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달콤한 스파이>와 <메리 대구 공방전>, 그리고 <내조의 여왕>. 이 세 작품을 한 사람이 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동선 감독에 대한 설명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는 작품마다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을 시도하고, 그 안에서 개성 있는 캐릭터와 신선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줄 아는 흔치 않은 감독이다. 장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던 그는 왜 주부들의 내조 이야기를 선택했을까. 드라마를 2회 남겨놓은 시점에서, 고동선 감독이 생각하는 <내조의 여왕>에 대해 들었다.

<내조의 여왕>은 전작들과 다르게 중년 남녀의 현실적인 삶의 공간을 무대로 한다. 이런 드라마를 하게 된 이유는.
고동선:
처음에는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획을 한 김승모 PD가 재밌는 거라고 (웃음) 다시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보니까 고교 동창생의 관계부터 회사나 부부의 인간관계까지 할 이야기가 많았다. 대본도 훌륭해서 인간적 진실을 파헤칠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제작 무산으로 서둘러 작업하게 된 것도 있고.

“등장한 부부들에게 나름의 마무리를 주고 끝내고 싶다”

내조를 단지 아내의 남편 뒷바라지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회사 일에 매달리는 관점으로 풀어내는 게 흥미로웠다.
고동선:
전에 <눈으로 말해요>라는 드라마를 하면서 가정과 회사 이야기를 연결시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회사와 평강회의 역학 관계를 함께 다룰 수 있겠다 싶었다. <내조의 여왕>은 아줌마 드라마도, 회사 이야기도 아니다. 회사가 회사로만 돌아가지 않고, 아줌마 세계가 아줌마 세계로만 돌아가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게 차별점이다.

소현이와 태준이의 이혼문제처럼 사적인 게 공적인 문제가 되고, 다시 공적인 문제가 사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고동선:
그렇게 느꼈다면 테마가 잘 전달된 거라고 본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진실을 판단할 때는 한 인간의 공과 사를 모두 판단해야 한다. 그냥 볼 때는 회사에 출근 안하면 불성실하다고 하지만, 그의 사적인 부분을 보면 그 이유만은 아닐 수도 있다. 소현이의 스캔들도 공적으로 보면 사장 부인이 말단 직원과 놀아난다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다른 사연이 있었던 거고. 공사 구분은 법률적인 판단일 뿐이고, 공사가 구분되기는 힘들다. 드라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한 가지 현실만 명쾌하게 그려내는 것만이 인간의 진실은 아니다.

그런 점이 흥미로웠다. 천지애와 온달수처럼 사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 소현과 태준처럼 이혼하고 나서 편해지는 사이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행복에 대해 강요하지 않고 각각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게 좋았다.
고동선:
행복은 아름다움에 대한 만족이다. 가난하게 살면 가난하게 사는 대로, 부유하게 살면 부유하게 사는 대로 자신의 미학적인 만족감을 채우는 삶을 살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과연 난 아름다운 것을 보며 행복하게 사는 걸까? 그런 정서적인 만족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었다. 삶을 어떠한 관점에서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날 때도 여러 부부들의 이야기에 모두 나름의 마무리를 주고 싶다.

그래서 모든 인물에게 각자의 사는 방식을 제시하는 건가. 하참 대리 부부나 갤러리의 큐레이터처럼 비중이 크지 않은 배역에도 각자의 이야기를 부여했다.
고동선:
그건 내 세계관일 수 있는데, 세상은 주연만 갖고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도 세상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한 컷을 찍더라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하참 대리 부부도 처음에는 비중이 작았는데 점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냥 불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을 파헤치는 부분에서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했다는 게 흥미롭다. 지애와 달수를 뺀 네 명의 주인공이 모두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고동선:
캐릭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심리학적인 분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태준이가 부모가 시키는 일에 관해 무조건 반감을 가지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고, 봉순이가 준혁이에게 순종적인 것도 죄책감과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다. 달수와 지애도 사실 행복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달수는 늘 문제를 일으키면 지애가 해결해주니까 거기에 안주하면서 이게 내가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고, 지애도 자기가 달수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니라고 애써 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등장인물들이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재의 삶에 불안해한다.
고동선:
사람의 현재는 과거를 잊는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그래서 관점의 문제가 된다. 불행했던 삼각관계가 추억이 될 수도, 낭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열린 감각과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사람에게 단맛 짠맛이 모두 필요하듯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순간들을 즐길 줄 알아야 행복하다.

