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알레르기를 가진 세상의 모든 초보자들에게 스포츠 상식을 전달하기 위해 항상 공부하는 친절한 근우씨. 하지만 그에게도 도무지 공부로는 이해되지 않는 세상이 있다. 바로 언젠가부터 주위의 여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KBS <꽃보다 남자>다. 끽해야 멀리는 동화 속 왕자님, 가깝게는 드라마 속 실장님의 극대화 버전에 불과해 보이는 F4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그리고 그들이 나오는 <꽃보다 남자>에 열광하는 이유를 그는 도저히 모르겠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인생의 진리. 그래서 물어봤다. 아니 정확히 말해 따졌다. 이것은 <꽃보다 남자>를 볼 시간에 프리미어 리그 보는 게 낫다고 믿는 어느 스포츠 오덕과 F4를 인생의 청량제로 삼는 누군가와의 대화 기록이다.

아니 왜 월요일이랑 화요일에는 따로 시간을 못 낸다는 거야? 주초라 부담되는 거야?
누가 부담된대? 월화에는 TV에서 우리 준표 나오는 <꽃보다 남자> 하잖아.

겨우 그거야?
겨우 그거? 그런 너는 겨우 보려고 연말에 집에 쳐 박혀서 TV 보고 있었다며. 적어도 주중에 <꽃보다 남자> 보는 건 그렇게 칙칙하지 않거든?

그렇다 치자. 그런데 다른 드라마는 잘도 다운 받아 보면서 왜 <꽃보다 남자>는 굳이 본방 사수 하겠다는 거야?
그럼 넌 왜 스포츠 중계를 생방으로 보냐? 한시라도 빨리 F4를 보고 싶은 마음을 모르겠어? 그리고 한 시간이라도 늦으면 잔디랑 지후랑 준표랑 어떻게 됐는지 스포 다 뜬단 말이야. 저녁 11시 넘어서 인터넷 뉴스 봐봐. 준표 어쩌고, <꽃남> 어쩌고 하는, 제목부터 스포일러인 기사가 얼마나 많이 뜨는데. 그리고 본방 사수로 시청률 올려줘야 우리 F4 기사랑 사진도 더 많이 나올 거 아냐.

아주 대책 없이 꽂히셨구먼. 너 처음부터 이민호랑 김범, 김준, 김현중 얘들을 그렇게 좋아했었냐? 처음 나올 땐 미스 캐스팅이라고 엄청 투덜댔잖아.
그 땐 아직 애들의 매력이 발산되기 전이었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나는 이민호랑 다른 배우들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구준표와 나머지 F4 역시 좋아하는 거거든요?

갈수록 가관이네. 네가 지금 드라마 캐릭터 좋아할 나이니? 그 말도 안 되는 캐릭터들이 뭐가 좋냐. 그리고 윤지후 하나 빼면 다들 인간성은 개차반이더만. 아니, 솔직히 한 사람을 자살까지 몰고 가면 다들 콩밥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아씨, 얘기하다보니까 조금 열 오른다. 그 드라마가 솔직히 뭐가 재밌냐?
너는 네가 모른다고 너무 쉽게 말한다?

그으래? 그럼 역시나 내가 친절하고 차근차근하게 왜 그 드라마가 문제인지 설명해줄게. 알았지? 먼저 신화고등학교. 입시 걱정 없는 상위 1%를 위한 학교? 말은 좋은데 걔들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신화대학교 올라가서 뭘 배우겠냐? 머리에 든 것 없는 애들이 대학 나온다고 취업 되겠어? 그런데 무슨 명문 학교야, 명문 학교는.
요즘 세상에 공부한다고 취업되냐? 어차피 신화고 애들은 실장님으로 근무할 아버지 회사가 있잖아. 나중에 하는 일 없이 여직원이랑 부딪혀서 넘어지는 거, 다 걔들이 해야 할 일이야. 취업이 100% 보장되는데 그게 명문이 아니면 뭐야?

