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한류스타 권상우에 소녀시대 윤아까지 가세한 MBC 은 떠들썩한 첫 인사가 끝난 이후도 여전히 첫방송 시청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화 를 차용한 듯한 인물 설정은 새롭진 않아도 변주할 구석이 많다. 동대문에서 성공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대산(권상우)과 유진(윤아)의 만남은 다소 식상하지만 진부한 설정을 얼마든지 재미있게 요리할 수 있는 것도 드라마의 힘이다. 그러나 현재 은 권상우의 1인 2역 이상의 화제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 파장이 임박한 동대문 시장처럼 쓸쓸하게 문을 닫을 것인지, 밤새도록 활기 넘치는 동대문 시장처럼 문전성시를 이룰 수 있을지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점검했다. /편집자주

MBC <신데렐라맨>에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 하나는 동대문 의류시장의 세계고, 다른 하나는 소피아 어패럴로 대표되는 브랜드의 세계다. 적어도 이 드라마 안에서 전자는 후자에게 항상 빚을 지고 있다. 원본을 베낀 일종의 짝퉁이기 때문이다. 비록 동대문의 상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떳떳하지만 결국 이 두 세계는 동등하지 못한 비대칭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길이가 다른 다리를 가진 사람의 걸음처럼 드라마를 뒤뚱거리게 하는 원인이다.

명품과 짝퉁의 세계, 진짜와 흉내내기

동대문에서 소매상을 하는 대산(권상우)이 디자인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하는 일은 명품 의류매장에 들어가 제품들 사진을 몰래 찍어 아는 디자이너에게 보내 카피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피아 어패럴 후계자 준희의 대역을 하며 드라마의 기본 플롯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산은 말하자면 자신이 술집 아가씨들에게 파는 가짜 명품처럼 준희의 이미테이션이 되는 것이다. 대산은 준희의 역할을 하지만 준희는 대산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짝퉁은 명품인 척 할 필요가 있지만 명품은 짝퉁인 척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단순히 노력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다. 가령 대산이 준희 대역으로 처음 활약했던 프랑스 관계자들과의 동대문 투어에서 준희 이상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흉내 내는 입장에서 잘 한 것일 뿐이다. 즉 본격화된 후계자 경쟁에서 대산이 의외의 능력을 발휘해 재민(송창의)에게 승리한다 해도 결국 그 결과는 그걸 준희가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대산이 만들어 가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개개의 흥미로운 소동은 될 수 있을지언정 동대문을 보며 “넌 내 거”라 외치는 한 젊은이의 욕망이 실현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보기엔 맥이 빠진다.

디자이너 유진(윤아)을 통해 매개되는 동대문과 소피아 어패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잘 둘러보면 값싼 원단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고, 유행의 유통과 소비가 스피디한 동대문은 유명 브랜드와는 ‘다른’ 시장이다. 하지만 그 빠르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유진의 신상품 디자인을 카피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순간 그곳은 브랜드 시장에 원죄를 진 ‘틀린’ 시장이 된다. 때문에 대산과 유진을 둘러싼 시장통의 이모, 삼촌, 누나, 동생은 그저 민폐 캐릭터가 될 뿐이고, 그들이 보여주는 동대문의 생리는 나름의 구경거리는 될지언정 소피아 어패럴과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패션을 창조해낼 잠재력을 보여주진 못한다. 즉 현재로선 동대문 도매상 딸 유진의 입지전적 디자이너 성공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동대문 시장의 구조 안에서 신선한 무언가가 생산될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어설픈 짜깁기가 아닌 리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신데렐라맨>은 서로 다른 두 패션 시장과 그 안의 사람들을 다루지만 그 둘이 만났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사건과 패션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이 드라마는 아랫동네 동대문 출신 대산과 유진이 윗동네 소피아 어패럴에서 재민과 세은(한은정)을 만나 그 동네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룰 뿐이다. 때문에 방영 분량의 반을 채우는 동대문의 풍경은 그냥 풍경에 그칠 뿐,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질 못한다. 말하자면 전체에서 찢겨져 지저분하게 너풀거리는 옷감과도 같다. 그렇게 너풀거리며 어느새 이 드라마도 막 반환점을 돌았다. 유진이 패션쇼에서 찢어진 치마를 억지로 꿰매는 대신 말아 올려 자연스러우면서도 깔끔한 매무새를 만들었던 것처럼 <신데렐라맨> 역시 그 찢겨진 틈새를 처리할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글 위근우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는 사실, 보이지 않는 계급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21세기에 매우 어울리는 텍스트다. ‘얼굴이 같다’는 외형적인 특징만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MBC <신데렐라맨>은 이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소피아 어패럴 사장의 차남인 이준희(권상우)와 동대문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양아치 오대산(권상우)의 자리를 바꾼다. 단, 대산만 준희의 자리로 가고, 준희는 대산의 자리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신데렐라맨>의 자리 바꾸기의 핵심이다. 이 차이는 매우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의 기본적인 밑바탕을 흔든다.

