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에서 한창 일지매의 무용담을 말하던 소년에게 곱게 차려입은 달이가 다가와 일지매를 만나면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자 소년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대답한다. “맨입으로요?” 일지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달이는 웃으며 엽전 한 닢을 건넸지만 아마 일지매와는 상관없는 보통의 ‘눈화’, 심지어 ‘형아’라 해도 꿀밤을 때리기보단 그렇게 용돈을 쥐어주지 않았을까. 차돌이, 아니 이현우가 그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과 눈을 맞춘다면.

하지만 MBC <돌아온 일지매>에서 능청스레 자신이 거인 불가사리 앞에서도 당당했노라고 허풍을 떨고, KBS <대왕세종>에선 내관에게 왕자인 자신이 백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던 소년은 의외로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제가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하겠는데요, 이렇게 인터뷰 하거나 사진 찍는 건 잘 못하겠어요.” 올해로 열일곱,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지만 변성기 때문인지 살짝 갈라지는 목소리만 아니라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느껴질 만큼 귀엽고 수줍은 말투다. 멋쩍은 듯 씨익 웃으며 슬쩍 올려다보는 얼굴 역시 동갑내기 네티즌들마저 ‘나보다 훨씬 동생인줄 알았다’고 말하는 동안이다.

“아역이라도 맡은 역할이니까 그 인물에 맞춰 연기하려고 해요”

아직 어린데도 그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이 소년이 극중에서는 오히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정의로운 역할을 맡았다는 건 재밌는 사실이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고모부를 총으로 쏘는 SBS <로비스트>의 해리나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엄한 부친에게 호소하는 <대왕세종>의 충녕군을 연기할 때 소년의 유난히 까만 눈동자에는 나이답지 않은 깊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아역이라고 해도요, 그게 어린 시절이긴 하지만 자기가 맡은 역할이니까 그 인물에 맞춰 연기하려고 해요.” 역시나 수줍은 아이의 말투지만 그 알맹이는 쉬이 흘려버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현우의 연기는 자신의 ‘어림’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아역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실력도 좋고 외모도 귀여운 소년이 애어른 같은 조숙함이나 허세를 보이는 것도 아니니 정이 갈 수밖에. 과거 역할과는 달리 능청스런 차돌이 역에 대해 “이 연기라는 게 계속 다른 역할들을 하면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거잖아요”라고 설명할 때를 비롯해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마다 이현우는 말하는 종종 “아닌가? 잘 모르겠나?” 혼잣말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의를 구하듯 쳐다봤다. 역시나 그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지금, 소년의 가장 빛나는 순간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쉬이 가늠할 수 있지만 소년 이후의 이현우보단 현재의 모습에 애정이 가고, 더 집중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누나가 자꾸 자기 방 대신 제 방에서 공부해요”라고 단 한 번 불평어린 목소리로 투덜댈 때나 중학교 성적에 대해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는데?”라고 말하며 동행한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모습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또래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빛나는 순간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역 연기라는 것을 통해 인위적으로라도 보고,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많은 걸 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보다 학교생활이 재밌었던 초등학교 4, 5학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소년은 성장할 것이다. 165㎝라 걱정인 키도 클 것이고, 요즘 제일 멋있어 보이는 <꽃보다 남자> 속 F4 같은 역할도 맡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막을 수도, 막을 이유도 없는 과정이다. 다만 잘 자랐고, 앞으로도 잘 자랄 그 과정에서 지금 소년은 열일곱의 이현우를 충실히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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