그게…그게…그러니깐… 그런 학교가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거잖아!
용 나온다고 <반지의 제왕> 보고 침 뱉을 놈일세. 누가 몰라? 드라마잖아, 드라마. 그것도 순정만화 원작의 드. 라. 마.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드라마라고 해도 완전 개연성 없거든요? 어떻게 된 게 전교생이 꼴랑 네 명한테 설설 기면서 암 말도 못하냐?
그럼 언젠 촛불 집회가 쪽수로 밀려서 우리나라가 쇠고기 수입하는 거냐? 걔넨 그냥 꼴랑 네 명이 아니라 F4라고, F4. 그 네 명 뒤에 한국 경제의 3분의 2를 쥐고 흔드는 부모가 있는데 너 같으면 개기겠어?

그래, 그래. 그게 걔네의 돈이랑 권력 때문이라고 치자. 그런데 왜 개뿔 아무 것도 없는 금잔디한테 지후가 호감을 보이고 참견 하냐?
지후는 백마 탄 왕자님이잖아. 백마 탄 왕자님이 그럼 고난에 처한 여주인공 보고 제 갈 길 가겠어? 아니, 왕자님이 실제로 그렇게 못 본 척 간다고 치자. 그럼 나 같은 시청자들이 ‘우와~ 개연성 최고다’라고 말하겠다, 참. 응?

아니, 갑자기 지후가 백마 탄 왕자는 무슨 왕자…
그럼 너한테 왕자님 노릇 시키리? 너 같은 애들은 잘 해야 술 먹을 때 흑기사나 한 번 하는 거지, 왕자가 될 말이니?

좋아, 그럼 백 보 양보해서 지후나 다른 F4나 다 백마 탄 왕자라고 하자. 그렇게 치면 이 드라마는 너무 클리셰로 가득한 거 아니야? 지후랑 준표, 특히 준표 같이 F4 리더에 자존심 강한 애가 자기에게 반항하는 별 볼 일 없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거, 그거 너무 뻔한 거 아니야? 예전 드라마들에서 실장님이 명랑 꿋꿋 말단 여직원에게 따귀 맞고 ‘이런 여자 네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잖아.
그런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왜 넌 <꽃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동화 읽듯 드라마를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신화고 애들처럼 뇌가 없어 보여? 거기 나오는 대사랑 행동들이 과하고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거 다 알거든? 그런 오그라드는 맛 자체를 즐기는 건데 왜 클리셰도 못 알아보는 무식한 사람 취급을 해? 네 문제가 뭔지 알아? 하나하나 다 따지고 가르치려 든다는 거야. 그런 눈으로 보니까 <꽃보다 남자>의 재미를 알 수가 없지.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솔직히 캐릭터가 매력적이면 모르는데 그렇지도 않잖아. 준표는 싸가지 없지, 이정이랑 우빈이는 무슨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지. 그나마 지후가 좀 낫네.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싸가지가 없으면 뭐가 어때. 그리고 이정이랑 우빈이가 말이 없으면, 아니 정말 생각조차 없으면 뭐가 어때. 그냥 같이 서서 자체 발광해주면 되는 건데 뭐가 문제야? 너 같은 애들이 꼭 왜 돈 들여 뉴칼레도니아에서 드라마를 찍니 어쩌니 그러지? 그 예쁜 풍경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네 명이 서있는데 굳이 그런 태클할 필요 있어?

그럼 F4 말고. 굳이 밥 먹을 때 입에 밥 우겨넣고 볼에 밥풀 붙이면서 서민 연기하는 금잔디를 봐도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아?
걔가 입 주위에 밥풀을 붙이든, 김을 붙이든 무슨 상관이야? 나도 가끔 그럴 때 있는데 준표가 나도 좀 좋아해주면 좋겠다.

퍽이나. 정말 드라마의 리얼리티에 대해 아무런 욕구가 없는 거냐, 넌.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고 집안 하녀들이 메이드 복장이나 하고 있고.
메이드가 메이드 복장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솔직히 너 <꽃보다 남자>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여자애들 교복 입은 거랑 하녀들 메이드 입고 나올 때잖아. 그게 다 너 같은 애들도 배려하는 훈훈한 드라마라는 증거야, 증거.

그럼 너는 그 CG티 팍팍 나는 폭죽 장면 봐도 불만이 없는 거야?
폭죽? CG? 그게 문제니? 터지는 폭죽을 바라보기 위해 45도 고개를 쳐든 준표의 턱선이 중요한 거라고.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용서해줄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아량을 가지고 보면 나도 앞으로는 <꽃보다 남자>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을까?
담그긴 어딜? 우리 F4의 세계에 어디 그 지저분한 발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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