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의 이력 하나. 인터넷 얼짱, 청춘 시트콤 출신, 가요 프로그램 MC,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청춘 드라마의 주연. 어떤 배우의 이력 둘. 연변 사투리를 쓰며 일일 드라마를 종횡무진한 여주인공.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몇 kg이 넘는 가채를 머리에 이고 결혼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치른 대하사극 출연. 그리고, 지금 이미 100여곡의 곡들을 작곡. 그렇게, 구혜선은 사람들의 예상을 앞질러갔다. 누구도 청춘시트콤과 가요 프로그램의 MC를 하던 청춘스타가 KBS <열아홉 순정>에서 6개월여 동안 연변 사투리를 쓰는 연기를 하고, 다시 SBS <왕과 나>에서 사극 연기에 도전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지금이 제가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잖아요. 지금 부딪치지 못하면 다시 그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구혜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 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구혜선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청춘 드라마부터 사극까지, 순박한 처녀 양국화부터 비운의 여성 폐비 윤씨에 이르는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가졌다. KBS <꽃보다 남자>는 구혜선의 다양한 이력들이 모두 더해진 결과물이다. 여러 출연작들에서 얻은 경험은 구혜선이 “또래의 연기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드라마를 만드는 기쁨”을 느끼며 여러 청춘스타들과 안정된 조화를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다. “다른 연기자들보다 얼마나 더 관심을 받느냐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아요. 저 스스로 F4의 팬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하하.” 그리고, <꽃보다 남자>에 쏟아지는 관심은 구혜선의 또 다른 경력에 새삼 눈길이 가도록 하고 있다. 구혜선이 과거 한 연말 시상식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재연하며 선보인 가창력이나, 자신이 작업한 단편 영화 <유쾌한 도우미>의 음악을 직접 만든 사실이 새삼 부각된다. 구혜선은 언젠가 작곡한 곡들을 모아 앨범도 낼 계획이다. 하지만 그건 일단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를 만족할 만큼 소화한 뒤의 이야기. 그래서, 구혜선의 플레이리스트는 이것이다. <꽃보다 남자>가 끝난 뒤, 그가 잠시나마 ‘휴가를 즐길 때 듣고 싶은 음악’.




1. Jason Mraz의
“쿨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고… 1%를 비워 놓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기쁜 감정이든 슬픈 감정이든 그걸 꽉꽉 채워서 강요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제이슨 므라즈가 비워놓은 1%의 틈 안으로 들어가서 여유롭게 내 생각들에 빠질 수 있거든요. 뮤지션이 만들어놓은 감정에 깊게 빠지게 하는 음악도 좋지만,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게 만드는 음악도 좋다고 생각해요.” 구혜선은 제이슨 므라즈의 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팝적인 느낌 안에 다양한 장르들이 치밀하게 뒤섞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한껏 여유롭게 표현해내는 이 비범한 뮤지션이야말로 빡빡한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구혜선에게 휴가의 여유로움을 선사할 최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구혜선은 이 ‘1%를 비워주는 뮤지션’의 베스트 트랙으로 ‘Lucky’를 선택했다. “이렇게 슬픔과 느슨한 여유를 함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제이슨 므라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2. Maroon 5의
구혜선이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마룬 5의 앨범 을 두 번째로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중학교 시절 밴드활동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때 롤러코스터 같은 밴드의 곡들을 카피하면서 프로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 중에서도 롤러코스터처럼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밴드가 좋았어요. 마룬 5도 마찬가지에요. 록과 블루스, 펑크(funk), 팝이 어느 한 곳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있잖아요. 그런 조화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좋아요.” 특히 구혜선이 좋아하는 앨범은 .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히트곡 ‘This Love’도 좋지만, 블루스와 펑크(funk)등 흑인 음악의 감성이 보다 진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This Love’도 좋지만, 저는 이 곡의 아련함이 더 세게 와 닿아요. ‘She will be loved’”




3. 넬의
구혜선이 세 번째로 고른 앨범은 그룹 넬이 자신들의 곡을 새롭게 편곡한 스페셜 앨범 다. 앨범 제목부터 이미 사람들에게 휴식을 권하는 것 같은 이 앨범은 정규 앨범들과 달리 어쿠스틱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면서 넬의 멜로디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넬의 다른 앨범들도 좋아하지만 이 앨범은 내가 넬을 왜 좋아했는지를 더 분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넬의 우울함이라는 것은 사실은 이런 것이라고 드러내는 느낌이었어요. 지금도 혼자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제 마음속으로 빠져들고 싶을 때 종종 듣곤 해요.” 구혜선은 이 앨범 중에서도 ‘Good night’을 골랐다. 원곡을 먼저 들은 후, 이 곡을 들으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다른 사람도 느끼길 바란다면서.




4. Jack Johnson의
유명한 서퍼, 환경 운동가, 무공해 태양열발전을 이용한 스튜디오에서 녹음. 잭 존슨만큼 자연과 함께 하는 휴가에 어울리는 뮤지션은 없을 것이다. 구혜선 역시 잭 존슨이 자연 속에서 만들어낸 음악들의 팬이다. “만약 제가 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그리고, 어느 섬에 간다면 그곳의 밤하늘을 보며 이 앨범을 듣게 될 것 같아요. 휴양지에서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곡들은 많죠. 하지만 잭 존슨은 그걸 넘어서 자연 그대로의 촉감을 느끼게 해줘요. 꼭 바람소리나 바다의 내음이 느껴질 만큼. 그러면서 그 안에 있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줘요. 그 한없는 평화로움과 사색이 정말 좋아요.” 온갖 자극으로 채워진 이 시대에, 구혜선은 무자극의 음악으로 정신없는 도시 생활의 위안을 얻는 듯 했다. 그래서 그가 고른 곳은 이 위안의 시작인 ‘All at once’.



5. 이소라의
“이소라 선배님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세요. 하지만 저는 많은 분들이 이소라 선배님이 최고의 여성 프로듀서라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구혜선은 마지막 앨범으로 이소라의 를 선택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배우로서의 휴식기를 가졌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음악작업이다. 그리고, 이소라는 구혜선의 롤 모델 중 한 명이다. 한국 대중음악 뮤지션 중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의식과 감정을 앨범에 투영하는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프로듀서가 바로 이소라이기 때문이다. “휴가라는 게 꼭 쉬기만 하는 시간은 아니잖아요. 결국 그건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얻는다는 건데, 이소라 선배님의 앨범만큼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품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 중에서도 ‘Sharry’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음악을 하면서 제 마음의 일기장을 쓰고 싶어요.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음악은 나이테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구혜선이 음악을 잘한다, 재능이 많다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음악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구혜선은 자신이 언젠가 작업할 음반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을 했다.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늘 해왔던 거고, 제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나이테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꼭 음반으로 내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음악을 계속 할 거니까요. 다만 진짜로 음반을 낼 기회가 생긴다면 대중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도 넣고 싶구요.” 인터넷 얼짱에서 안정된 연기자로, 다시 뮤지션으로. 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줬던 구혜선은 뮤지션으로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구혜선이 언젠가 낼 자신의 나이테 같은 앨범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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