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서른 두 살이다.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다. 결혼도 못했고 애인도 없다. 뼈 빠지게 벌어 산 연립 값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뚝뚝 떨어지고, 죽도록 일했더니 회사가 인수합병 되며 계약직으로 떨어졌다. 엄마는 말씀하신다. “니년 인생이 막장 드라마야 이것아!” tvN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영애씨>)의 이영애(김현숙)는 그렇게 산다. 하지만 지금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막장 드라마’와 거리가 먼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영애씨>일 것이다. 2007년,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하고 팍팍한 일상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시작된 <영애씨>는 올해 3월 시즌 5를 시작했고, 케이블 채널로서는 보기 드물게 시청률 2.5% 고지도 넘겼다. ‘덩어리’ 이영애와 ‘도라이’ 변지원(도지원)과 ‘대머리 독수리’ 사장님(유형관)은 이제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이 되었다. <10 아시아>에서 <영애씨>의 대본을 집필하는 ‘신세한탄 수현씨’ 명수현 작가와 ‘연기욕심 수미씨’ 임수미 작가를 만났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별명이 눈에 띈다. 어떻게 붙여진 건가.
임수미
: 평소 사는 모습이 그렇다. (웃음)
명수현 : 최근에 연년생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세한탄이 늘었다. (웃음)

“음담패설 김 이사는 명수현 작가의 또다른 모습”

명수현 작가는 시즌 3, 임수미 작가는 시즌 4부터 <영애씨>에 참여했다. 이미 전체적인 뼈대가 만들어져 있는 <영애씨>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명수현
: <남자 셋 여자 셋>과 <논스톱> 등 시트콤을 계속 했고 <영애씨>에는 시즌 3에 들어와서 임신 때문에 시즌 4에 빠졌다가 이번에 다시 돌아왔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시트콤에서 다뤄보지 못한 현실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영애씨>가 해왔던 리얼리티, 공감대를 가져가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임수미 : 나 역시 <영애씨>를 하기 전까지 시트콤을 십여 년 가까이 하다 보니 소진되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바꾸기가 쉽지 않았는데 <영애씨>에서는 가능할 것 같았다. 마음껏 욕하고, 화장실 신 리얼하게 보여주고, 배우들이 속옷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들이 아무래도 케이블 채널에서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신선해 보였다. 정작 와 보니까 앞 시즌에서 너무 재미있는 걸 많이 보여준 바람에 그보다 업그레이드 된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오버하지 않는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게 힘들었지만. 그리고 <영애씨>를 처음 만들었던 박민정 작가와 한설희 작가가 그 전에 우리랑 다른 시트콤 작업을 같이 했던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영애씨>를 보다 보면 그 두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보일 때가 있다. (웃음)

시즌 5가 시작되며 영애의 회사인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린 기획이라는 대기업으로 인수합병 됐다. 시대적 상황을 절묘하게 반영한 설정인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
임수미
: 일단 우리에게 돌파구가 필요했다. 시즌 4까지 오면서 영애의 집과 회사만으로 가기엔 소재가 좀 고갈되다 보니 다양한 얘깃거리가 나올 만한 환경을 만들고 싶었고, 요즘 경제 사정이 안 좋으니까 그런 상황을 반영해보자는 결론을 낸 거다.
명수현 : 시사회에서도 기자들이 공감을 많이 했다. 일반 회사들 뿐 아니라 언론사도 구조조정이 많았다고 한다. (웃음)

공간적 배경이 바뀐 것 외에 배우들 교체가 좀 있었다. 시즌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인 것 같은데 어떤 이유들이었나.
명수현
: 영애 동생 영채(정다혜)의 경우는 부득이하게 연기자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유학을 간다는 설정을 만들어 냈다. 배우가 빠진다고 해서 얘기를 바로 없앨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경우 고민이 많다.
임수미 : 이번에는 윤과장(윤서현)의 부인 은실이가 갑자기 집을 나가 버린 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시즌 4에서는 자기 본모습을 감추고 가정생활 열심히 하던 은실이가 아무 설명 없이 툭 나가 버리니까. 사실 은실이가 참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한데 항상 남편과 집이라는 공간에만 갇혀 있다 보니 이야기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명수현 : 거기에 연기자 개인 사정도 있었고, 우리도 불경기다 보니 제작비 문제도 있어서 빠지게 되었는데 설명이 좀 미흡했던 것 같다.
임수미 : 게다가 영애 남동생 영민(김현정)이는 시즌 1 때와 다른 배우가 들어와서, 시청자들이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다’고 항의하고. 영민이가 안 나온 사이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잊지 않으시더라. (웃음)

