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 “예능 늦둥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 유명 DJ 윤종신이 있었다. 유명 DJ 윤종신이 있기 전, 고뇌하는 음악인 윤종신이 있었다. 윤종신, 그는 과연 몇 개인가.”
– 2008년 11월 19일, KBS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유희열 –

“제 멜로디, 이야기, 웃음들 가끔씩 떠올려 주세요. 한 우물 못 파고 번잡스럽게 살았지만 그 모든 곳에 윤종신의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 2008년 12월 6일, MBC <명랑히어로>, 윤종신의 가상 유언 –

정석원 : 작곡가. 그룹 015B 시절 윤종신을 객원 보컬로 영입, 원래는 ‘동전 두 개’였으나 물가 상승에 따라 ‘동전 세 개’, ‘동전 네 개’ 등으로 숫자가 늘어나다 휴대폰의 등장으로 더 이상 구전되지 않는 ‘텅 빈 거리에서’를 작곡, 윤종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정석원은 이후 윤종신의 솔로 3집 앨범까지 함께 작업, 윤종신이 개그 소재로 삼은 ‘몰랐었어~’의 ‘너의 결혼식’도 작곡했다. 지금은 새 앨범 <동네 한 바퀴>에 “예능늦둥이가 아니다”라는 홍보문구까지 붙는 윤종신이지만, 당시 윤종신은 새로운 감성의 발라드 가수였다. 그의 가사는 이별한 여성에 대한 절절한 감성으로 가득했지만, 발음을 정확하게 하면서 있는 힘껏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신파가 아닌 애틋한 회고였다. 죽음마저 초월하겠다는 신파 발라드 사이에서 윤종신은 소심한 도시 남자의 순정을 일상 속에서 담아내는 새로운 발라드 가수였다. 그 때는 몰랐었어. 이 남자가 예능 늦둥이가 될 줄.

김병욱 : SBS <순풍 산부인과>부터 MBC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유명한 시트콤이란 시트콤은 죄다 만든 시트콤 감독. 윤종신은 <순풍 산부인과>시절부터 그의 팬으로,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카메오 출연 뒤, SBS <똑바로 살아라>의 주제가를 작곡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윤종신은 다른 장르로 진출, 각종 영화 카메오 출연과 삽입곡 작곡을 하다가 결국 MBC <논스톱 4>에 고정출연했다. 특히 <논스톱 4>는 그의 예능 인생을 열어준 작품이다. 작곡가 출신으로 이제는 현실에 찌든 ‘윤종신 교수’의 캐릭터는 현재 윤종신의 캐릭터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윤종신은 <논스톱 4>의 OST를 프로듀싱, 한예슬의 ‘그댄 달라요’ 등의 히트곡을 작곡했다. 개그와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시너지를 일으킨 것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윤종신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부터 ‘내 사랑 못난이’에서 이주일이 리메이크했던 CCR의 ‘수지 Q’를 인용하고, ‘팥빙수’처럼 코믹한 분위기의 곡을 만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SBS <일요일이 좋다>의 ‘옛날 TV’에서는 심형래 출연 당시 1980년대 코미디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라디오 DJ로서 그의 개그 감각은 유명하다. 돈 벌려고 웃긴다기 보다는 웃기기도 하고 음악도 하는 사람이 그걸로 돈도 버는 쪽에 가까울 듯.

김장훈 : 가수 혹은 자선 사업가. 윤종신-유희열-김장훈은 서로 형 동생하는 사이로, 이들은 각자 떨어져 있을 때는 종종 멋진 모습도 보여주나, 함께 할 때는 유희열이 작정하고 망가진 ‘해변 무드송’이나 김장훈과 윤종신이 입 크기를 비교하는 CF를 찍는 등 발라드 업계를 구제할 수 없는 늪으로 빠뜨리곤 했다. 특히 김장훈이 유희열이 진행하는 <라디오 천국>의 코너
‘김장훈의 WHO’에서 윤종신을 2주에 걸쳐 원심분리기 돌리듯 샅샅이 분석해 갈아버린 것은 윤종신의 이미지에 결정타, 혹은 치명타를 안겼다. 그에 따르면 윤종신은 객원가수로 시작해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거쳐 영화와 예능까지 발을 뻗쳤고,
김도향에서 성시경에 이르는 가수들에게 작곡을 해주며, 심지어
군가교가까지 작곡했다. 여기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플라멩고까지 췄다고 한다. 그러니 윤종신의 롤모델이 코미디와 영화 양쪽에서 최고가 된 기타노 다케시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장훈의 방송은 대중에게 윤종신이 극과 극에 가까운 활동들을 얼마나 무리 없이 해왔는지 인식시켰다. 작업실에서는 ‘거리에서’를 작곡하다 스튜디오에서는 ‘라디오 스타’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니.

