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요새는 은둔거사마냥 집에 콕 박혀서 나가지도 않는 날도 쌔고 쌨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후디를 푹 눌러쓰고 구시렁거리며 동네를 싸돌아다닌다. 좋아하는 까페에도 가고 사람구경도 하고. 워낙 변화가 심한 동네인지라 며칠만 안 갔던 골목을 빼꼼 들여다보면 그 새 주택이 까페가 되어있고 있던 가게는 망했고 빌딩이 들어서 있곤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며칠 전의 그 골목이 맞단 말이야 정말? 아아..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라고 탄식을 하며 집으로 타달타달 돌아오다가 집 바로 앞의 바에 들른다.

비닐봉다리에 술을 담아서 파는 작디 작은 칵테일 바. 비닐. 이미 ‘홍대의 명소’ 처럼 되어버려서 매일 저녁 외국인들이 한 다스 정도씩은 그 앞에 서서 FXXXing 뭐가 어쨌다느니 오-SXXX이 어쨌다느니 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원짜리 맥주 한잔으로 짧은 동네산책을 마무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물론 홍대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은 색색깔 곱기도 한 칵테일을 비닐봉다리(라기보다는 칵테일 전용 비닐지퍼백에 가깝다)에 담아서 테이크아웃 하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혹시 비닐에 들러서 칵테일을 한 잔 테이크아웃 하게 되면 작은 가게 안 쪽을 살짝 들여다 봐 주길.

덧. 10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비좁은 가게를 왜 자꾸 비집고 들어가냐고? 비닐엔 사실 술보다 더 좋은 음악이 있다. 가게 안쪽에서 팡팡 음악을 틀고 있는 분은 바로 그룹 코코어의 베이시스트 김재권 씨. 좋지 않을 수가 있나.

글ㆍ사진.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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