벌이기 시작하자, 식당 주인과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해진다. 그렇게 쇼는 현실을 놀이판으로 만들었다. 한 명의 PD가 생각한 쇼가 6명의 출연자로, 그들의 스태프로, 다시 바깥의 사람들로 확장된다. 그리고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은 그 때마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셀러브리티이자 패셔니스타이며 작가인 예능 PD는 또 무엇으로 우릴 놀라게 할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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