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좋아하지만 순정만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로맨스, 특히 남의 로맨스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마키무라 사토루는 신간 뿐 아니라 절판된 예전 작품까지 꾸준히 사 모으게 되는 유일한 순정만화 작가다. 1973년 데뷔 후 <사랑의 아랑훼스>, <맛있는 관계>, <이매진>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일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숙제 사이에서 꿋꿋하게 중심을 잡고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를 그려온 이 작가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요리사, 발레리나는 물론 평범한 OL의 삶을 통해서도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과 그 안의 관계들을 깊이 있게, 그러면서도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놓치지 않고 펼쳐놓는다.

마키무라 사토루의 최근작이자 현재 4권까지 발매된 <빌리브>는 ‘루카’라는 예명을 가진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기존에 그가 내놓은 작품들과 달리 <빌리브>는 루카를 중심으로 놓는 대신 중소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서른일곱 살의 워커홀릭 매니저 요리코가 우연히 만난 술집 아르바이트생 루카를 심야 예능 프로그램의 대타 게스트로 집어넣으면서 시작된다. 타고난 미모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루카는 곧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고, 사진집 발간과 CF 출연을 거쳐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 자리를 차례로 따낸다. 이렇게 보면 <스타 논스톱> 류의 연예계 판타지를 그린 만화 같지만 <빌리브>는 연예계라는 기묘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계산과 음모,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뇌와 외로움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섹시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 때문에 내심 속상해 하는 글래머 스타,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스타덤에 오른 인디 뮤지션의 방황, 헌신적으로 키워 온 배우의 이적에 상처받는 매니저 등 루카의 이야기 사이사이 다양한 연예계 에피소드가 촘촘하게 배치된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그 바닥’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그 밖에도 “여성 탤런트는 여성층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던가 “얼굴로 안 되면 캐릭터로, 말로, 개성으로. 그 중 하나가 맞아떨어져 인기를 끌면 그 때부터 반 년이 승부”라던가 하는, 기본적이지만 핵심을 짚는 요리코의 내레이션 역시 수많은 연예인의 매니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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