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 소 – 소중한 미래를 위해, 지 – 지금은 힘들더라도, 섭 – 섭리를 어기지 않고 차근차근 연기 수업을 쌓아가는 연기자가 되겠습니다. (<뮤직라이프> 1997년 12월호)
그렇게 12년, 묵묵하게 자신이 일을 해온 이 남자가 자기 증명을 해온 방법.

故 김성재 : 가수. 소지섭은 단지 그의 뒤에 서는 모델이 되고 싶어 ‘스톰’의 모델에 지원했고, 그의 죽음으로 메인 모델이 됐다. 당시 ‘스톰’은 응시자들에게 ‘스톰’의 옷을 입은 사진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는데, 소지섭은 돈이 없어 친구의 옷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을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홀로 살림을 책임지느라 바빴고, 소지섭은 “죽고 싶다가도 바라보면 삶이 보이는 삶의 등대”인 어머니의 짐을 나눠야 한다는 책임감에 한 때 안정적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고 3의 나이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데뷔했던 셈.

소유진 : 배우. MBC <맛있는 청혼>에 함께 출연했다. 소지섭과 소유진은 모두 전국에 4만여 명이 있는 ‘진주 소씨’로, 항렬 상 소지섭이 소유진의 고조 할아버지뻘이라고.

박용하 : 배우. 1998년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소지섭에게 “동갑이라는 게 끌려서” 먼저 말을 붙이며 친해졌다. 쉴 때면 혼자 지내던 소지섭에게 스타크래프트와 스노우보드 등을 권한 것도 그다. 박용하는 과거 그의 옛 여자친구와 사이가 나빠졌을 때 소지섭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평소와 달리 계속 웃어가며 분위기를 띄우는 ‘노력’에 감동했다고. 박용하는 소지섭을 “마음을 열기는 힘들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진짜 좋은 것만 주려고 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송승헌 : 배우. 소지섭과 함께 ‘스톰’의 메인 모델이었고, 당시 인천이 집이었던 소지섭은 송승헌의 집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모델 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초기 활동은 대조를 이뤘다. 송승헌이 빠르게 톱스타로 자리를 굳힌 것과 달리, 소지섭은 버라이어티 쇼 KBS <토요일 전원출발>의 한 코너인 시트콤 ‘오! 해피데이’, 일요 아침드라마 <좋아좋아> 등 다양한 장르와 시간대의 작품을 거친 뒤에야 미니시리즈의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소지섭은 한 때 “뒤쳐졌다는 생각에 자책”한 적도 있었다고.

조오련 : 수영 지도자. SBS <뷰티풀 라이프>의 ‘대한해협 횡단’에 소지섭과 함께 출연했다. 수영선수 출신이었던 소지섭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을 수 있었다. 소지섭은 고교시절 전국체전 입상을 할 정도였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에게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않으면 수영 코치가 이력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일에 인생을 정착시킬 수는 없어 수영을 그만뒀다. 하지만 방송 역시 그에게 만만치는 않았다. 그는 ‘대한해협 횡단’ 당시 “카메라가 돌아갈 때와 안 돌아갈 때가 너무 다른” 분위기 때문에 “일부러 카메라에 안 잡히려고 노력” 할 만큼 겉돌았고, MBC <음악캠프> MC를 맡았을 당시에는 부담감에 1주일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채림 : 배우. SBS <여자만세>, SBS <지금은 연애중>에 함께 출연했다. <지금은 연애중>은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소지섭에게 연기에 대한 확신을 줬다. 당시 소지섭은 한 드라마 감독에게 “난 네 눈이 마음에 안 들어”라는 말까지 들었고, 그에게는 계산적이고 냉정한 배역이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소지섭은 “자신과 너무 닮아 깊게 몰입”했던 <지금은 연애중>의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묵묵한 느낌을 여자에 대한 속 깊은 배려로 표현할 수 있었고, 이후 SBS <유리 구두>의 건달 등을 연기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변주하기 시작했다.

