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먹을 때마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먹던 것을 나이를 좀 먹고 나니 내 돈을 내고 먹는다. 내겐 그 대표적인 것들이 날로 먹는 해산물들인데 그중에서도 굴이 최고다. 어쩐지 이게 흐물흐물하고 색깔도 그렇게 먹음직스럽지만은 않은 밝은 회색에서 푸르딩딩한 회색, 급기야는 시꺼먼 색깔까지 그라데이션이 져 있는 게 참으로 입에 넣고 싶지 않은 음식이었는데 이젠 이맘때가 제일 괴롭다. 굴과의 짧은 이별을 해야만 하는 이 때. 영어권에서는 R이 들어가지 않는 달에는 굴을 먹지 말라고 했던가. April 이니 아직은 R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September에서 시작하는 R 시리즈의 막달이기도 하고 단골 이자까야에서는 이미 메뉴에서 생굴이 쏙 빠져버렸으니 아쉽긴 하지만 또 찬바람이 살살 불어올 때까지는 굴은 안녕이다.

전을 부쳐 먹어도, 김장 김치에 넣어도, 후라이를 해 먹어도 좋지만 굴 요리의 궁극은 역시 석화다. 큼직하게 잘 자란 굴을 한쪽 껍질만 떼어낸 석화. 그 모양새가 오죽 이뻤으면 석화(石花), 돌꽃이라 했을까! 레몬즙만 살짝 뿌려서 한 손에 받쳐 들고 다른 손은 젓가락으로 굴을 드리블해서 입으로 쏙. 입 안에 들어오는 순간 지금 내가 먹은 게 굴인지 바다인지, 여기가 바단지 내가 바다의 왕자인지.. 아아.. 석화. 먹고 싶어!!

덧. 굴은 5월이 산란기라 독성을 띄기 때문에 여름을 피하라고 하는 것. 아무리 힘들어도, 10월까지만 꾹 참자.

글.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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