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 안에서,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는 재벌이 아니다. 돈은 커녕 애인도 없고 미모도 없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도 다 그렇게 맨손으로 시작해 재벌과 결혼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한 기회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다행히 우리에겐 재벌 2세와 결혼하는 법, 재벌가의 라이프 스타일, 재벌가의 시집살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TV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재벌과의 결혼에 성공하는 7가지 단계’. 이제 더 이상의 자기계발서는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하늘이 내린 기회가 언제 당신을 찾아올지 모르니 재벌을 만났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여자, 그에게 이런 여자는 처음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거 각광받던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따귀부터 때리기’는 거기서 돌아서면 끝이므로 연결고리가 매우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재수 없으면 다혈질인 상대의 아버지가 한밤중에 경호원들을 데리고 찾아와 야산에 당신을 암매장시킬 수도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당신은 재벌과 결혼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여성이므로 한 발 더 나아가 당신의 연락처와 이름, 신상명세를 그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보통 재벌과의 우연한 만남의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음료를 쏟거나 끼얹은 뒤 당신의 명함을 드레스셔츠 앞가슴에 꽂아놓고 총총히 자리를 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마티니 같은 투명한 칵테일보다는 레드 와인을 추천한다. 좌중으로부터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와 함께 세탁을 위해 황급히 자리를 뜬 그는 당신의 명함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것이다. “도도한데? 매력있어…”

Exercise
‘재벌과 파티에서 부딪혔을 때’
재벌 : 엇,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세탁비라도…
당신 : 내가 돈이면 다 되는 그런 여자로 보여? 부모 재산으로 놀고먹는 천박한 날건달 주제에! (촤악~) 세탁비 받고 싶으면 전화해. 전화 안 하면 내가 찾아가겠어. 난 빚지곤 못 사는 성격이니까!

One More Tip
재벌과 1대 1로 부딪힐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주 오는 장소마다 당신의 소지품을 흘려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쁘게 꾸민 다이어리에 초등학교 때 찍은 가족사진과 가장 잘 나온 증명사진, 하루하루를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내용의 일기 및 사랑스런 시 구절을 담아두자. 단, “연탄재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같은 내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는 연탄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제 당신에게는 재벌로부터 전화가 걸려 올 것이다. 그러나 흥분하거나 미리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일단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을 거절한다. 혹시 백수라서 남는 게 시간이라면 동네 책 대여점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황급히 구해 당신에게 다른 스케줄이 있음을 어필하는 것이 좋다. 두 번이나 세 번쯤 거절한 끝에 그를 만날 때는 당신의 생활 반경 안으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거미가 먹이를 잡으려면 일단 그물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해서 만났을 때는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한다. 대학교 2학년 때 남자친구를 군대 보낸 이후 줄곧 애인이 없었거나 혹은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봤더라도, 게다가 앞에 앉아 있는 재벌이 돈 많고 잘 생긴 데다 매너까지 좋다 해도 바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상대는 당신을 잡기 어려운 먹이로 생각하겠지만 당신 역시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입장이다. 높은 도약을 위해 몸을 낮추고 기다리자.

One More Tip
재벌과 단 둘이 만남을 갖기에 적절한 장소로는 뼈다귀 해장국집이나 포장마차, 떡볶이집을 추천한다. 와인 바나 호텔 라운지, 고급 클럽에 익숙해진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당신의 당당한 성품을 드러내는 데 제격이다. 또, 운이 좋으면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는 그에게 매운 것도 잘 먹는 성숙한 여성으로 어필할 수도 있다.

위의 계획대로 된다면 당신은 프로포즈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난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당신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할 시댁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데는 <에덴의 동쪽>이나 <아내의 유혹>에 등장한 것처럼 임신 이상의 비책이 없다. 그게 곤란하다면 남자 쪽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거나 아스피린을 스무 알 정도 삼키는 방법도 있다. 단, 이 경우 그의 어머니가 상심해 있을 아들을 위해 과일 접시를 들고 올라오기 5분 전에 맞추어 약을 먹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당신은 이제 재벌가의 일원이 되었다. 격식과 예절을 중시하는 재벌가에서는 집에서도 티셔츠나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 그러니 그동안 집에서 입고 뒹굴었던 고등학교 체육복 바지와 목 늘어난 비더 레즈 티셔츠는 걸레로라도 쓰지 않도록 조심하자. 재벌가의 며느리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되 항상 등과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다. 화장을 지워서도 안 된다. 70만 명의 그룹 가족들을 위해 불철주야 바삐 일하는 남편이 귀가하면 몇 시가 되든 직접 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치사하고 아니꼽고 피곤하다고? 그 대신 한도 무제한의 카드로 필요한 옷을 마음껏 살 수는 있다. 아, 그런데 쇼핑은 시어머니와 동반이다.