이선미 – 김기호 : 드라마 작가. 소지섭이 출연한 SBS <천년지애>와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을 집필했다. 이들은 <천년지애>에서 “소지섭을 발견”해 “대사도 없고, 행동도 없고, 눈으로만 말해야” 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욱을 소지섭에게 맡겼다. 소지섭은 성공에 대한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이 복잡하게 엉킨 인욱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소지섭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것도 그렇고, 말수 적은 것도 실제 나와 똑같다. 왠지 내 생활이 온통 들켜버리는 기분이어서” 연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그는 자신을 “그냥 압구정동에 살 것 같고 여자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남자로 봐주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현주 : 탤런트. 소지섭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 당시 소지섭에게 “10년만 버텨봐라. 마흔 살 넘어서도 다른 거 할 수 있다”며 격려했다. 소지섭이 “연기와 생활에서 모두 배울 점이 많은” 선배로 꼽는다. 소지섭은 과거에는 미키 루크를 좋아했지만 “배우의 바르고 건강한 모습이 좋은데, 그런 점에서 실망”할 만큼 배우로서의 성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성격상 배우가 천직이라고 할 만큼 끼가 넘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내성적이지만, 영화 <도둑맞고 못살아> 촬영 당시 어깨 탈골과 인대 파열을 당한 상황에서도 영화 촬영을 강행한 뒤 수술을 받을 만큼 책임감이 강하다.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감독은 소지섭에 대해 “배역에 대한 몰입이 정말 대단하고 프로정신이 굉장히 놀라운 친구”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연기에서는 어떤 노출이든 상관없지만, 화보 촬영에서는 “사적인 노출은 민망”해서 반바지도 잘 입지 않는다. “내 일이 100%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충실하고 싶다”라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셈.

임수정 : 배우.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함께 출연했다. 복수와 사랑, 그리고 시한부 인생의 복잡한 내면을 간직한 채 그것을 짐승 같은 야성으로 폭발시킨 그의 캐릭터는 소지섭 특유의 말 없고, 묵직한 느낌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줬다.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지섭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설정이 좋았다. 머리에 총 맞고 살아가는 거잖아. 무엇보다 기업드라마가 아니고. 무슨M&A 나오고하는 거 진짜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매우 묵묵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복잡한 내면과 극단적인 비극이 공존하는 캐릭터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순간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었다.

강지환 : 배우.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 함께 출연했다.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은 “소지섭은 한결같고 신중해서 친구 같고, 강지환은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라 애인 같다”고 말했다. 공익근무 복무 후 복귀에 대한 부담감으로 한 때 13kg정도 체중이 늘어났던 소지섭이 복귀 후 첫 작품으로 제작비 6억 5천만 원의 저예산 영화를 선택한 것은 의외의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지섭은 데뷔 당시부터 “아침 일일 드라마 빼고는 다 해봤다”고 할 만큼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갔었다. 그리고 소지섭은 “난 가끔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속을 알 수 없는 조폭을 연기하며 자신이 가진 고유의 캐릭터를 어떤 인물에서든 녹여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순간의 인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며 연기 폭을 넓혀 가는 것은 소지섭의 큰 장점이다. 그래서 SBS <카인과 아벨>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위치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지섭의 말처럼, 그에게 배우는 100%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51%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51은 “반을 간신히 넘었다는 것은 시작과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G : 소지섭이 래퍼로 데뷔하며 사용한 이름. 소지섭은 힙합 음악과 춤을 굉장히 좋아한다. 소지섭은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돌고래를 좋아하고, 자신이 보기에 자유롭게 살아가는 류승범을 부러워하지만, 자신의 성격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그는 엄격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스타가 됐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이 있다. G는 연기자로서 안정된 자리에 오른 그가 처음으로 배우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소지섭은 “나는 수영장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바다는 싫다. 밑이 보이지 않는다. 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세상은 싫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얹어진 생활의 짐은 그에게 연기를 즐기게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자유를 찾았다. 소지섭에게 ‘간지’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옷이 아니라 진중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힘에 있을 것이다. 소지섭은 내성적이다. 무뚝뚝하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Who is next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의 어머니로 출연한 이혜영과 <꽃보다 남자>에서 모자지간으로 나오는 이민호.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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