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뭔가 다르다. 재벌과 그의 2세가 등장하고, 불륜과 출생의 비밀에 사생아와 파파라치까지 등장한다. 자극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췄지만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해내는 배우들과 단순히 독한 설정에서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잘 만든 통속극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통속극도 잘 만들면 진심이 되고, 의미가 담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다른 ‘막장 드라마’들과 어떻게 다른지 <10 매거진>강명석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KBS <미워도 다시 한 번>은 SBS <여인천하>같은 사극에 어울릴 여성들이 사는 세계다. 목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명진 그룹 오너 명인(최명길)은 여제(女帝)고, 그의 남편 정훈(박상원)의 옛 연인이자 30여년 동안 불륜 관계였던 톱스타 혜정(전인화)은 명인의 정적이며, ‘한국의 힐러리’를 꿈꾸는 아나운서 윤희(박예진)는 명인의 후계자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여성들은 정훈의 어머니(김용림)마저 정훈이 명진 그룹의 실권을 장악하도록 돕는 ‘킹 메이커’를 자처할 만큼 적극적이다. 반면 남성들은 정훈이나 명인의 아들 민수(정겨운)처럼 경영권에 큰 관심이 없거나, 윤희의 아버지(주현)처럼 큰소리만 칠 뿐 자식을 보호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동명의 영화처럼 가난한 남자가 연인을 버리고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설정에서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주체를 뒤바꾼다.

남자를 택하는 것도, 벌주는 것도 모두 여자

두 사람 중 누굴 선택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정훈이 아니라 명인이다. 정훈이 혜정과 자신의 스캔들 기사를 보면서도 덤덤한 것과 달리, 명인은 민수의 친부이자 사고로 죽은 옛 사랑(선우재덕)과 지금 곁에 있는 정훈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과거의 정훈처럼 성공과 사랑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과거의 순정과 현재의 외로움에 관한 것이다. 명인과 혜정이 정훈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점점 늙고 외로워지는’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재벌과 불륜과 출생의 비밀을 모두 보여줌에도 ‘막장’의 혐의에서 벗어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여성들은 성공이나 복수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독해진다.

명인은 민수를 위해 윤희를 궁지에 몰아넣고, 혜정은 정훈을 되찾기 일부러 명인에게 접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명인에게 항의하는 윤희의 말처럼, 냉정한 그들이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나서는 것은 모래처럼 움켜쥘 수 없는 사적인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자극적인 설정과 독한 여자들이라는 상업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되, 그것을 치열한 청춘의 시간이 지나버린 중년의 스산함으로 감싸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사회적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그토록 원하던 사랑은 자신의 곁에 오지 않고, 자식은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 남은 것은 수면제로 잠을 청해야 하는 쓸쓸한 밤뿐이다. 그들은 지나온 인생의 허망함을 깨달은 뒤에야 그것을 되돌리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명인은 ‘뒤를 밀어 주고 싶은’ 윤희를 민수와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윤희는 명인의 과거를 그대로 밟을 것이다.

통속극도 바뀌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정훈 같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민수가 절규하며 말한 것처럼, 정훈은 30여년 동안 사랑하는 정부와, 연민의 정을 갖게 된 아내, 그리고 두 여자의 자식들에게 모두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인과 혜정은 정훈처럼 비록 위선적인 방법으로나마 일과 사랑, 혹은 가정을 양립할 수 없다. 돌아오지 않는 정훈에 대해 한탄하며 “나를 지탱해준 것은 일”이라고 말하는 혜정의 모습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 그리는 여성의 인생을 함축한다. 사랑을 버리면서 일을 얻었고, 사회적 명예를 얻은 대신 자식들에게 친아버지를 찾아주지 못하는 삶.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그 지점에서 30여년 전 영화 속 남성과 다른 성공한 현대 여성의 고민을 짚어낸다. 여성은 일과 사랑, 혹은 일과 모성을 양립할 수 없는가. 나이든 여성은 아무리 성공해도 남편과 자식 외에는 쓸쓸함을 견디는 삶 밖에는 남지 않는가. 그래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여성 위주의 통속극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통속극을 낳은 여성의 욕망에 대한 본질을 보다 깊게 파고든다. 과연 명인과 혜정은 지나온 인생이 ‘미워도’, 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껴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윤희는 명인과 다르게 민수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성의 삶은 조금씩 변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통속극도 바뀌고 있다.
글 강명석