그린 기획의 상사 김 이사(김애령) 캐릭터는 시즌 5에서 새로 나온 인물 가운데 가장 눈에 띈다. 미모의 커리어 우먼이면서 음담패설과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게 굉장히 파격적인데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임수미
: (말없이 명수현 작가를 손으로 가리킴)
명수현 : 야~ 우리 시어머니가 아시면…(웃음) 음, 가능하면 상투적인 캐릭터는 피하려다 보니 내 독한 면만 뽑아서…(웃음) 사실 우리가 욕심낸 건, 기존에 영애를 놀리고 핍박했던 상사들은 다 남자였으니까 이번에는 여자 상사가 영애의 적수가 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직 시청자들은 남자 상사가 음담패설 하는 것보다 여자 상사가 음담패설 하는 걸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임수미 :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이 좀 더 불편해하는 면이 있다.

“우린 하이에나처럼 주변의 에피소드를 다 끌어온다”

시즌 4부터는 ‘도련님’ 원준(최원준)과 장동건(이해영) 과장이 영애를 두고 삼각관계 분위기를 형성했다. ‘리얼 드라마 <영애씨>도 결국 신데렐라 판타지가 되나 보다’ 라는 우려도 있었는데.
임수미
: 일단 러브 라인이 있어야 보는 맛이 있으니까, 그런데 시즌 1에 영애가 원준이와 사귀었다 헤어진 적이 있다 보니 시즌 4에서 그걸 반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동건을 투입한 건데 우리도 쓰면서 ‘야, 영애와 삼각관계는 말이 안 되지 않니?’ 그랬다. (웃음)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또 어떤 시청자들은 ‘왜 영애에겐 사랑이 안 오냐, 왜 영애는 행복하면 안 되냐, 영애가 동건이랑 잘 되면 좋겠다!’ 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결론을 못 내고 시즌 4를 끝낸 뒤 시즌 5 초반까지는 회사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러브라인은 소강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다 요즘 다시 진행을 시키고 있는데 정말 골치가 아프다. 오늘도 그것 때문에 회의가 한없이 길어졌다.
명수현 : 사실 영애의 러브라인 만이 <영애씨>의 유일한 판타지인 것 같다. 다른 에피소드는 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내 일 같고 너무 현실감 있어서 눈물 난다는 말을 듣는데 영애 주변에 두 꽃미남이 매달려 있는 그림이야말로 시청자들이 유일하게 희망을 갖게 만드는 장치인 것 같다. (웃음)
임수미 : 그런데 또 어떤 기사를 보니 “나도 행복하지 않은데 어디서 영애씨가 행복해지냐!” 라는 반응도 있더라.

그 말을 했던 당사자다. (웃음)
명수현
: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영애들이 바로 그 러브라인을 보면서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게 되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자기 모습 보는 것 같아서 보기 싫다고 하면 안 되니까. (웃음)

사실 영애가 예쁘지도 않고 괄괄한 성격으로 나오지만 여자 입장에서 보면 참 괜찮은 사람이니까, 괜찮은 남자들이 영애의 그런 면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명수현
: 그런 것 때문에 원준이도 계속 영애를 집적대고 있는 것 같다. 갖지도 놓지도 못하고.

영애를 ‘형님’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웃음)
임수미
: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극 중에서 정말 진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정대리(정지순)다. 짠돌이에 치사하고 구차한데 보다 보면 ‘저럴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짠하기도 하다.
명수현
: 그런 사람 어느 회사에나 하나씩 있지 않나?
임수미 : 그런데 초반에는 사장님도 진상이고 정대리도 진상이고, 다들 진상을 떠니까 영애가 응징하고 욕할 대상이 있었는데 시즌이 계속되며 시청자들이 각 캐릭터에 다 애정을 갖게 되니까 영애가 응징할 대상이 없어진 게 문제다. 다들 한 가족이 되어 버려서.

