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한국의 여자 연예인이 없다. 직업 탓인지, 아니면 너무 멀어보이는 존재들이라서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여자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아, 예쁘다”나 “어디에 출연할 때가 제일 좋았어” 같은 반응이 전부다. 덕분에 누구든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바깥에서야 ‘이 기자는 누구누구 덕후야’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만) 다행이지만, 이런 일을 하면서 누구에게 열광적으로 빠지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긴 하다. 나도 가끔은 모 기자처럼 다니엘 헤니라는 이름만 나오면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며 은총을 받은 표정을 짓고 싶은데.

아무로 나미에는 그런 내가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 연예인이다. 정보를 일부러 수집한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오는 앨범마다 사고, 공연 DVD를 사고, 만약 내한 공연을 온다면 감사하며 볼 생각이다. 내가 아무로 나미에를 좋아하게 된 건 그가 일본을 뒤집던 1990년대와는 별 상관이 없다. 내 눈에 아무로 나미에가 들어온 건 그가 ‘Hippop’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클럽튠 음악에 일본식 감성을 섞은 음악들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다. 이 시기쯤부터 아무로 나미에는 자신의 음악과 스타일을 확실하게 주관하면서 음악이나 패션이나 모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고, 혼자 아이도 잘 키우고 있다. 정말 예쁜 여자가 독하고 일 잘하는 데다 자기 인생에 대해 당당하기까지 하달까. 어쩌면 나는 이래서 한국 여자 연예인의 팬이 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아무로 나미에 같은 스타를 모두에게 자애로운 ‘여신’으로는 만들어도 군림하는 ‘여왕’으로 만들지는 않으니까. 아, 어쩌면 김연아?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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