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헤니는 인터뷰 동안 두 가지 영어를 썼다. 하나가 매니저와 나누는 일상적인 영어였다면, 다른 하나는 인터뷰어를 위한 영어였다. 그는 “자신이 한국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처럼”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해 매니저와 대화하는 것 보다 천천히, 훨씬 쉬운 단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덕분에 인터뷰는 통역을 담당하는 매니저의 큰 도움 없이 진행될 수 있었고, 대화는 더없이 유쾌했다. 다니엘 헤니는 그런 남자다. 우리는 그를 완벽한 신체 조건을 가졌고, 거기에 서구식 매너까지 가진 ‘천상의 피조물’로 바라봤다. 하지만 다니엘 헤니의 진짜 매력은 그 너머에, 자신의 영화와 연기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는 ‘사람’ 다니엘 헤니를 알 때 있었다. 남자마저도 반하게 만드는 그의 인터뷰를 확인해보라.

영화 <엑스맨의 탄생: 울버린>(이하 <울버린>)의 예고편을 봤다. 영상이 당신 위주로 나오더라.
다니엘 헤니
: 한국 버전이니까. 아마 그게 내 출연분의 거의 다일 거다. (웃음)

“<엑스맨>에서 이상한 옷을 입거나 가면을 쓰면 어쩌나 걱정했다”

조금 놀랐다. 젠틀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없고, 야비하게 웃는 다니엘 헤니라니. (웃음)
다니엘 헤니
: 나, 연기 되게 잘 한다. (웃음) 난 배우니까 좋은 배역이면 다른 캐릭터들도 소화 해야지. 그리고 <울버린>은 굉장히 터프한 영화라서 나뿐만 아니라 다 그런 느낌을 낸다.

<울버린>에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마이 파더>로 국내에서 연기로 인정받기 시작한 순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출연해서 놀랐다
다니엘 헤니
: 운이 좋았다. 휴 잭맨과 게빈 후드 감독이 <마이 파더>를 봤고, 그 작품에서 내 모습을 좋아했다. 게빈 후드 감독은 에이전트 제로가 착한지 나쁜지 알 수 없는 인물이기를 원했다. 그만큼 표정도 없고 대사 보다는 제스처로 표현을 해야 하는 캐릭터다. 감독은 <마이 파더>에서 내가 부모님을 찾는 TV 프로그램에 나간 장면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때 많은 움직임이나 대사 없이 적은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에이전트 제로 연기를 할 때 한국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겠다. 한동안 한국에서 모든 걸 표정과 제스처로만 표현해야 했으니까.
다니엘 헤니
: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했던 첫 날, 정려원과 키스신을 찍었다. 정말 긴장했었지만, 감독에게는 “걱정 마세요, 잘할 수 있어요”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완전히 외국인이어서, “안녕하세요”도 영어로 ‘own your house’로 써서 외워서 말했다. 촬영할 때 밤새도록 NG가 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 한국 사람들과 눈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마이 파더>에서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모습을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고, 다시 그런 행동이 <울버린>에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뜻을 전달하는 것에 도움이 됐다.

반대로 <울버린>을 촬영하면서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배운 것도 있을 것 같다.
다니엘 헤니
: 휴 잭맨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하던 첫 날 휴 잭맨이 그의 손 장식을 끼고 트레일러에서 나와 인사를 해서 서로 웃었는데, 함께 촬영하면서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울버린>을 보면 휴 잭맨 주변으로 불이 치솟고, 폭발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는 전혀 동요 없이 관객을 압도하는 표정과 행동을 한다.

한국의 촬영 현장과 비교해보면 어떤 부분이 가장 차이가 나나.
다니엘 헤니
: <울버린> 같은 영화는 모든 게 다 크다. 거의 정부처럼 조직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그에 비해서 한국은 규모가 작지만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 점에서는 한국이 더 마음에 든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은 분리 돼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다 같이 소주 마시고, 친하게 지낸다. 그런 분위기가 좋다. 사실 걱정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그 영화에서 비중이 크지 않아서 내 결정권이 크지 않다. 그래서 촬영 일정도 빠듯했고, 포스터에서도 돌연변이니까 이상한 옷을 입거나 가면을 쓰고 나오면 어떡하나 했다. 그런데 다행히 하얀 셔츠를 입어서 “아우, 감사합니다” 그랬다. (웃음)

“<마이 파더>를 하면서 생긴 자신감이 <울버린>에 도움이 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마이 파더>까지, 점점 더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런데 <울버린>은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만화 캐릭터다. 어떻게 연기했나.
다니엘 헤니
: 사실 에이전트 제로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출연 결정을 하자마자 뉴질랜드로 갔고, 내가 배우들 중 가장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해서, 영화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에이전트 제로의 부츠라도 달라고 했다. 그거라도 신고 에이전트 제로의 캐릭터에 대한 느낌을 알고 싶었다. 아마 누가 밤중에 내 모습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에이전트 제로의 부츠를 신은 누군가가 총 쏘는 시늉을 하고, 혼자 대사를 외우면서 뉴질랜드의 밤거리를 걸어 다녔으니까. (웃음) 하지만 그래도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건 <마이 파더>의 힘이 컸다. <마이 파더>에서 난 울고, 소리 지르고 감정을 몰아붙이면서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어떤 캐릭터라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신감으로 <울버린>에 출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 파더> 이후, 다니엘 헤니는 한국에서 좀 더 인기를 누리며 경력을 쌓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 선택을 할 때 고민은 안 됐나.
다니엘 헤니
: 나도 <마이 파더> 다음에 한국 영화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작품은 내 연기 생활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고, 그런 작품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울버린>은 정말 갑자기 찾아왔다. 내가 그걸 할지 말지 결정하는 시간이 이틀 밖에 없었다. 그 때 곧바로 결정한 거다. 난 <엑스맨> 시리즈의 엄청난 팬이고, 그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로도 영광이었으니까.

결정을 내리는데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처음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나, 그 전의 이미지를 버리고 <마이 파더>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울버린>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모두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었는데.
다니엘 헤니
: 시간은 없지만 계속 선택을 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은 게 대부분의 결정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웃음) 처음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하게 된 것도 전지현과 CF를 찍을 때 김선아의 매니저가 현장에 왔다가 바로 연락을 해서 결정하게 된 거다. 난 <내 이름은 김삼순> 촬영할 때 한두 달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줄 알고 뉴욕 집에 계속 집세를 내고 있을 정도였다. 가방 하나 갖고 왔는데 지금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CBS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의 파일럿에도 출연하게 됐는데, 그것도 <울버린> 촬영 때문에 결정이 지연되다 공항에 가기 직전에 출연이 결정됐다. 좋은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결정의 순간에 안전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은 반대로 늘 긍정적인 결과를 생각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것 같다.
다니엘 헤니
: 난 언제든지 돌아갈 곳이 있다. 부모님이 계시니까. 어린 시절에 나는 마을의 유일한 아시아 소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그런 걸 느끼지 못하도록 나를 사랑해 주셨다. 내가 이 일을 접어도 돌아갈 가족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지금 가진 것에 대한 욕심이 덜한 것 같다. 그래서 새로 도전하는 일이 즐겁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났을 때 그걸 최대한 완벽하게 소화하는 일이 기쁘다. 나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으면 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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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 CAT the Culture Production

인터뷰. 강명석 (two@10asia.co.kr)
인터뷰. 이지혜 (seven@10asia.co.kr)
인터뷰. 윤희성 (nine@10asia.co.kr)
정리. 윤희성 (nine@10asia.co.kr)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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