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을 쉽게 잊는다. 첫 출근날 아침의 설렘을, 사랑을 처음 시작하던 날의 두근거림을 타성에 젖어 쉽게 잊는다. 자신의 감정마저도 이렇게 쉽게 잊는데 당연히 흙냄새며 바람에 날리는 꽃내음이 마음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보고 들을 때면 비에 젖은 풀냄새가, 아카시아나무 밑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근엄한 척 하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총각선생님(이지훈, 성두섭, 이창용), 산수유꽃에 ‘불타는 마음’을 담는 16살의 국민학생(이정미), 커피와 샤갈을 좋아하는 양호선생님(정명은). 이 세 명의 서로 다른 사랑이 주된 내용이지만, <내 마음의 풍금> 안에는 사랑 말고도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아련하게 울리는 풍금소리, 반딧불이가 가득한 여름밤의 풍경,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지는 눈 소리, 밤만 되면 세종대왕과 유관순 누나가 동상과 초상화에서 튀어나와 싸운다는 학교괴담. 누구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지만, 쉽게 꺼내보지 못했던 기억들이 누렇게 바랜 사진처럼 홍연이의 성장통과 함께 흘러나온다.

그리움을 담은 무대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담겨져 비어있는 곳 없이 가득 차있고, 장면이 전환되는 동안엔 삐걱대며 움직이는 세트소리 대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앞 장면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마저 든다. 누군가는 너무 착하기만 한 작품이라고도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착한마음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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