강호동-유재석 : 한국을 대표하는 2명의 MC. 강호동은 윤종신과 현재 같은 소속사이고, 윤종신이 전미라와 만날 당시 “둘이 결혼했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잡아주는 등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윤종신이 본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하게 된 것 역시 강호동이 메인 MC였던 MBC <황금어장>. 유재석은 윤종신과 SBS <일요일이 좋다>의 ‘옛날 TV’, ‘기승사’,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등을 함께 하면서 윤종신이 오락 프로그램에 안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황에 따라 출연자의 아픈 곳을 찌르거나, 타인의 개그를 이른바 ‘주워먹기’ 식으로 발전시키는 윤종신의 개그 스타일은 이른바 ‘2인자’ 스타일에 어울린다. 하지만 유재석과 강호동도 ‘형’이라고 부르는 나이에, 오랫동안 DJ 활동으로 다져진 진행 솜씨는 그가 좋은 ‘보조 MC’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버라이어티 쇼에서 윤종신은 유재석이든 이효리든 누구와도 부담 없이 상황극을 펼치고, 때론 진행을 거들면서 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유희열 : “자신의 앨범에 시간이 부족함에도 너무나 성심성의껏 작업에 임해준 광기어린 천재 희열이” 윤종신은 자신이 발탁해 앨범 <愚>의 전곡 작곡을 맡긴 유희열을 이렇게 표현했다. 12년 뒤 유희열은 윤종신을 위해 데뷔 후 처음으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윤종신 역시 5개의 공중파 오락 프로그램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천국>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두 사람은 발라드 뮤지션이자 라디오 DJ로 일가를 이뤘고, 발라드 뮤지션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발라드 뮤지션들이 결국은 ‘점잖고 자상한 오빠’의 이미지였다면, 이들은 라디오를 바탕으로 일상의 연애담과 돈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뮤지션의 고민을 온갖 ‘유치 황당 애로 개그’에 섞어 전달하면서 대중과 뮤지션이 친근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을 소개하고, 윤종신이 MBC <라라라>를 통해 음악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친근함이 대중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발라드 업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발라드, 또는 1990년대 뮤지션들의 정서적 지향점을 일정 부분 바꾸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서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유희열이 <라디오 천국>에서 여전히 ‘인문 서적’을 즐겨 읽고, 우아한 생활을 한다는 식의 개그를 하며, 연애 상담을 통해 여전히 ‘오빠’의 이미지가 있는 것과 달리 윤종신은 결혼과 아내의 임신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어느새 ‘라익이 아빠’가 됐다. 어쩌면 여전히 밤의 ‘시장님’인 사람과 오락 프로그램의 ‘예능 늦둥이’의 차이일지도.

전미라 : 윤종신의 아내.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로, 전미라가 체육 기자를 하던 당시 취재차 만난 윤종신이 질문에 너무나 성실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꼈고, 윤종신 역시 적극적으로 전미라에게 다가서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윤종신은 전미라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는 등 전미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줬고, 결혼 후 아들 라익이를 얻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인간 윤종신의 행복이 뮤지션 윤종신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윤종신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결혼 생활을 토크의 소재로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아내에게 눌려 살며 생계를 위해 음악을 만드는 가장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젠 윤종신이 그의 걸작 ‘너에게 간다’처럼 옛 사랑에 대한 감정을 노래해도, 대중이 그에게 몰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회 발언’은 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아무리 농담을 해도 옛 사랑에 대한 순정을 간직할 것만 같던 발라드 가수가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중년이 돼 버린 것. 웃기기 위해 자신이 앨범을 제작하는 가수 하림에 대해 “하림이 인생의 구멍이다”라는 농담까지 하면서 그 전까지 유지한 개그와 음악의 밸런스를 잃어버린 셈. 윤종신은 당시 발언에 대해 “무조건 내 잘못이다. 그때 내 머리의 회로도가 다운됐었던 것 같다”고 말한바 있다.

라디오스타 : 윤종신, 김구라, 신정환, 김국진으로 이뤄진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 팀.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를 시작으로 <명랑 히어로>, <라라라> 등에 함께 출연 중이다. ‘라디오스타’ 팀은 윤종신에게 기쁨이자 딜레마고, 동시에 해답이다. 윤종신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 오락 프로그램에 안착했다. 그는 이성적인 스타일로 독설을 펼치는 김구라와 막무가내식 토크를 하는 신정환 사이에서 그들의 말실수를 공격하며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절하는 ‘깐족이’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 스타’에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히트 작곡가이자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뮤지션으로 폄하당하기도 했고, 노래 못 부른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윤종신이 ‘라디오스타’에서 ‘예능 늦둥이’로 자리 잡을수록, 그의 뮤지션 이미지는 사라졌다. 그러나 윤종신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 음악과 개그를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가수들에게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 <라라라>에서는 이승열에게 마케팅의 어려움 등에 대해서 묻는 등 코미디 사이에서 음악 이야기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오락 프로그램은 그에게 뮤지션의 이미지를 사라지게 만들었지만, 다시 그에게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도 준다. 윤종신이 뮤지션과 예능인의 공존을 이뤄낼 수 있을까.

DOPIO : 윤종신과 정석원이 함께 만든 프로듀싱 팀. 정석원은 <동네 한 바퀴>의 전곡을 편곡했다. 친구가 된지 20년이 가까워지는 두 사람이 다시 뭉친 것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다. 윤종신은 <동네 한 바퀴>에서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는 과거의 절절한 이별 노래 대신 ‘동네 한 바퀴’와 ‘야경’처럼 청춘을 보낸 남자가 한 발짝 떨어져 과거를 회고하는 노래를 부른다. ‘O My Baby’는 자신의 아들 라익이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그는 애써 과거의 감성을 유지하거나, 예능인 이미지를 염두에 둔 노래를 만드는 대신, 지금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감정을 노래한다. 이제 그의 노래에서 ‘너에게 간다’ 같은 곡의 정서를 느끼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대신 그는 유희열의 말처럼 “한국에서 어덜트 컨템퍼러리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뮤지션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술과 담배를 끊은 그의 목소리와,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밀어붙이는 정석원의 편곡은 날이 서 있다.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던 도시 청년은 어느덧 돈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애 아빠가 됐다. 하지만 그 변화마저 담아내는 것이 음악이다. 윤종신은 그렇게 나이 들어 간다. 예능도 음악도 모두 잘 하면서.

Who is next
윤종신과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에 함께 출연하는 김종국

강명석 two@10asia.co.kr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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