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사람들은 LP로도, CD로도 음악을 듣지 않는다. 라디오로 엽서를 보내던 추억도, 유명한 DJ가 소개하는 음악이 그 다음 날 거리 곳곳에서 들리는 일도 사라졌다. 엽서에 정성들여 사연을 적던 사람들은 이제 실시간 문자로 DJ의 멘트를 이것 저것 지적하고, 지하철에서 워크맨에 이어폰을 꽂아 라디오를 듣던 학생들은 PMP를 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배철수는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오는 17일 방송 19년 만에 7,000회를 맞이하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DJ 배철수가 11일 MBC 방송센터 1스튜디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7,000회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7,000회를 앞둔 소감은.
배철수
: 지금 몇 회다 하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담당 PD하고 주변에서 7,000회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오래됐네?”하는 것 말고는 별 생각 없다. 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두세 시간 얘기하는 기분이다. 계속 청취자하고 대화하면서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일이어서, 직업은 직업인데 놀이이자 일이다. 그리고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 들수록 두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19년 동안 방송하면서 생활 습관도 많이 바뀌었겠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지 않나.
배철수
: 그렇다. 20년 동안 저녁 약속을 못 잡는다. 누구하고든 점심 약속만 할 수 밖에 없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던 1990년에는 원래 8시부터 10시까지여서 더 그랬고.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서, 지금은 그게 자연스럽다. 요즘도 방송 끝나고 9시쯤에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밥도 젊은 사람들이랑 먹는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관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배철수
: 한 6,7년 쯤 됐을 때 매일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니까 권태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저녁 6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튜디오에 앉아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니까 한 10년은 채우고 가자는 생각을 했고, 10년 채우고 나서 바로 관두기는 미안해서 (웃음) 몇 년 더 했는데,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19년째다. 이젠 20년 채워야지 (웃음) 7000회까지 하면서 한 6950회는 행복했던 것 같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이 음악 틀고 돈까지 버니까 얼마나 좋나. (웃음) 나만 즐거운 일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는데, 내가 초년 고생이 심했으니까 (웃음) 이제는 이렇게 살아도 되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찾는다.

목소리가 여전히 좋은데, 목 관리는 어떻게 하나.
배철수
: 솔직히 세월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목소리 정말 좋았는데. (웃음) 젊었을 때는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면 내 목소리가 괜찮다고, 행복하다고도 했다. (웃음) 하지만 점점 안 좋아져서 일단 2002년 월드컵 4강 기념으로 담배는 끊었다. 방송에서 사용하려고 되도록 목을 많이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시간대에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배철수
: 꼭 우리 자랑하는 것처럼 들려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방송을 19년 동안 하면서 우리의 주 청취자층은 늘 20-30대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새로운 청취자들이 계속 온다. 그건 아마 나도 그렇고 PD도 그렇고 늘 시대의 변화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청취자들하고 계속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해가 갈수록 나보다 점점 더 어려지는 PD와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많이 따르려고 한다. 점심 한 끼를 먹어도 나보다 젊은 친구들하고 먹으려고 하고. (웃음) 그리고 TV 예능 프로그램도 열심히 본다. 젊은 친구들과 프로그램을 하는데 20-30대의 웃음 코드나 문화 코드를 모르고는 같이 소통할 수 없으니까.

방송하면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뭔가.
배철수
: 아무래도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다. 전에는 LP로 틀던 걸 CD로 틀고, 이제는 컴퓨터 파일로 트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엽서로 의견을 보내던 걸 이제는 인터넷으로 방송을 하고. 이건 거의 농경 사회에서 지식 정보 사회로 넘어온 거다. 실제로 우리가 그 세대이기도 하고. 인터넷 같은 경우는 팝 소식을 빨리 알기 위해서 한국에서 시작 되자마자 하기도 했다. 그 때는 인터넷이 얼마나 느린지 빌보드 차트 한 장 보려고 클릭 한 번 하면 신문 보고 있다 다시 볼 때 쯤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19년 사이 라디오 음악 방송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팝과 가요 프로그램의 비율이 역전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팝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배철수
: ‘무릎 팍 도사’에 나가서 말한 것이기도 한데, 20세기에 팝 음악은 전 세계인의 문화다. 그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단지 해외의 음악이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 문화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영화감독들이 국내 영화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를 열광적으로 보았듯, 음악도 팝을 함께 들어야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무릎 팍 도사’ 이후에 청소년들이 더 많이 팝 음악을 듣는 것 같나
배철수
: 출연 뒤에 확실히 늘어난 건 사실이다. (웃음) 앞으로도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이 몇 명이라도 늘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또 나갈 생각이다. 너무 자주 나가면 사람이 없어 보이는 거 같아서 (웃음) 1년에 한 번 정도겠지만.

