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 오락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코미디, 토크쇼, 버라이어티 쇼에서 모두 정상을 경험했다. 대상도 탈만큼 탔다. 최고의 MC들이 그의 ‘라인’임을 자처한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이경규는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

이홍렬 : 이경규가 이주일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개그맨. 이홍렬은 이경규를 적극적으로 추천, 이경규가 본격적인 개그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이경규는 1981년 제 1회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인기상을 수상했지만, 사투리가 심한데다 “아이디어 보다는 연기력”을, “토크 보다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호하던 당시 분위기 때문에 인기를 얻기 힘들었다. 이경규가 중국인 분장, 눈알 굴리기, 쿵푸 등 사투리가 드러나지 않는 분장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던 것도 당시 개그 트렌드가 한몫했다. 이경규는 이런 노력으로 ‘짜짜로니’ CF에도 출연하며 개그맨으로 안착한다.

이문세 : 1980~1990년대 밀리언셀러 가수이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로 가요계를 지배했던 가수. 이경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주말 공개방송에 출연, 편집이 불가능할 만큼 “저 다음 주에도 나옵니다”라는 말을 반복해 고정출연자로 자리 잡았다. 이경규는 이후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며 출연에 대한 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는데, 생계 문제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대본 위주의 코미디가 대세이던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시도. 이를 계기로 이경규는 버라이어티 쇼로 영역을 넓혔고, 코미디 쇼에서 버라이어티 쇼로 변신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자리를 잡는다.

김영희 : 이경규와 동갑내기인 MBC PD로, ‘몰래 카메라’를 만들었다. 이 최초의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이경규는 자연스럽게 버라이어티 쇼가 득세한 1990년대에 적응했다. 또한 이경규는 김영희 PD가 연출한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버라이어티 쇼와 공익을 결합, 전 세대에 어필하는 최고의 MC가 됐다. ‘몰래 카메라’의 얄미운 MC와 ‘이경규가 간다’의 공익적, 혹은 교육적인 면모는 이후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과 SBS <스타주니어 붕어빵>까지 이어지는 그의 두 가지 모습. 하지만 이경규는 ‘몰래 카메라’에서 연예인을 속이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어색한 모습을 보이면 방송을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아” 촬영장에서 화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이는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경규는 ‘몰래 카메라’ 촬영 당시 “관음증과 구별돼야 하기 때문에” 연예인이 혼자 있는 장소에서는 촬영을 하지 않는 등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기타노 다케시 : 일본의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 이경규의 롤모델이다. 또한 이경규는 1998년부터 1년간의 일본 유학 시절을 자신의 터닝 포인트로 꼽는다. ‘이경규가 간다’ 진행 당시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까지 듣고 자신의 이미지가 재미없게 변하는 것을 걱정했던 이경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팬의 입장”으로 타인의 코미디를 봤고, 50대 코미디언이 여전히 정상권을 지키는 것에 큰 자극을 받았다. 귀국 후 이경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2000년대 이경규’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형기 : MC. 이경규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건강보감’, ‘이경규가 간다’, ‘대단한 도전’ 등을 함께 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이경규는 개그 스타일은 유지하되, 포맷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학 전 이경규는 ‘몰래 카메라’와 ‘이경규가 간다’ 등 혼자 진행하는 코너에 강점을 보인 반면, ‘건강보감’, ‘대단한 도전’부터는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 쇼처럼 여러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했다. 또한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조형기를 통해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키워냈다. 이런 남자들의 버라이어티 쇼는 이후 SBS <라인업>과 ‘남자의 자격’까지 이어진다. 또한 월드컵을 버라이어티 쇼에 접목한 ‘이경규가 간다’는 그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디어를 낸 코너. 이때부터 이경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팀을 꾸리고,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기획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의 자기 혁신은 MBC <연예대상>의 대상 2연패로 이어졌다.

