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MBC 수 아침 7:40
평소 3분 이상 본 적이 없는 <하얀 거짓말>을 10분 넘게 지켜본 건 비 내리던 어제 아침이었다. 집을 일찍 나선 덕분에 출근시간은 여유로웠고, 김밥 사러 들른 분식집은 한산했다. 드라마에서는 재벌 2세 정우(김유석)에게 버림받고 그의 동생인 자폐증 환자 형우(김태현)와 결혼한 은영(신은경)이 아들을 잃어버리고 애태우는 중이었다. 그 아들은 정우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였고, 아이를 내다 버린 장본인은 정우의 아내 나경(임지은)이었다. 김밥을 말던 70대 노부부는 손윗동서의 음모와 시어머니(김해숙)의 냉대에 한숨짓는 은영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15년 전에는 X세대의 대명사였고, 8년 전에는 조폭마누라였던 신은경이 저토록 가련한 여인으로 변모할 줄은 그녀 자신도 몰랐으리라. 그렇지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그녀가 여전히 연기자라는 사실. 화려했던 과거 배역들을 뒤로하고 강마른 몸과 파리한 얼굴로 비련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신은경의 모습은 왕년의 청춘스타가 중견(中堅)으로 넘어왔음을 알리는 선언처럼 보였다.
글 김은영

<미워도 다시 한 번> KBS2 수 저녁 9:55
이번 주엔 유독 여왕님들의 눈물이 차고 넘쳤다. 혜정(전인화)은 자살을 시도한 딸 때문에 오열하고, 명인(최명길)은 꿈같은 첫사랑의 귀환에 혼절하며, 윤희(박예진)는 민수(정겨운)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전적으로 여자들이 주도하는 게임이었다. 그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의 갈등 구도는, 최소한 멜로드라마 전통 안에서 <하얀 거탑> 못지않은 성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어제 첫사랑 앞에서 ‘당신에게 사랑받는 동안은 명진그룹 한회장이 아니라 여자로 살 수 있다’던 명인의 눈물 어린 대사를 듣고 있으니, 아부하는 부하 직원에게 ‘내가 여자로 보이느냐’던 극 초반 명인의 호통과 대조되어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찜찜해진다. 이에 더해 윤희의 당돌한 결혼 계약서는 결국 민수에 대한 사랑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극 후반 둘의 멜로에 위기를 가져오는 계기로나 사용될 모양이다. 딸 때문에 이성을 잃은 듯 보이는 혜정의 모습에서도 서서히 단순 악녀의 클리셰가 감지되고 있다. 물론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들이 눈물을 닦고 끝까지 게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길 기대해본다.
글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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