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왕의 귀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복귀한 개그맨 최양락 씨가 다시 돌아올 마음을 먹은 데엔 “친구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은 알아줘도 아빠는 안 알아줘”라는 아들아이의 투정이 결정타였다지요? 최양락 씨와 달리 이경규 씨는 잠시 잠깐의 일본 유학 시절을 빼고는 쉼 없이 달려오셨지만 예전에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기로 치자면 이경규 씨 딸 예림이의 친구들도 매 한가지가 아닐는지요. ‘규라인’의 수장으로 알려졌으니 그저 ‘연예인인가보다’ 할 뿐 아이들로서는 그다지 관심도 없지 싶어요. 관심은커녕 오히려 후배들에게 늘 어깃장이나 놓고 호통이나 치는, 고리타분한 아저씨로 보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아, 그게 저는 안타깝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같은 연배이기도 하고 초창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카메라’(1989-1991)의 진가를 아는 세대여서 그런가봅니다. 프로그램 몇 개 막 내렸다고 여기저기서 치이는 모습이 마치 실컷 아등바등 생고생해서 아이들 길러 놨더니 말 안 통한다며 따돌림 당하는 우리 또래 중년 남자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는 듯 해 마음이 짠하거든요.

이경규 씨, 돌아와서 반가워요

기억하시죠? SBS <모래시계>가 귀가 시계라는 말도 있었지만 ‘몰래카메라’ 때문에 주말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잖아요? 그때의 ‘몰래카메라’는 2005년의 ‘돌아온 몰래카메라’와는 달리 대단한 세트나 인력이 투입되지 않은, 그저 순수한 이경규만의 원맨쇼였고, 그래서 더 정겨웠던 것 같아요. 출연자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매회 골탕 먹이는 깐죽 대마왕이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거든요. 그런가하면 ‘이경규가 간다 – 양심냉장고’도 사회적반향이 컸고, ‘대단한 도전’도 갖가지 진기록이 많이 나온 프로그램이지만 이경규 씨의 역량이 잘 발휘된 프로그램을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어린이들과 함께 했던 MBC <전파견문록>이지 싶어요. ‘신호등 – 네모 안에 사람이 있어요’, ‘우정 – 차에 친구가 안 타면 안 탔다고 소리치는 거예요’, ‘이름 – 엄마는 자기 걸 안 쓰고 내 걸 많이 써요’등 주옥같은 어록을 탄생시킨 이 프로그램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건 물론 성인 패널들과 아이들의 징검다리 역할도 노련하게 잘해내셨는데 최근 맡으신 SBS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에서의 진행은 마치 그때 그 시절을 보는 듯 반가웠습니다.

역마살 낀 아버지가 타지를 떠돌며 방황하다가 제 집을 찾아오셨을 때의 식구들 기분이 딱 이러려나요. 허구한 날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호통과 짜증만 부리던 양반이 아이들의 반말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운전할 때마다 옆 차와 레이스를 즐긴다는 유혜정 모녀에게 조언을 하는 등 어른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니 감격할 만도 하지요. 하지만 반면 SBS <절친노트>에서의 모습은 유감천만이었네요. 지상렬과의 한 바탕 혈전은 흥미로웠지만 그 외엔 시종일관 <라인업>을 다시 보는 것 같았으니 말이죠. 이미지 실추의 원인인 ‘라인’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갖고 계신 건 아니신지 의심까지 들던데, 설마 그건 아니시죠? ‘이경규는 본인이 MC일 때보다 초대 손님일 때 훨씬 빛난다’는 세간의 의견, 아마 알고 계실 거예요. 특히 <무한도전>과 <놀러와> 등 유재석이 MC일 때 대박을 터트렸다는 평가를 받고 계신데 그렇다면 막말과 호통을 주고받는 파트너 보다는 오히려 배려잘하는 섬세한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때 빛이 난다는 얘기잖아요.

우리, 양희은 씨의 충고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스타주니어쇼 붕어빵>과 KBS <해피선데이>의 새 코너 파트너로 예의 바르고 꼼꼼하기론 감히 따라올 이가 없을 김국진을 선택하신 점 마음에 들어요. 서로 빈 곳은 채워주고 넘치는 곳은 적당히 덜어내며 상부상조 잘 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얼마 전 가수 양희은 씨가 MBC <놀러와>에서 ‘나이 들어서도 후배들하고 잘 지내는 비결 세 가지’를 일러주시던데 혹시 보셨어요? 그게 ‘칭찬 많이 해주고’, ‘돈 계산 잘 해주고’, ‘그리고 사라진다’라는 군요. 이경규 씨나 저처럼 나이 먹은 이들이 마음에 새겨둬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을 향한 혹독한 질타나 깐죽거림 같은 건 “이것들아~”를 연발하는 안영미 같은 레벨의 후배에게 일임하고 이젠 강유미처럼 “너희들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만 하자고요. 마음속에 있는 칭찬과 배려를 겉으로 드러냈다 하여 ‘이경규가 변했다, 실망했다’ 할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어쩌누 하고 걱정할 사람은 더더욱 없고요. 어쨌거나, 부디 ‘몰래카메라’ 때의 익살과, ‘이경규가 간다’ 때의 양심과, ‘전파견문록’에서의 유쾌한 재치를 KBS 새 주말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이만 총총!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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