<내조의 여왕>도 다양한 맛이 있는 드라마다. 멜로, 코미디, 서스펜스가 모두 뒤섞였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하고.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나.
고동선:
나하고 안 맞는다고 생각한 걸 해서 좋았던 거 같다. (웃음) 쉽거나 평범한 소재를 재미있게 푸는 작가와 프로듀서가 나에게 그런 권유를 한 건 내가 그런 걸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거라고 본다. 처음에는 잘못하면 그냥 불륜 드라마처럼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작가와 내가 서로 상호 보완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것도 아이러닌데, 꼭 자기 마음에 드는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웃음)

전형적인 요소들이 드라마 내용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재밌었다. 카메오들의 코미디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와 연결되는 부분들이 특히 그랬다.
고동선:
드라마를 시작할 때 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사람도 어떤 사람인가라는 설정을 하고 들어갔다. 카메오도 마찬가지다. 최양락의 경우 우연히 택시에서 만난 손님인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예전에 봉순이가 상담했던 성형외과 의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사람이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신채 택시를 탄 건 가정불화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러면 이 사람이 집에서 쫓겨난 남자가 돼서 찜질방으로 갔다가 준혁이를 만날 수도 있다. 스토리의 전개를 앞의 이야기 안에서 끌어내려고 했던 부분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영상도 <메리 대구 공방전>과는 달랐다. 이야기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느낌이었는데.
고동선:
<메리 대구 공방전>은 진실이 있지 현실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현실은 드러나지 않게 했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은 영상에서 너무 뭔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카메라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는 건 안하려고 했다. 내용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거지 내용이 스타일을 받쳐주는 게 아니니까. 시청자와 쉽고 단순하게 대화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드라마가 필요한 건 사람을 이해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

특히 인물간의 갈등에서 인물의 작은 움직임이나 편집만으로도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고동선:
예전에 선배들이 서스펜스는 어떤 드라마든 필수 요소라는 말도 했었는데, 나는 그게 이야기가 반드시 내가 생각한대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작가가 어떤 결말을 예상하는 것 보다는 인물을 따라가면서 어떤 변수로 인해 스토리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둘이 어떤 대화를 해서 눈빛이 통해야 한다가 아니라, 둘이 이런 대사를 하면 눈빛이 통할까라는 물음을 가져야 한다. 그게 인생에 대한 내 관점이기도 하다. 좋은 일 있으면 나쁜 일 있고. 그렇게 예상할 수 없으니까 서스펜스가 생기는 거 아닐까. 인생이나 이야기나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캐릭터가 전형적이지 않다. 태준이도 전형적인 재벌 2세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
고동선: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그 사람의 인간적인 진실이 무엇인가 발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캐릭터 해석에 대해 배우들과 어떻게 대화했나.
고동선:
김남주는 대본 해석에서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다만 코믹 연기로 변신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는데, 매번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됐다. 윤상현도 일일이 알려주기 보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게 했다. 선우선은 아직 TV 연기가 익숙하지는 않은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표정과 흡입력이 있어서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도 매력이 풍부했다. 최철호는 본인이 준비도 철저했고, 대본 해석이 뛰어났다. 작품 안에서 굉장히 폭 넓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굉장히 잘 했다. 지금까지 묻혀있는 게 아까웠다.

이 작품을 하면서 새롭게 얻게 된 것들이 있을 것 같다.
고동선:
하면서 내 뜻대로 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는 걸 알았다. (웃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도 포용하거나, 받아들이면서 발전할 수 있다. 효도르를 카메오로 출연하도록 계획한 건 아니지만 내가 효도르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풀까 생각하다 얻게 되는 게 있는 것처럼. 인생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그걸 방해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조건 내 이야기만 하겠다는 것도 집착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배우와 작가, 기획자가 다 조화롭게 만들 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내조의 여왕>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해보고 싶어졌나.
고동선:
항상 했던 것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은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인생관은 누구와 하든 계속 반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가 필요한 건, 사람에 대한 폭과 깊이를 넓게 해나가면서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