왕자는 거지가 되지 않는 자리 바꾸기

대산은 준희가 될 수 있지만, 준희는 대산이 될 수 없다. 대산이 준희의 대역을 맡게 되는 원인인 준희의 병은 준희로 하여금 대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극 중에서 스스로의 캐릭터를 드러낼 시간마저 빼앗는다. 세상만사가 귀찮은 듯 까칠하게 굴며,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일관하던 준희가 병을 치료하겠다며 홀연히 사라진 뒤, 그 자리에는 대산만이 남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재벌가 이야기에 출생의 비밀, 도식적인 2인자 구도와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애써 노력하면 언젠가는 대박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서울의 야경에서 희망을 얻는 주인공까지, 기존 드라마의 식상한 코드 대부분을 안고 시작한 드라마의 유일한 차별점이 ‘주인공의 1인 2역 연기를 보여줄 만 한 소재’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신데렐라맨>은 ‘왕자와 거지’가 아니라 ‘왕자가 된 거지’가 된다. 대산이 ‘언젠가 왕자가 될 거지’가 되는 순간,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언젠가 공주가 될 평민’, ‘왕자2’, ‘이웃나라 공주’와 같은 식으로 이름 지을 수 있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보아온 전형적인 캐릭터로 굳어진다.

준희가 사라진 뒤 이야기의 중심축이 유진(윤아)의 인턴생활기 쪽으로 옮겨가면서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우연히 디자인이 유출되어 서로 오해하게 되는’ 패션 드라마라면 응당 나와야 할 것 같은 소재로 이어가게 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대산이 준희가 되는 것은 가능하고, 준희가 대산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 <신데렐라맨>의 어떤 이야기 전개도 지금까지의 드라마들에게서 학습해 온 결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를 벗어나지 않는다. ‘왜 준희는 사라져 버렸는가?’ 혹은 ‘왜 준희는 대산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만약 <왕자와 거지>의 모티프가 이 드라마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핵심적인 소재로 기능한 것이 아니라 단지 1인2역을 위한 도구로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준희와 대산 외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이들을 둘러싼 세상을 이토록 도식적으로 구성해서는 안됐다. <신데렐라맨>에서 묘사되는 패션계와 동대문은 단어를 듣자마자 생각나는 피상적인 느낌들을 이미지화 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게다가 대산과 준희의 자리 바꾸기, 소피아 어패럴 내부의 권력다툼, 유진의 빚 청산과 인턴생활기와 같은 이야기들을 함께 진행시키면서 정작 등장인물들의 감정에는 소홀해 몇 개의 에피소드만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을 결정하고, 표현한다. 지금의 <신데렐라맨>은 단 한 컷을 봐도 내용이 짐작되는 드라마다. 그러니 내일, 다음 주의 내용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 쉽게 대박을 바라지 말라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는데, 그 자식과 나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라는 대산의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는 것은, 언젠가 분명히 대산이 그 차이를 뛰어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전형적인 이야기를 갖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드라마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이상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드라마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으니, 그 이야기를 ‘새로운 것처럼 보이게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 하지만 <신데렐라맨>은 그 무언가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언젠간 터질거야~”라며 울리는 대산의 경박한 휴대폰 벨소리는 이 드라마의 바람처럼 들리지만, 과연 ‘터지는’ 순간이 오게 될까? <신데렐라맨>은 너무 쉬운 대박을 바라고 있다.
글 윤이나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윤이나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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