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박지성을 아니?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도 아는 운동선수를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아니, 이번에 에서 박지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이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였잖아. 나는 원래 잘 몰랐지만 그걸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많이 모르고 있었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과연 만날 아는 척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그런 것도 없진 않은데, 그냥 그 사람한테 흥미랑 호기심이 생긴 거 같아. 난 그 사람의 화려한 면만 보고, 어느 여자 연예인과 사귈 지만 궁금해 했었으니까.
그래?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런데 그럼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그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박지성이 잘 나가기 전엔 대학 지명도 못 받던 선수라는 것 정도는 알 거 아니야. 그 시절에 대해 제법 정리는 잘 된 거 같던데?

오히려 난 보면서 궁금해지는 게 많더라. 우선 신문선 아저씨가 박지성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팀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거나, 영국 감독님이 공간 이해력이 좋다고 평가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하긴 90분 내내 쉬지 않고 뛰는 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수 있겠다. 그건 우선 우리가 축구를 볼 때 카메라와 우리의 시선 모두 공을 쫓아가는 탓이 커. 그런데 박지성은 관중과 선수들마저 공에 눈이 팔린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을 기막히게 찾아 들어가거든. 물론 그러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지. 그래서 누군가 패스를 하면 박지성은 바로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프로그램에서 팀 동료라고 인터뷰한 흑인 선수 봤지? 맨유의 수비수인 에브라인데 그 사람이 그러잖아. 분명 여기 있었는데 어느새 저기 가 있어서 유령이라 부른다고. 그럼 공을 쫓는 우리 눈엔 어떻게 보이겠어. 그 공간까지 박지성이 뛴 건 안 보이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공 받은 것만 보이잖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박지성의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는 이상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잘 모르지. 오히려 동료가 패스를 했는데 박지성이 그걸 보고 뒤늦게 뛰어 들어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열심히 뛰는 걸로 보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럼 그거랑 공간 이해력이 좋다는 거랑 동일한 말이야?
열심히 뛰는 거랑 공간 이해력, 이 두 가지를 갖춘 거지. 그래서 박지성이 인정을 받는 거고. 아무리 열심히 뛴다고 해도 그냥 공 움직이는 것만 보고 무작정 쫓아다니기만 하면 하나도 효율적이지 않겠지? 만약 자기 쪽으로 공이 오면 빠르게 쫓아가야겠지만 같은 팀 선수가 이미 공을 쫓고 있으면 빨리 다음 공격을 위해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할 거 아냐. 그걸 순식간에 읽어내는 능력이 공간 이해력이지. 그런데 머릿속에선 그렇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데 체력이 안 되거나 근성이 부족해서 그 지점까지 뛰어가지 못하면 실질적으론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

그래서 박지성이 있는 게 팀에 도움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너도 호날두는 대충 알지? 작년에 FI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탄 최고의 공격수야. 그런데 이 선수가 드리블 테크닉을 이용한 돌파나 슈팅 능력은 정말 좋은데 수비 능력은 별로거든. 수비를 열심히 안 한다는 얘기도 듣고.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도 상대방이 공을 잡았을 땐 수비수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말 그대로 ‘구멍’이 될 수밖에 없지. 그래서 호날두가 있는 쪽으로 맨유의 수비 대형이 몰릴 때가 있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수비를 해야 하는데 수비를 잘 못하는 애가 있으면 그 쪽으로 사람이 더 붙어줘야 수비가 견고해질 거 아냐. 그런데 분신술을 쓰는 게 아닌 이상 그 쪽에 사람이 붙으면 결국 또 어딘가는 비겠지? 세상은 공평한 거잖아.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호날두는 사이드에 있기 때문에 수비 대형이 사이드로 몰리고, 이 때 가운데에 빈틈이 생길 수 있어. 그럼 이 때 분신술을 쓰는 건 아니지만 에브라의 말대로 유령처럼 어디선가 박지성이 나타나 그 자리를 메우는 거야. 그런 상황이니까 호날두 같은 선수가 수비는 나 몰라라 하면서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지. 또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박지성이 어느새 또 저만치 공격에 필요한 지점까지 뛰어가서 패스를 받아 다시 공격수에게 연결해주니까 공수 전환도 원활해지고. 이번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들어간 자막 중에 ‘박지성은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말이 있었잖아. 기억 안나? 있었어, 그런 게. 바로 그렇게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헌신적 노력 덕에 그가 맨유라는 세계 최강의 팀에서 뛸 수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웬 성악가가 박지성에 대해서 헌신이라는 말에 대해 이해하는 선수라고 말했던 게 중간 자막으로 나오던데.
으하하하하. 성악가?

왜 웃어? 아니야? 아님 아닌 거지, 그렇게 크게 비웃을 건 뭐람?
아니 아니, 웃은 건 다른 이유야. 사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박지성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나 너처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가 재밌게 볼만한 좋은 프로그램이긴 했는데 옥에 티가 있었거든. 바로 네가 본 자막인데 AC밀란의 전설적 미드필더인 젠나로 가투소를 젠나로 카루소라고 표기한 거야. 나도 잠깐 내 눈을 의심했다니까? 하하. 아무튼 그 자막은 유벤투스의 ‘두 개의 심장’ 네드베트와 함께 무한체력으로 그라운드 곳곳을 쉬지 않고 누비던 가투소 역시 박지성의 플레이를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되게 잘 하는 선수가 박지성 보고 잘한다고 했단 거지?
그렇지, 그렇지. 그게 어떤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박지성의 실력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아는데 도움은 되지.

정말 이 사람을 알기 위해선 더 많은 여러 가지를 알아야 되는 구나. 너도 박지성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게 있어?
물론이지. 정말 많이, 잘 알고 싶지.

그래서 잘 알게 되면 어쩔 건데?
우선 ‘NO.1’ 좀… (굽신굽신) 입 여신 김에 ‘올댓뮤직’ 좀… (굽신굽신) ‘내일은 10관왕’ 메인 사진에 인증 샷 한 번만… (넙죽넙죽)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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