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이하 SNL)는 대통령 대선을 앞두고 기발한 정치 풍자 코미디를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 중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알레스카 주지사 새라 페일린을 연기한 티나 페이였고, 그녀와 절묘한 궁합을 맞춰가며 힐러리 클린턴을 연기하고, ‘위크엔드 업데이트’라는 뉴스 코너를 진행한 에이미 폴러가 그 뒤를 따랐다. 만삭이 된 폴러가 페일린을 대신해서 랩을 하는 장면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 문제는 지난 8년간 SNL을 지켜왔던 폴러가 2008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 스케치 코미디 쇼를 떠났다는 것. SNL은 기존과 신인 멤버들로 이제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폴러는 연말에 아들을 낳은 후 한동안 몸조리할 틈도 없이 정든 뉴욕을 떠나 LA에서 NBC의 새로운 시트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 촬영에 들어갔다. 와의 인터뷰에서 폴러는 “한 사람을 계속 연기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다”며 “그 캐릭터가 누구라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이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는 폴러는 시트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머리는 약간 나쁘지만, 의지력이 강한 지방 공무원으로 나온다.

말 한마디 했다가…

제목처럼 폴러가 맡은 캐릭터 레슬리 놉은 인디애나 주의 실존하지 않는 작은 도시인 포니(Pawnee)시의 공원국 부국장이다. 레슬리는 아무리 낮은 위치에서라도 열심히 공무원직을 수행하면 제2의 클린턴이나 올브라이트, 그리고 페일린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레슬리는 늘 의욕이 넘치지만, 이에 동조하는 동료는 없다. 자신이 트렌디하다고 생각하지만, 늘 유행어를 잘못 사용해 창피를 당한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이와 함께 주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고 있었다. 이 때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앤 퍼킨스(라시다 존스). 주민들과 시정부 공무원이 만나는 공개 미팅에서 앤은 “집 앞에 공사하다 방치된 큰 구덩이에 남자 친구가 빠져 다리가 부러졌다”며 책임을 묻는다. 깊게 생각하는 체질인 아닌 레슬리는 그 자리에서 당장 “내가 책임지겠다. 그 구덩이를 메우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드는 것을 약속한다”고 장담을 해버린다. 레슬리의 옆에 있던 슬레커 스타일의>> 동료 공무원 톰 하버포드(아지즈 안사리)가 말릴 짬도 없이 말이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은 레슬리가 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 사회에서는 물론 주민들, 공사를 하다가 부도가 난 기업체 사이에서 겪는 난관들을 풀어간다. 여기에 6개월 전에 잠깐 사귀었던 도시계획 부서의 엔지니어 마크(폴 슈나이더), 공무원 업무를 따분해 하는 대학생 인턴 에이프릴(어브리 플라자), 반정부 성향이 강하고 공원국을 민영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원국 국장 론(닉 오퍼맨) 등이 추가된다.

<오피스>와 같은 듯 다른 시리즈

이 시리즈는 NBC의 또 다른 시트콤 <오피스>처럼 다큐멘터리를 흉내 낸마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앤 역의 라시다 존스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 뿐 아니라 작가와 프로듀서들도 대거 <오피스>에서 초빙됐다. 원래 <오피스>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마큐멘터리 형식만 그대로 가진 채 전혀 다른 내용의 시리즈가 된 것이다. 문제는 폴러를 제외한 배우들이 모두 자질은 있지만 ‘스타파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티나 페이의 <30 록>에 알렉 볼드윈 같은 쟁쟁한 배우가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캐스트 뿐 아니라 이야기 진행 역시 너무 느리다는 평이 많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코믹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아직까지는 큰 감흥을 느끼기가 힘들다. 개인적으로 폴러의 팬인 필자 역시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 아직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NBC는 이 시트콤을 다음 시즌까지 픽업한다는 발표했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이 이것을 계기를 새롭게 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피스>의 아류작이 아닌 폴러와 그녀의 앙상블 캐스트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리즈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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