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 프로그램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순간은 소녀시대의 ‘Gee’ 무대다. 정확히 말하면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차지한 소녀시대가 보여주는 ‘Gee’다. 정규 무대에서는 박자 하나까지 딱딱 맞추던 그들의 춤은 멤버들끼리 웃느라 흐트러지고, 대신 멤버들은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 다닌다. 늘 그룹의 중앙에서 중심을 잡던 윤아는 흥분한 나머지 관객들에게 꽃다발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실수도 했다. 물론 이 흥분된 에너지는 소녀시대만의 것은 아니다. 그들 앞에는 언제나 메탈리카의 팬들과 대결할 수 있을 만큼 낮고, 굵고, 큰 남성 팬들의 떼창이 있다. 굵은 목소리의 남성들이 “윤아짱” 같은 플랭카드를 들고 “Gee Gee Gee Gee baby baby”를 외치면, 소녀시대 주변의 공기는 급속도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이제는 소녀시대와 그의 팬들 바깥에 있던 사람들도 이 열광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2AM의 조권은 소녀시대의 앵콜 무대에 함께 올라 ‘Gee’의 안무를 함께 했고, 아이돌에게 좀처럼 관대하지 않을 것 같았던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밸런타인데이 싱글특집’에서 소녀시대를 초대해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이하나의 우정의 무대>로 바꿨다. 그리고 소녀시대를 본 한 남자 방청객의 고백. “팬이 아니었는데 오늘 보고나서 팬이 돼버릴 것 같아요.”

마니아 팬을 제외하고 소녀들에게 남는 것

지금 소녀시대는 그들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만들고 있다. 소녀시대의 마니아적인 팬들은 그들이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를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소녀시대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엘리트 아이돌이었고, SM이 만든 ‘그들만의 세계’ 안에 있었다. 갓 데뷔한 멤버들이 보통 사람들은 외우기도 불가능 할 것 같은 군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화하고, 눈웃음 하나만으로도 오락프로그램의 스타가 된 티파니를 필두로 예능 프로그램에 안착했다. 그건 SM이 소속 가수에게 내리는 선물이자, 기묘한 한계였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잡힌 그룹의 콘셉트는 소녀시대에게 뚜렷한 이미지를 부여했지만, 그만큼 골수팬과 대중을 나눴다. 누군가는 태극부채 크기의 막대 사탕을 들고 춤을 추는 ‘Kissing you’를 보며 열광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달짝지근한 소녀들이었다. 그건 동방신기가 한 때 ‘Triangle’같은 SM만의 장르인 SMP(SM Music Performance)를 하면서 국내 대중음악의 트렌드와 멀어진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소녀시대의 팬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소덕후’라는 말은 소녀시대 팬덤의 특징을 상징했다. 소녀시대의 팬에는 ‘그냥 팬’이란 거의 없다. ‘덕후’ 라고까지 불리는 코어 팬들이 팬덤을 이끈다. 그래서 소녀시대는 1집 앨범을 10만장 이상 팔았고, 멤버들은 어딜 가든 주목 받았다. ‘소녀시대의 윤아’가 드라마에 출연하면 바로 화제가 되고, ‘소녀시대의 태연’의 발언 하나하나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들에게는 원더걸스의 ‘Tell me’나 ‘Nobody’ 같은 범 대중적인 히트곡이 없었다.

‘Gee’는 이런 상황에서 SM과 소녀시대가 날린 카운터펀치다. 소녀시대는 더 이상 치어리더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지 않는다. 막대 사탕도 들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컬러풀한 스키니진을 입고,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기억 안 할 수 없는 ‘후크송’으로 무장했다. 대중의 트렌드와는 다소 동떨어진 듯 했던 인기그룹이 트렌드의 핵심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대 젊은층의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오락 프로그램 MBC <무한도전>이 다음 주 예고로 소녀시대의 ‘Gee’ 뮤직비디오 패러디를 보여준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소녀시대는 ‘Gee’로 그들의 열광적인 남성 팬들 바깥으로 그들의 대중성을 넓혔다.

드디어, 대중 앞에 오롯이 소녀시대

하지만 ‘Gee’는 소녀시대가 트렌디한 스타일로 전향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음악 내내 ‘Gee Gee Gee Gee baby baby’ 같은 후크와 ‘너무너무’, ‘반짝반짝’같은 단어들을 반복하는 ‘Gee’는 후크송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다. 그것은 그만큼 중독적이지만, 너무나 자극적이기에 빠르게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지난 2년여 동안 쌓은 ‘소녀’의 캐릭터는 ‘Gee’를 그들의 노래로 만든다. 그들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나는 나는 바본가봐요 그대 그대 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가사를 불러도 그것이 느끼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지난 2년여 동안 그들의 ‘순수의 세계’에서 살았던 ‘소녀’들이었고, 무거움 따윈 없는 버블껌의 목소리를 낼 줄 알기 때문이다. ‘Gee’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은 트렌디하면서도 마니아적인 지금의 소녀시대가 빚어낸 결과다. 소녀시대의 코어 팬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다만 달라진 건, 그 떼창에 그들 바깥의 사람들이 합류했다는 것이다.

‘Gee’가 관객들의 열광을 끌어낸 그 순간, 소녀시대는 드디어 ‘그룹’으로 완성됐다. 이미 ‘다시 만난 세계’의 무대에서 멤버들의 조직력을 충분히 과시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Gee’ 이전까지 하나의 그룹과 ‘9명이 모인 팀’ 사이에 걸쳐 있었다. 소녀시대의 멤버들은 드라마에서, 버라이어티 쇼에서 각자 활동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시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알지만, 그 모든 멤버들을 모은 소녀시대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개인과 그룹 활동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소녀시대의 대표곡이 무엇인지는 각자마다 의견이 갈렸다. 그 때 그들은 반짝반짝 눈이 부신 모습으로 ‘Gee’를 부르며 9명이 모였을 때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Gee’가 <이하나의 페퍼민트> 공개방송에 온 싱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순간은 지금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소녀시대 특유의 밝은 이미지와 최신의 음악이 더해지며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열광과 흥분을 이끌어내는 그룹이 됐다. 드디어, 소녀시대는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나 멤버들이 어떤 유닛으로 묶이는 것에 상관없이 9명이 모인 소녀시대의 노래와 춤과 콘셉트만으로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그룹이 됐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지금 그들의 무대를 봐라. 소녀들이 등장한다, 떼창을 질러라. 드디어, 소녀시대가 시작됐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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