“딥 퍼플 멤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음악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은데, 선곡은 어떤 기준으로 하나.
배철수
: 방송 중 자주 하는 얘기지만, 음악 캠프에서 선곡하는 음악은 99%는 좋은 음악이다. (웃음) 솔직히 얘기하면 초기에는 내 개인적인 고집에 따라 선곡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장르에 대한 편견도 거의 없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나와 제작진의 주관이 따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객관성을 띄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에는 대중이 100% 맞는 건 아니지만 대중의 선택이라는 게 우습게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요즘에는 대중들이 원하는 곡들을 많이 선곡하기도 한다. 만약 청취자들이 “뭐 이런 걸 틀어” 했으면 그만 뒀겠지. (웃음)

19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많은 뮤지션들과 인터뷰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션은.
배철수
: 딥 퍼플의 멤버들이다. 내 어린 시절 우상이었으니까. 처음 내한 공연할 때 보컬 이언 길란을 만났고, 그 후에 키보드 존 로드도 만났다. 블랙 사바스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도 만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는 인터뷰 전에 스튜디오 바깥에 나가서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웃음) 그리고 실물이 훨씬 낫다는 말에 너무 기뻐하던 데스티니스 차일드도 기억에 남고. 그리고 내가 자부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인터뷰한 사람 중에 기분이 나빠져서 돌아간 사람은 없다는 거다. 적어도 나는 인터뷰할 대상에 대해 준비하고, 그 사람을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뮤지션들에게 “김치 사랑해요”나 “안녕하세요” 해보라고 시키지 않는다. (웃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아직도 연말이면 카드를 보낸다.

그동안 가장 큰 방송사고는 뭔가.
배철수
: 내가 막 사는 것처럼 생겼지만 사실 섬세하다. 준비성도 있고. (웃음) 그래서 방송사고를 거의 안 냈다. 내가 처음 방송할 때 워낙 거칠게 생겨서 사람들이 내가 생방송하다 욕할 것 같다고 했지만 (웃음) 한 번도 멘트가지고 지적 받은 적도 없고. 그래서 방송 사고가 한 번도 없을 줄 알았는데 딱 한 번 냈다. 예전에 방송 시작하고 오프닝으로 틀 음악을 고르다가 나도 PD도 모두 방송 시작하는 걸 잊어버려서 27,8초 정도 방송을 안 한 적이 있다. 한 2000년 쯤 있었던 일인데,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그 때 담당 PD한테 미안하다.

영상 시대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라디오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나.
배철수
: 개인적인 소통이다. 라디오는 듣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대화를 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라디오가 예전보다 더 필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현대인들이 외로워지니까. 그리고 라디오는 멀티태스킹이 자동으로 되는 시대 아닌가. (웃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라디오는 살아남을 거라고 본다.

앞으로 DJ로서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배철수
: 이미 제약이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걸 다 했다. 틀고 싶은 음악도 다 틀었고, 안 찾기 때문에 안 트는 음악이 조금 있을 뿐이다. 요새는 가장 단순한 게 가장 맞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라디오라는 건 청취자들이 좋은 사연 보내면 얘기하고, 좋은 음악 틀면서 얘기하는 거 아닌가. 결국 본질은 그거라고 생각한다.

내년이면 20년이다. 골든 마우스를 탄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나.
배철수
: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오늘도 방송할 뿐이다. (웃음) 다만 라디오를 하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야 하니까, 나도 기분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리고 10년 정도 했을 때는 “내가 방송 잘 하니까 하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고. 제일 중요한 게 청취자다. 이제 그걸 알았으니 철 든 거다. (웃음)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내가 방송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져서 세 번 피식 웃게 만들 수 있다면 만족한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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