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한국 야구대표팀의 WBC 준우승 소식이 뉴스를 뒤덮었다. 같은 날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을 벌이던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구속되었다. 25일 밤에는 지난 해 4월 MBC (이하 ) 편을 만들었던 이춘근 PD가 긴급 체포되었다가 48시간 뒤 풀려났다. 현재 이춘근, 김보슬 PD를 비롯한 편의 제작진 여섯 명은 농림수산식품부와 정운천 전 장관 등에 대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상태다. 이번 수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미 제작진들의 이메일 압수수색과 통신 내역 조회, 자택 수색이 이루어졌으며 프리랜서 신분인 두 명의 작가에게까지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사실이다. 편의 김은희 메인작가를 만나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지 얼마나 됐나.
김은희
: 24일이 작가 소환일 이었다. 그 전까지 한창 바빴는데, 특히 이메일 압수수색에 대해 알게 된 뒤로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서 집에 가도 아주 잠깐 눈만 붙이고 나오는 정도였다. 24일에는 너무 바빠서 집에 못 갔고, 다음 날 이춘근 PD 긴급체포 사건이 터진 뒤로는 계속 MBC에 머물고 있다.

“이메일 압수수색은 언론 자유와 직결되는 문제”

이메일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됐나.
김은희
: 먼저 기사가 난 뒤 어떤 기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할 때까지 전혀 몰랐다. 지난 해 수사 당시 농담 삼아 “이러다 이메일도 수색되고 도청도 당하는 거 아냐?”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다들 “오버하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메일 압수수색을 당한 뒤 어느 게시판에 “이제 집까지 수색하겠네” 라는 비난이 올라오고 나자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지만 체포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상황이 상상 초월이다.

그 전까지 작가들은 참고인으로 소환 통보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보조 작가와 함께 체포 대상이 되었다.
김은희
: 작년 1차 소환 때는 작가가 참고인 명단에도 없었다. 2차에는 번역을 의뢰했던 보조 작가의 이름이 올랐고, 3차에서야 내 이름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작가가 체포 대상이 된 건 수사의 편의를 위해서인 것 같다. 원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선 이메일이 중요한 수사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 7월에 MBC <뉴스 후>의 작가가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수사와 관련해 출국금지를 당하고 검찰 수사를 받았다. 관련 카페에 신분을 밝히고 취재 요청을 했을 뿐인데 수사 대상이 되었다. 검찰이 그 작가의 이메일을 압수수색을 통해 방송 자료를 확보해서 다른 네티즌들을 수사했다. 그런 사례가 이번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PD들이 주로 MBC 메일계정을 쓰는 것과 달리 프리랜서인 작가들은 포털 사이트 메일계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용이하게 수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로 인한 업무상의 불편함도 있을 것 같다.
김은희
: 이메일도 못 쓰고, 전화도 사용하지 못한다. 다른 작가들 역시 앞으로 언제 어떤 프로그램 때문에 걸릴지 모르니까 다들 찜찜해 하고 일 관련 메일을 지우거나 사용하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나누곤 한다. 특히 이렇게 쉽게 취재 자료가 노출되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원 보호의 원칙이 무너질 수 있고, 그것은 언론 자유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열흘째 방송사 안에서 지내고 있는데 생필품은 어떻게 조달하나. 건강은 어떤가.
김은희
: 갈아입을 옷을 챙겨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나 동료 작가들이 자기 옷을 갖다 준다. 지금 입고 있는 것도 다 남들이 준 옷이다. 작년에 김보슬 PD가 회사에서 두 달 지내고 건강이 굉장히 나빠졌는데 겪어보니 알겠다.

가족들은 이 상황을 알고 있나.
김은희
: 어머니는 모르신다. TV를 안 보시기 때문에 내가 그 프로그램을 했고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모르시는데 군사 정권을 겪은 세대 분이시라 “나라에 끌려간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충격이 크실 것 같아 알리지 않고 있다. 며칠 뒤 칠순이신데 내가 나갈 수가 없으니까 다른 가족들이 내가 너무 바빠서 못 갈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이렇게 공권력을 동원한 수사는 상상 못했던 일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해당 기관이나 개인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
김은희
: 2006년 에서 방송했던 FTA 관련 내용이 청와대와 마찰이 있었는데 당시 청와대에서는 브리핑을 하고 신문에 반론 입장 광고를 냈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쪽에서 반박 브리핑을 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 반론보도 신청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공권력을 동원한 수사는 상상 못했던 일이다.

