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끔찍하고 괴로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자살을 해야겠으니 방 안에 불을 질러 달라고 누군가 부탁했습니다. 도와 줄 사람이 너 밖에 없다고, 제발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이러지 말자고 울면서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이미 세상과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린 그 사람의 무력감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전화소리에 깨어났습니다. 휴- 그렇게 끝나버려서 정말 다행이었던 꿈이었습니다. 전화 속 친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어…” 눈을 비비고 TV를 틀었습니다. 거기엔 깰 수도 없는 진짜 악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위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그 땅을 향해 스스로 몸을 던져 귀환했습니다.

지난 2002년을 돌이켜 보면 과연 그런 시간이 존재했나 싶을 만큼 아련합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했고, 광화문광장과 거리에 넘쳐나는 붉은 물결을 보며 축제의 뜻을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런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MBC <네 멋대로 해라>가 시작했습니다. 왕자님도 공주님도 없는 그 드라마 안에서 쓰레기처럼 살던 소매치기 남자가 사랑을 합니다. 그러다가 죽을병에 걸립니다. 하지만 세상이 자신을 버려도 남자는 ‘복수’의 칼날을 가는 대신 ‘오늘을 사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 드라마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매일 밤 홍대 술집에 모였습니다. 술잔을 나누며 전경과 복수를 그리고 노무현을 이야기 했습니다. 은수저도 금팔찌도 없이 태어났지만 노력과 깡으로 살아온, 썩은 물결을 맨몸으로 거슬러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 젊은 남자를 말하며 21세기에 대한 작은 희망들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의 마지막, 노무현 후보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마음먹고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이 나라가 부끄럽지 않았던, 이 땅에 사는 즐거움을 발견했던 해였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새로운 세기의 시작은 그렇게 막연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증거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7년 후,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보며 한숨을 내쉽니다.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 읊조리며 막연하지만 분명한 절망의 증거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등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떠났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그렇게 가고, 염치없는 자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비보를 접하고 오랜만에 그 뜨거웠던 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사람의 답장은 짧고 쓸쓸했습니다. “그러게… 담배 한대를 못 피고 갔네”

마지막 담배 한 가치를 못 피우고 그 사람은 갔습니다. 잘려 나가고, 뽑히고, 기어이 스스로 소멸해버린 꿈. 지금 우리가 꿀 수 있는 것은 악몽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폐허의 도시’에서 보내는 비통한 타전입니다. 부디, 마지막 가는 길은 편히 가세요. 당신이 등장 할 꿈은 더 이상, 이 땅에 없습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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