KBS <미워도 다시 한 번>에는 두 개의 카메라가 존재한다. 하나는 인물들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공적 카메라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사생활을 들추는 파파라치의 카메라다. 극중에서 이들 카메라가 집중적으로 포착하는 인물들은 주로 여성, 즉 기업가 명인(최명길), 배우 혜정(전인화) 그리고 젊은 앵커 윤희(박예진)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다. 드라마는 이들에 대한 두 카메라의 시선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방식을 통해 극의 갈등을 이끌어낸다.

이중적 카메라의 시선을 역이용하는 여자들

예컨대 극중에서 명인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그녀가 연인과 함께 파파라치에게 쫓기는 악몽으로부터 시작된다. 잠시 뒤 현실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아시아 CEO 상’ 선정 소식을 접한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악몽과 현실, 그리고 루머를 쫓는 파파라치와 성공의 영광을 조명하는 공적 카메라의 명백한 대비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은 혜정의 첫 등장에서도 반복된다. 카메라 앞에서 열연하는 혜정은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배우의 모습이다. 그러나 곧이어 한 대기업 회장과의 스캔들이 터지자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수많은 기자와 파파라치들의 카메라 공격이다. 윤희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던 그녀의 모습은 재벌 2세 민수(정겨운), 정치인과의 연이은 파파라치 사진들 앞에서 흔들린다. 성공한 그녀들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늘 스캔들의 그늘이 악몽처럼 잠복되어 있고, 드라마는 두 카메라의 분열증적 시선을 오가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드라마가 더욱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그녀들이 미디어의 시선에 일방적으로 응시, 통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성을 파악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역이용하는 부분이다. 명인, 혜정, 윤희는 공적 카메라를 이용해 자신들을 각각 모든 여자들의 꿈, 만인의 연인,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로 마케팅한다. 동시에 그 공적 이미지 뒤편으로는 파파라치와 스캔들까지 서슴없이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는 독한 면을 보인다. 혜정은 인터뷰와 파파라치를 이용해 정훈(박상원)과의 관계를 서서히 밝힌다. 명인은 윤희를 추락시키기 위해 스캔들을 조작하고, 혜정을 위협했던 파파라치를 매수하여 복수의 도구로 이용한다. 윤희 역시 명인 첫사랑의 죽음과 관련된 언론 정보를 손에 쥐고 그녀에게 도전한다. 매스미디어의 이중적 시선에 위협당하면서도 그 권력을 교묘하게 역이용하는 그녀들의 영악함은 이 드라마를 지금껏 보지 못한 스케일의 독한 여성들 간의 격전지로 만드는 주 요인이다.

흥미로운 악녀들의 멜로드라마

그리하여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독한 여성들끼리의 대결을 주로 그린 기존의 드라마들이 관습적으로 선보여 오던 영역을 과감히 뛰어넘는다. 그녀들의 대결은 더 이상 SBS <여인천하>와 같은 내명부 시점의 야사도, 뷰티샵 인수나 누가 부엌 혹은 내 남자의 침대를 차지하는가의 문제와 같은 소소한 쟁탈전이 아니다. 자본과 미디어의 권력과 고도의 심리전을 활용하는 밀도 높은 드라마다. 물론 이 작품의 독한 여성들 역시 통속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여성 인물들이 지닌 특성과 한계를 이어받고 있다. 과거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명인과 혜정의 집착과 상처, 그리고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에 대한 윤희의 책임감은 이미 익숙한 설정들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동시에 보여주는, 사회적 응시의 대상과 주체를 넘나드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은 이들을 SBS <내 남자의 여자>와 KBS <태양의 여자>에 이어 흥미로운 악녀들의 계보에 포함시키게 한다. 과연 그녀들은 멜로가 더욱 강화되는 후반부에 가서도 이 전형적인 통속극을 구원할 수 있을까.
글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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