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니나 내나’에서 3남매 중 까칠하지만 다정한 막내 재윤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가섭. /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니나 내나’에서 3남매 중 까칠하지만 다정한 막내 재윤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가섭. /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속에서 계절이 따뜻한 봄을 향해 가듯 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오게 할 것 같은 영화입니다.”

배우 이가섭은 영화 ‘니나 내나’만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집을 나간 엄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3남매가 엄마를 찾아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이가섭이 연기한 재윤은 3남매의 막내로, 식구들에게 오래도록 말하지 못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말을 안 한 건데 거짓말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는 재윤. 넘치는 애정이 잔소리로 표현되는 누나 미정(장혜진 분)이 귀찮기도 하지만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가섭은 앞서 ‘폭력의 씨앗’ ‘도어락’ 등에서 보여줬던 거칠고 강한 캐릭터와 달리 ‘니나 내나’에서는 까칠해도 섬세하고 다정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 서사라 흐름에 잘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애써 뭘 하려고 하진 않았죠. 인물들이 놓이는 상황과 그 안에서 인물 간의 감정에 집중했습니다. 극적인 감정을 끌어내야 했던 ‘도어락’과 잔물결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니나 내나’, 둘 다 어렵긴 했어요. 하하. 재윤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이라 한 가지 감정을 택해 밀고 나갈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연기하는 순간에 선배님들과 주고 받는 호흡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려고 했어요.”

영화 ‘니나 내나’ 스틸. /사진제공=명필름
영화 ‘니나 내나’ 스틸. /사진제공=명필름
영화에서 재윤은 가족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이 어쩐지 불편해 가족들이 있는 진주에서 떨어져 홀로 부산에서 살고 있다. 이가섭은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고 했다.

“저도 재윤처럼 자취를 하고 있어요. 10년이 넘었죠. 부모님이 전화와서 밥 먹었냐고 물으면 꼭 먹었다고 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얘긴 안 해요. 그게 오래되니 이젠 쉽게 터놓기 어려운 것도 있죠. 재윤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재윤은 가족들을 안 보고 살면 그만이라고 애써 생각했던 것 같아요. 누나가 찾아와서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할 때 싫다면서도 자의 반 타의 반 끌려가잖아요. 실은 재윤도 가족들과 험께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자기가 가진 비밀 때문에 미안하기도 했고 오랜 시간 마음을 표현하지 않다보니 그런 게 어색해진 거에요. 조카 규림이 재윤에게 커피를 사왔을 때도 담배를 피고 있던 재윤은 급하게 끄고 꽁초도 바닥에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요. 그런 장면들이 가족들을 향한 재윤의 애정을 넌지시 나타내는 것 같아요.”

부산 출신인 이가섭은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해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사투리 연기를 지적 당할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제가 평소 쓰는 사투리는 높낮이가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서울 분들에겐 어색한 사투리처럼 들릴 것 같고 부산 분들에게도 사투리가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 같았죠. 부산 출신인데 부산 사람들에게 사투리 못 한다는 소릴 들을까봐 걱정했어요. 하하. 그래도 다행히 나쁘지 않은 평을 들은 것 같아요. 혜진 선배, 인호 선배를 만나면 저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왔어요.”

이 영화는 지난달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상영됐다. 이가섭은 영화 ‘양치기들’로 2015년 부산영화제를 찾긴 했지만 레드카펫을 걷고 야외무대 인사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부산에 살았는데 부산에서 처음 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는 거라 떨렸지만 좋은 긴장감이었죠. 관객과의 만남은 언제나 감사하지만 특히나 표를 구하기 힘든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더 좋았어요. 영화제에서 표 구하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에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어떤 관객이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장)혜진 선배가 내려가서 안아줬어요. (영화에 공감해)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자기 얘기를 꺼낼 수 있게 하는 영화인가 싶었죠.”

이가섭은 함께 출연한 장혜진에 대해 “쾌활하고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라고 말했다. 태인호에 대해서는 “젠틀한데 위트있다”면서 “선배님들이 먼저 다가와주셔서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이가섭은 함께 출연한 장혜진에 대해 “쾌활하고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라고 말했다. 태인호에 대해서는 “젠틀한데 위트있다”면서 “선배님들이 먼저 다가와주셔서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는 극심한 갈등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다. 폭염에 땀을 쏟는 여름이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겹겹이 껴입는 추운 겨울, 또 꽃망울이 맺히는 봄이 오는 것처럼 재윤의 가족은 굴곡을 겪으면서 그들의 시간은 서서히 흘러가고 관계는 단단해진다.

“미정이 ‘웃기는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딱 그런 느낌의 이야기에요.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감독님께서도 자주 쓰시더라고요. 하지만 식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한 발짝 나아가게 된 것 같아요. 영화도 희망적으로 마무리돼서 좋아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가족입니다.”

곧 연말이 다가오는 이 때 올해의 남은 계획을 묻자 이가섭은 “올 한 해를 잘 마무리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한 발자국은 아니지만 반 발자국 정도는 나아간 것 같다”면서 “영화 홍보 등 일정에 열중하다 보면 11월도 금방 가지 않을까 싶다. 서두르진 않으면서도 재밌게 한 해를 보냈다. 내년엔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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