Exercise
‘미래의 시어머니와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시어머니 : 너도 알다시피 우린 격조 있는 집안이라 우리 며느리감이 그렇게 가슴이 훤히 파인 드레스를 입으면 천박해 보인다는 말들이 많을 것 같구나.
당신 : 네, 어머님. 당장 바꾸겠습니다. 사실 전 터틀넥 드레스를 꼭 입어보고 싶었는걸요?

처음부터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으니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 혹은 친정에서 배운 모든 것에 대해 책잡고 싶어 하는 시댁 식구들이 많을 것이다. 남편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벌이 아니어도 대개의 남편들은 그런 문제에 마음 써주지 않는다. 그러니 교양, 외국어 실력, 취미, 습관 요리 솜씨 등에 대해 까이고 또 까일 때 가루가 되어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최고다.

Exercise
‘시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
시어머니 : 느이 친정에선 잔치국수에 멸치 국물 내라고 가르치던? 아무리 가르쳐도 입맛이 싸구려인 건 어쩔 수 없거나. 황태로 내거라.
당신 : 네 어머님, 제가 오늘 또 하나 배우네요.
시어머니 : 그리고 수박을 저렇게 크게 쪼개 놓다니, 상차림이 천박해서 손님들 보기가 부끄럽구나.
당신 :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가 오늘 두 가지나 배웠네요.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재벌과 결혼했으니 일단 직장은 그만두자. 당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필라테스와 꽃꽂이, 쿠킹 클래스와 골프 레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겠지만 모든 일정은 기사와 함께 할 테니 정신없이 시간을 체크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는 집에 있을 때 전화를 받는 일이다. 물론 휴대폰도 있지만 시댁 식구들은 주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당신의 외출 여부와 전화 예절을 체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지 380평에 건평 120평, 본채와 별채와 정원에 수영장까지 딸린 넓은 주택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당신이 멀리서 울리는 벨 소리 때문에 달려와 전화를 받을 필요는 없다. 단지 당신은 가사 도우미로부터 우아하게 수화기를 건네받아 대답만 하면 된다. “네, 평창동입니다~” 혹은 “정릉입니다~” 어째서 “여보세요” 대신 굳이 지명을 밝혀야 하냐는 의문 따윈 접어두자. “재개발 앞두고 평당 3백만 원씩 오른 성북동입니다~”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천박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언젠가의 재벌가 입성을 위해 미리미리 연습해 두자. “네, 염창동입니다~” “쌍문 2동입니다~” 친척들이나 동네 반장 아줌마가 전화했다가 ‘그 집 딸 좀 이상하더라’ 라며 수군대더라도 그쯤이야 대를 위해 소를 잃는 것에 불과하다.

One More Tip
시어머니가 계신 집에서는 친정이나 친구들과 통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어머니는 발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언제 당신의 뒤에서 통화 내용을 들으며 서 있을지 모른다. 과거 <불꽃>에서 재벌가 며느리가 되었던 여주인공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통화 도중 등 뒤의 시어머니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유산에까지 이르렀던 것만 보아도 그 공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또, 당신의 휴대폰 및 집 전화가 모두 도청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어머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거나 “일요일에 늦잠 한 번 자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다면 다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관광지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하길 권한다.

남편의 무신경함과 바람기, 시댁의 무시와 숨 막히는 분위기, 거기에 숨겨 둔 자식까지 나타나 당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아넣는다면 그 때가 바로 진정한 승부수를 던질 때다. 바로 이혼이다. 울지만 말고 변호사를 만나자. 운 좋게 여고 동창이나 첫사랑의 남자가 변호사가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쨌든 시댁의 고문 법인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실력 있고 배짱 있는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동안 당신이 썼던 일기장, 남편의 휴대폰에 남은 외도의 기록, 시댁에 비자금을 들고 드나들던 정치인들의 폰카 사진 등이 모두 무기가 될 것이다.

Exercise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때’
당신 : 나도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영화배우 A, 모델 B, 가수 C, 연예인 지망생 D, (중간 생략), 애들 영어 유모 Z까지 다 당신 여자죠?
남편 :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당신도 억울하면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던가!
당신 : 뭐, 그게 진심이에요?
남편 : 그렇다니까. 난 내일 마카오로 출장 가니까 가방이나 챙겨 놔.
당신 : (조용히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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