시즌 5에서 회사를 옮긴 뒤 계약직이 된 직원들이 정직원이 되기 위해 비굴해지는 과정이 리얼하다.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에피소드가 아주 구체적인데 경험담인가. (웃음)
임수미
: 작가가 되기 전 대기업에 한 달 정도 다녔는데 한창 IMF일 때라 일이 없어도 부장님이 퇴근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는 퇴근을 해버렸고, 그런 회사 생활이 잘 안 맞아서 그만뒀다.
명수현 : 나는 작가로 일을 시작했는데 작가가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이것도 조직생활의 일환이라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하다.
임수미 :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프리랜서 역시 PD나 선배 작가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다들 아부를 하고 그런다. (웃음)
명수현 : 그리고 tvN이라는 회사 자체가 CJ 그룹이라는 대기업에서 나온 곳이다 보니 다른 방송국보다 좀더 ‘회사’ 다운 면이 있다. 등반대회나 체육대회 같은 사내 행사도 종종 있는데 회사 직원인 PD들이 그런 데 참석한다는 얘길 듣고 바로 소재로 쓰는 경우도 있다.
임수미 : 우린 하이에나처럼 무슨 에피소드든 다 끌어온다.

“영애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생각하니까 프로그램이 잘 된 것 같다”

그럼 회의 분위기는 어떤가.
명수현
: 찧고 까불고 달겨들고!
임수미 : 으르렁대고 물어뜯고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웃음)

7회부터는 영애 제부인 혁규(고세원) 친구 이용주(이용주)가 등장했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시즌 중반에 들어온 캐릭터인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명수현
: 시즌 5에서 회사도 바뀌고 새 캐릭터들이 여럿 들어오면서 좀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용주는 처음에 영애를 치고 올라오는 신입사원 역으로 생각했는데 진행해 보니 사무실 쪽은 이야기가 그런대로 풍성한 데 비해 영애 집 쪽에서 영채가 빠지면서 좀 허술해진 면이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청년실업자의 대표주자인 혁규 쪽에 이야기가 보강되어야 할 것 같아서 취업재수생인 친구로 용주를 넣는 쪽으로 바뀌었다. 취업 못하고 방황하는 20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줄 거다.
임수미 : 용주는 또 다른 버전의 진상 캐릭터다. ‘엘리트 진상’ 이라고.

점점 형편이 나빠진 ‘아름다운 사람들’과 달리 <영애씨>는 조용했던 시작에 비해 tvN의 간판으로 자리 잡으며 인기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왔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공 요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임수미
: 차별화다. <영애씨>에서는 지상파에서 할 수 없는, 이를테면 욕 같은 것들로도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제작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형식이었지만 6mm 카메라로 찍는 방식 같은 게 달랐던 것 같다. 지상파에서 볼 수 있는 걸 케이블에서 하려면 제작비 차이 때문에 그만큼을 보여주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새로운 형식들을 시도한 게 <영애씨>가 지금까지 온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명수현 : 틈새시장이었던 것 같다. 이런 소시민들의 찌질한 삶 얘기를 지상파에서 보여주면 보려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상 틀어놓는 지상파와는 달리 케이블 채널은 찾아서 봐야 하는 거니까, 점점 영애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이 잘 된 것 같다.

앞으로 <영애씨>에서는 어떤 얘기들을 더 할 수 있을까? 영애씨는 결혼 안 하나?
명수현
: 결혼하는 게 보고 싶은가? 그게 과연 재밌을까? (웃음)
임수미 : “나도 아직 결혼 못 했는데!”라며 분노하는 거 아닌가? (웃음) 사실 <영애씨>는 우리가 계획하고 가는 것도 있지만 극 중 캐릭터들이 유기체처럼 알아서 굴러가는 부분이 있다.
명수현 : 시즌을 시작할 때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가는데 하다 보면 우리가 가려던 방향과 캐릭터들이 다르게 갈 때가 있다. 또 시청자들 반응도 보고, 방향을 틀게 되기도 한다. 아직까진 우리가 계획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맞나? (웃음) 동건이랑 연애를 하려나? 아님 원준이랑 다시 잘 되려나? 아, 모르겠다. 영애 마음인 것 같다.

언젠가 <영애씨>가 아닌 다른 작품을 쓰게 된다면 어떤 걸 하고 싶나.
임수미
: 이건 5시즌까지만 하고 나가라는 얘긴가! (웃음)
명수현 : 개인적으로는 이보다 더 찌질한 인생들에 대해 써보고 싶다.

<영애씨> 보다 더 찌질할 수가 있을까. (웃음)
명수현
: 그러게.
임수미 : 난, 영업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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