작년 7월 ‘오마이뉴스’에 편 일부 번역을 맡았던 정지민 씨의 주장에 대한 반박 기고를 했다. 프로그램 외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작가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뭔가.
김은희
: 초반 정지민 씨의 주장에 대해 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상대가 개인인데다, “다우너소를 광우병과 연결시키는 것은 왜곡” 등의 주장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걸러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지민 씨는 자료의 극히 일부만을 번역했고 우리 중 보조 작가만 얼굴 한두 번 본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내부 고발자, 제작진 중 한 명,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등으로 포장됐고 6월 26일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고시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 주장을 반영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절박한 심정으로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거짓 왜곡 방송으로 여겨지는 게 너무나 답답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글을 썼다. 어차피 팩트에 관심 없이 왜곡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계속 하겠지만 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당하다, 왜곡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번역 오류 논란, 검찰 수사와 관련되며 프로그램의 본질이 흐려진 면이 있는데 편에서 제작진이 말하고자 한 핵심은 무엇이었나.
김은희
: 핵심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막 타결되었는데 새로운 수입 위생 조건으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100%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해야 할 검역주권의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라는 의혹 제기였다. 즉 가장 핵심은 아레사 빈슨의 MRI가 아니라 졸속 협상의 문제점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었던 오역 역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통상적인 제작과정에서의 의역이나 후반작업에서 실수를 거르지 못해 생긴 단순 오류였다.

방송을 만들던 당시 그 후 벌어질 반향에 대해 예상했나.
김은희
: 방송 전날 나간 예고편이 평소의 10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불안하다, 제대로 밝혀 달라”는 글이 게시판에 쏟아졌다. 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부터 인터넷 공간이 광우병과 관련해 들끓었지만 관련 보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포화 상태였을 때 편이 방송된 거다. 아마 그 시점에는 어떤 프로그램에서든 광우병에 대해 다루었다면 그만한 반향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을 촛불집회의 촉매제로 지목하는 언론들도 있었다.
김은희
: 한창 촛불 정국일 때 일부 언론이 을 촛불의 발화점으로 지목했지만 정작 제작진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집회에 나왔던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이 당했던 공격이 나중에 고스란히 촛불 시민들에게 가는 게 안타까웠다. 보수언론의 보도는 대개 정지민 씨의 주장, 이 왜곡 날조 방송을 했다는 보도, 에 속았다는 촛불 시민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 때만 해도 에 대한 공격이 겨냥하고 있는 건 촛불 정국, 촛불 시민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목표대상이 다르다고 본다. 지금 겨냥하고 있는 건 방송과 언론자유다. 문제가 더 커지고 심각해진 거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오라마라 하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PD들은 언론노조와 각 방송사 노조를 통해 대응하고 있는데 작가들은 어떤가.
김은희
: 지금까지 작가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이긴 하지만 다들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수사중단요구 성명을 발표했고 각 방송사 시사교양 작가들이 수사 반대 서명을 받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 개인이나 한 프로그램의 일이 아니라 언론자유에 대한 문제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비단 시사교양 작가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제작진 여섯 명은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잘못한 게 없으면 출두를 해서 밝혀라”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은희
: 내가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것은 이 소송과 수사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오라마라 하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지 않고 만약 이번 수사가 선례가 된다면 앞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프로그램들이 다 이런 소송에 걸릴 수 있는데, 다들 잘못한 게 없어도 나가야 하나? 원본을 제출하고 검열을 받아야 하나? 혹은 수사를 받지 않기 위해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둘 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사가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수사가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은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은희
: 글쎄,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결과는 모른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와야 하는지는 다들 알지 않나. 그런데 그 상식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을 뿐이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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