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백두산’에서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 대위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에서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 대위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 영화라 칭찬하긴 쑥스럽지만 비주얼이 압도적이었어요. 이제는 우리 기술력도 많이 올라왔다 싶어 뿌듯했죠.”

한반도를 덮치는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백두산’에 출연한 배우 하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볼거리를 자랑하는 ‘백두산’은 화산이 분출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서울의 빌딩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영화에서 하정우는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 대위 역을 맡았다. 인창의 원래 임무는 백두산 화산을 막는 데 쓰일 핵을 핵미사일로부터 분리해내는 것. 하지만 북한에 도착할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창은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가 되고 백두산까지 가서 폭발물을 직접 설치해야 하는 일까지 수행하게 된다. 인창이라는 인물 측면에서 이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성장영화와도 같다. 하정우는 중후반부 인물의 성장 포인트를 네 가지로 두고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첫 번째 변화 지점은 미사일에서 핵을 빼낸 후 리준평에게 총을 겨누면서 ‘이제 네 갈 길 가라’고 하는 장면이에요. 두 번째는 교전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트럭을 이용해 적을 교란시키는 장면이고요. 이 때 인창은 전보다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죠. 그 다음은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보천을 향한 갈림길에서 준평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죠. 마지막은 미군, 중국 브로커들 사이에서 준평을 데려오기 위해 소리치는 지점이에요.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에서 하정우는 배수지와 부부 연기를 했다. 배수지에 대해서는 “털털하고 인간적이다. 대범하고 통도 크다. 내가 ‘배 회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회장님 마인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기에 대해서는 “꾸밈없고 담백하게 연기하는데 그게 힘이 있다”고 칭찬했다. 인창이 아내 지영(배수지 분)을 부르는 애칭은 ‘큐티쁘디’. 하정우는 “쉽지 않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글거려서 괜찮겠나 싶었어요. 제가 낯가림이 심하고 보기와 달리 어색한 걸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시나리오에) 자꾸 그런 걸 넣어놓고 요구하는 거예요. 더 심한 것도 있었는데 그나마 절충해서 ‘큐티쁘띠’로 끝났어요. 하하.”

이번 영화를 통해 하정우는 이병헌과 연기 호흡을 처음 맞추게 됐다. 이병헌은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작전의 핵심 정보를 갖고 있는 북한 요원 리준평 역을 맡았다. 하정우는 “어떤 형인지 알고 있었고 형의 작품들을 많이 봐왔기에 연기 방식도 잘 알고 있었다”면서 “처음이지만 전에 해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산 폭발이라는 재난을 막기 위해 조인창과 리준평은 때론 대립하고 때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재난 속에서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이 피어난다는 점은 버디영화적 요소다.

“재난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관객들도 어느 정도 스토리를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스토리 안에서 캐릭터에 어떻게 변화를 주느냐에 따라 새로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 잠재력을 느꼈고, 캐릭터에서 새로움을 찾는 식으로 디자인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병헌 형과 코미디를 많이 살려봤어요. 처음에는 인물들이 단선적이고 진지했어요. 준평과 인창에게서 그런 면들을 많이 뺐죠.”

이번 영화는 이해준 감독,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을 했다. 두 감독은 따로 역할을 나누지 않고 현장에서 계속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하정우는 “촬영 전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시작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이해준 감독은 카톡을 쓰는데 김병서 감독은 카톡을 쓰지 않아서 단톡방을 못 만들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른 작품에 비해 테이크를 1.5배 더 많이 갔어요. 그래도 각자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브레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할 수 있었어요. 감독도 사람이라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머리가 안 돌아갈 텐데 두 명이 있다는 건 서로를 보완할 수 있어 좋았어요. 무기가 하나 더 있는 셈이죠.”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하정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찍으면서 생각해봤죠. 화산재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지 않나요? 최대한 남쪽으로 가세요! 하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하정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찍으면서 생각해봤죠. 화산재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지 않나요? 최대한 남쪽으로 가세요! 하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직접 영화를 기획하고 대본을 쓰는 일도 해오고 있다. 영화 ‘롤러코스터’ ‘허삼관’은 하정우가 연출한 작품이고, ‘싱글라이더’에는 제작에 참여했다. 내년 개봉을 앞둔 ‘클로젯’은 하정우가 기획부터 참여한 작품인 데다 출연까지 한다. 그는 40~50억원가량의 중·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거나 작품에 참여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배우로서 중·저예산 영화도 하고 싶은데 요즘은 그런 영화를 만나는 게 어려워요. 감독의 경우에도 예전엔 단계를 밟으며 경험을 쌓아왔다면 요즘엔 독립영화계에서 조금만 잘 한다 싶으면 바로 데려다가 상업영화의 시스템에 넣어버리거든요. 감독이 자기 색깔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는 거죠. 배우로서 제게 ‘왜 그런 작품은 안 찍어요?’라고 물으면 ‘저도 찍고 싶다’고 하는데 그런 시나리오를 만나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죠.”

데뷔 17년 차, 올해 나이 42세. 하정우는 “점점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후배들, 스태프들이 있는 현장에서 제가 점점 높은 나이대가 돼 가니까요. 배우로서 태도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중요해지고요. 그래도 병헌 형이나 50대 형들, 선배님들이 여전히 건재하니까요. 그런 형들, 선배님들이 주연배우로 중심을 잡아주니 뒤따라가는 후배로서는 든든하고 다행이죠.”

하정우의 내년 일정은 벌써 빽빽하게 정해져 있다. 다음달에는 호주로 가서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 촬영을 마무리한다. 그 이후에는 모로코에서 김성훈 감독의 ‘피랍’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 등을 촬영한다. 하정우는 “내년은 거의 해외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며 “낯선 곳이라 감이 안 오는데 모로코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고 해서 좀 걱정”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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