강호동 : 이경규가 발탁하고, 이경규가 결혼식 주례를 본 후배 MC. 이경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공개방송에 나온 강호동의 개그에 잠이 확 깰 정도로 인상을 받아 그가 씨름을 관둔 뒤, 코미디를 권유했다. 이경규는 당시 운동선수가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고. 강호동은 이경규에 대해 “MC계의 신, 도사, 박사다. 단지 짜준 대로 진행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획을 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경규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 강호동-유재석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차태현 :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 <복면달호>에 출연한 배우. 당시 차태현은 “이경규가 연출을 하지 않는” 사실을 안 뒤 시나리오를 읽어봤고, 출연을 결정한 뒤에는 박중훈에게 “너 많이 어렵나보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물론 이경규의 딸 예림이 마저 “아빠, <복수혈전>이 뭐야?”라고 물었던 <복수혈전>의 실패 때문. 이경규는 <복수혈전> 이후 한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이경규가 계속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방송은 흘러가면 끝이지만 영화는 자기 것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이경규를 지탱하는 것이 명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경규는 동물 중에서도 외롭게 살아가며 먹이를 물어뜯는 호랑이를 가장 좋아한다. 그는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 출연 당시 영화 이야기를 흘리며 눈물을 흘렸다가 편집을 부탁하기도 했다.

김구라 : 이경규와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현재 출연 중인 방송인. ‘돌아온 몰래 카메라’가 끝난 뒤, 이경규는 SBS <라인업>,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간다 투어’ 등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에 적응하려 했다. 당시 새롭게 부상 중이었던 김구라는 그의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젊은 피였던 셈. 그러나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 해도 MBC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을 진짜로 패션쇼 무대 위에 세웠고, KBS ‘1박 2일’은 혹한의 추위에도 출연자들을 야외에서 재우는 와중에 토크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 정도로는 이 변화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들은 연이어 폐지됐고, 이경규 위기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국진 : ‘남자의 자격’, <스타주니어 붕어빵>에 함께 출연 중인 MC. <라인업>과 ‘간다 투어’의 실패 뒤에도, 이경규는 프로그램의 틀을 바꾸지는 않았다. <스타 주니어 붕어빵>은 MBC <전파 견문록>, ‘남자의 자격’은 ‘대단한 도전’과 KBS <그랑프리쇼 여러분>의 ‘불량아빠 클럽’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신 이경규는 자신의 캐릭터를 바꿨다. MBC <명랑히어로>의 초반에는 은근슬쩍 고정 출연자가 되려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았고, SBS <절친노트>에서는 그가 잘못한 후배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김국진에게 구박받는 모습은 이런 이미지 변신의 결과. 또한 그는 ‘남자의 자격’에서 김용만, 조형기, 김구라 등 기존의 팀 대신 김국진, 김성민 등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다. 호랑이는 이빨이 빠지면 끝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빨이 흔들거릴 때 지혜가 늘어난다. 그 지혜로, 그는 2009년에도 살아남았다.

이예림 : 이경규의 딸. 예림은 이경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키워드다. 이경규가 ‘불량 아빠클럽’을 진행한 것은 그가 평소에 딸에게 못다 한 사랑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였고, 그가 <전파 견문록>을 통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예림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매일 아침 예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이경규는 딸에 대한 애정을 방송에 끌어들이면서 경쟁자들이 아직 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냈다. 자신의 인생과 방송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것이 방송을 통해 새로운 재미로 이어지는 대가의 새로운 경지. 물론, 요즘 이경규는 “내가 만드는 게 트렌드가 돼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 달리 트렌드를 만들기 보다는 수용하는 쪽에 있다. 하지만 이경규는 바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 혁신을 통해 지금도 일요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한다. 그는 가늘고 길게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굵고 길게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어뜯고, 물어뜯기고, 비난하고, 비난당하면서도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것도 앞을 바라보면서.

Who is next
20여년 전 ‘몰래 카메라’에서 이경규를 역으로 속였던 김혜자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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