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은 잘 돼야 할까? 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야 먹고 살아야 하고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오랜 꿈도 실현시켜야 하니까 응당 그럴 것이다. <쥬라기공원> 한 편의 영화가 현대자동차 1년의 수출액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더라 하는 그 유명한 쥬라기공원론 이후 차세대 산업으로 나름 공들이길 근 십여 년, 이제 거위가 사료 그만 축내고 얼른 황금알을 쑴풍쑴풍 낳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정부의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등의 영역에서는 황금알까진 몰라도 14k알 정도는 슬슬 낳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관객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저 1994년의 <블루시걸>의 악몽 이후 기대와 대실망을 세트로 반복하길 수차례, 이제 관객의 마음은 믿음을 져버린 연인에 대한 분노로 순간표백된 백발마녀의 머리처럼 하얗게 세어버린 지 오래다. 한번에 열댓 편씩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시간 맞고 마음 맞아서 골라보면 그뿐, 무슨 월드베이스볼 클래식도 아닌데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긴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고 고단한 것이다.

내가 장형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은 인접 업종 관계자로서의 동병상련의 마음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문화산업적인 고려 같은 쪽으론 아는 게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의 작품은 그냥 신선하고 재밌다. 관념적이지 않고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과욕만 앞세운 유사품도 아니다. 그는 마치 어어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면서 어색하게 더듬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세련된 솜씨로 많은 한국의 장단편 애니메이션들이 범했던 시행착오를 비껴나간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건 그의 주인공들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며, 그들은 우리처럼 사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안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멸종 직전인 풋풋한 감정을 건드리곤 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들, <편지>(2003), <아빠가 필요해>(2005),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 등은 세계 곳곳의 영화제에 초청되고 상영되고 수상도 했는데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그의 작품이 상영되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지경이란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상을 주지 않은 영화제는 안목이 없는 것이다.

그는 지금 (드디어) 장편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나는 코엔 형제와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타란티노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박찬욱과 홍상수와 봉준호와 오시이 마모루와 안노 히데아키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그의 작품을 기다린다-라고 말하면 너무 부담 주는 걸까?
아무튼, 그의 작품 <무림일검의 사생활 + 아빠가 필요해>는 단돈 1000원이면 인터넷에서 합법적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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