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내조의 여왕>에서 이사 사모님 생신날의 노래방 신이 화제였지요? 다들 천연덕스러운 천지애(김남주)의 절정의 아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지만 저는 사모님의 마치 신년하례식에서 중전마마가 지을 법한 자애로운 표정이 신기했답니다. 죽는 날까지 그런 일은 없지 싶지만, 남이 아닌 우리 아이들에게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듣는다 해도 저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피할 것 같아서 말이죠. 가족이라 한들 평소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본 적이라곤 없으니 얼마나 닭살이 돋겠느냐고요. 그런데 사모님은 ‘퀸즈푸드 부인회’ 회원들의 민망하기 짝이 없는 아부의 향연을 겸연쩍어 하기는커녕 아예 만끽하고 계시더군요. 초등학생도 이내 알아챌 만한 ‘아부’를 한 점 의심 없이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이 마냥 신기하더라는 얘기예요. 노래 말마따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진 분이라 그런지, 아니면 워낙 고단수라 포커페이스에 능하신 건지 아직은 판단이 아니 서니 잠시 유보해두기로 하지요.

사모님은 천지애였을까요, 양봉순이었을까요?

다만 한때 MBC <하얀거탑>에 등장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의사 부인회’의 부원장 사모님(양희경)과 견주어 보면 확실히 그릇이 다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은 우연히 남편 역의 연기자가 김창완 씨라는 점에서, 그리고 조직상의 부인 서열로는 2위이지만 실세라는 점에서도 유사하지만 호감도 만큼은 극과 극으로 다르니 말이에요. 부원장 사모님이 심통 맞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만인의 지탄을 받은 반면 똑같이 부정 청탁과 뇌물수수에 앞장서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이사 사모님이 밉상이라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으니 저쪽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겠어요? 그게 전적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미모 덕이라면 외모가 부원장 사모님과에 속하는 저 역시 좌절이지 뭐에요. 그런 의미에서 <내조의 여왕>은 평범한 외모를 지닌 이들에게는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여고시절 빼어난 미모로 뭍 남성들의 흠모를 받던 여왕에서 백수의 아내로 전락한 천지애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결국 미모를 바탕으로 다시 도약할 게 너무나 빤하니까요. 아무리 남자들이 첫사랑에 맥을 못 춘다지만 천지애가 초라한 아줌마였다면 기획부장 한준혁(최철호)이 반발 심리로 지애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인턴에 기용할 리 없고, 또 퀸즈푸드 사장 허태준(윤상현)도 한낱 접촉 사고 피해자에게 어디 아랑곳이나 하려고요. 다 미모가 되니까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솔직히 사모님만 해도 그렇지 않나요? 천지애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옷가게를 비롯하여 도처에서 부딪혔을 적에 지애가 눈에 띌 정도로 예쁘지 않았다면 기꺼이 ‘인연’으로 받아들이셨을 리 없잖아요. 이쯤에서 저는 사모님의 과거가 궁금해집니다. 천지애 과였을까요, 양봉순 과였을까요? 지애처럼 타고난 미모였는지 아니면 봉순이처럼 거액을 들여 튜닝을 했는지, 과연 사모님에게도 상사 부인에게 잘 보이겠다고 먹갈치며 생굴을 사다 나르고 장례식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나르는 시절이 있었는지, 남편이 사내야유회에서 눈치 없이 첫 골을 넣을까봐 마음 졸였을지, 별의별 것들이 죄다 궁금합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그 내공!

알아서 뭐에 쓰려고 그러냐고요? 솔직히 헤쳐 놓고 보면 다들 지 잘난 맛에 울뚝불뚝 할 부인회 회원들을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로 제압하는 사모님의 카리스마가 부럽긴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건 퀸즈푸드 회장님도 아들인 사장보다 신뢰한다는 이사 남편을 좌지우지 할 내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랍니다. 보세요, 양봉순도 피나는 노력으로 미모를 갖췄고 내조 또한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지만 정작 남편이 요지부동 말을 안 들어 마음고생을 하잖아요. 온달수도 천지애의 말이라면 벌벌 떨기는 하지만 워낙 선비 같은 성정이라 청탁에 협조할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런 걸 보면 내조의 여왕들 중에 아무 때나 남편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건 사모님뿐이 아니겠느냐고요. 바로 사모님의 그런 기술 한 수 전수 받고 싶다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백하자면 제 남편은 타협을 모르고 꼬장꼬장하기론 온달수 못지않고 때론 한준혁 모양 냉정하기도 한지라 평생 나름 팍팍하게 살아왔거든요. 결국 미모가 관건이라는 잔인한 말씀을 하시면 깨갱할 수밖에 없지만요. 어쨌든 내년 생일에 저를 불러주신다면 큰 맘 먹고 “사모님, 태어나 주셔서 고맙습니다”를 외쳐드릴 생각이 있사오니 부디 관심 좀 가져주세요. 남은 세월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저도 사모님처럼 유유자적한 표정으로 살고 싶어 그런다면 이해해주실는지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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