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미국 마이애미의 뉴웨이브 힙합 사운드와 한국의 멋을 음악에 녹여낸 친남매 래퍼 지토모(왼쪽)와 릴체리./ 사진제공=소스카르텔
미국 마이애미의 뉴웨이브 힙합 사운드와 한국의 멋을 음악에 녹여낸 친남매 래퍼 지토모(왼쪽)와 릴체리./ 사진제공=소스카르텔
21세기의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멈블 랩(Mumble Rap)’이다. 멈블 랩은 단어 뜻처럼 발음을 중얼거리듯 의도적으로 뭉개는 랩이다. 가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만큼 사운드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게 특징이다.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조차 2010년 이후에야 부상한 트렌드로, 완성도 있는 멈블 랩을 선보인 국내 래퍼는 소수였다.

그 중에서도 릴체리와 지토모는 돋보였다. 친남매인 두 래퍼는 색이 확실했다. 멈블 랩은 릴체리와 지토모가 들려준 음악의 일부를 설명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의 정체성이 독특한 방식의 힙합으로 표현됐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방인에 더 가까운 존재로 성장기를 보낸 남매는 자신들이 그간 겪었던 경험과 예술적인 재능을 발판 삼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릴체리와 지토모의 ‘뉴 웨이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10. 릴체리와 지토모는 미국에서 각각 시와 건축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지토모: 릴체리(이하 체리)와 마이애미에서 중, 고등학생 시절을 같이 보내고 나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도시 설계(Urban Design)를 전공했다. 한국인으로서 병역 의무를 다 마친 지도 3개월 째다. 체리의 첫 정규 앨범인 ‘Sauce Talk’(2018)에 좀 더 참여하고 싶었으나 그때 군인 신분이어서 못했다.(웃음)

릴체리: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Always’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 시집의 삽화는 지토모 오빠가 그려줬다. 방학 때 집에 가보니 오빠가 방을 스튜디오처럼 바꿔놨다. 오빠가 자신이 만든 음악에 프리스타일 랩을 해보라고 했을 때도 미리 써놓은 시에 리듬만 맞춰서 했다.(웃음)

10. 지토모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당시 릴체리가 랩을 너무 잘해서 놀랐다고 했는데.
지토모: 체리가 당시 랩을 하기 전에 나 혼자 2년 동안 프로듀싱을 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체리가 내 프로젝트를 위해 만난 50여명보다 랩을 훨씬 잘해서 놀랐다.(웃음) 하지만 체리의 실력을 깨닫고 보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항상 노래를 즐겼다.

릴체리: 고등학생 때 음악 없이 연기하면서 시를 읽는 ‘Poetry Slam’도 하고, 치어리딩 활동도 했다. 성격은 수줍었지만 무대에 서는 건 좋아했던 것 같다.(웃음)

10. 위더플럭 레코즈 소속이었을 때 낸 앨범 ‘Sauce Talk’와 새 크루 소스카르텔 설립 후 처음 낸 싱글 ‘All-You-Can-Eat’의 공통점은 ‘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스 혹은 음식과 관련된 가사를 쓰는 이유는?
릴체리: 모든 사람은 다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자신만의 소스를 갖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의 경우 마이애미에서 받은 영향을 음악을 통해 풀어내면서 동시에 한국만의 ‘소스’를 미국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10. ‘All-You-Can-Eat’의 뮤직비디오에서 활용한 칼이나 5만원권 등의 이미지에서도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지토모: 동양에서 힙합을 할 때 ‘카피캣’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파격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오리엔탈리즘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 적극 활용했고, 앞으로 한국어 가사 비중이 더 늘어난 트랙들을 더 선보일 예정이다.

릴체리: 아직은 한국말 표현이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나오진 않지만 계속 노력할 거다.

지토모: 한글을 공부하려고 미국에 있을 때도 아침에 계속 한국 뉴스를 챙겨봤다.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해 여러 매체의 경제, 정치 동향 뉴스를 보면 한국을 깊게 알아가는 것 같고 너무 재밌다.

10. 둘은 어떻게 뉴웨이브 힙합에 빠지게 됐나?
지토모: 대학생 때 무릎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줄곧 비보이로 살았다. 비보잉을 할 땐 올드스쿨 힙합을 굉장히 좋아했고 뉴웨이브 장르는 아예 듣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처음에 올드스쿨이 아니라 힙합을 한다고 했을 때 비보이 친구들이 갸우뚱했다. 미국에서 지금 가장 트렌디한 사운드가 마이애미에서 자주 듣던 뉴웨이브 장르다. 한국에서는 크라운제이 이후 미국 남부 스타일의 힙합을 보여준 래퍼는 없는 것 같아 내가 보여주고 싶었다.

10. 미국 남부 힙합을 한국에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의 멋도 미국에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릴체리: 미국에서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하다. 최근에는 더 심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소스’라는 요소를 통해 인종차별이나 편견을 뒤집고 싶었다. 또 젓가락이나 김치처럼 기존에 ‘쿨’하다고 인식되지 않은 것들도 우리 음악을 통해 세련되게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토모: 미국 힙합에 자주 등장하는 총, 마약, 여성, 차 등은 현지 래퍼들만이 선보일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엔 제한이 있다. 그래서 동양 래퍼로서 총, 마약처럼 위험하지만 핫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소스 같은 요리나 쌀 등의 음식과 관련된 표현들을 생각해 낸 거다.

10. 예를 들어 어떤 표현인가?
지토모: 내가 쓴 가사 중 ‘Rice on my neck’이라는 가사가 있다. 쌀을 다이아몬드나 장신구로 비유한 것이다. 가끔 진주 목걸이의 진주가 쌀알처럼 보일 때가 있다.(웃음) 이렇게 미국인들도 익숙한 단어를 더 멋있게 표현하려고 한다. 마이애미 지방에서만 유행하는 단어나 문장도 적극 활용한다.

릴체리: 힙합 자체가 흑인 사회에서 온 음악이다. 그래서 흑인 힙합을 내 것이라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마이애미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장기의 경험은 우리의 것이다. 무조건 남의 것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느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힙합 친남매 지토모(왼쪽)와 릴체리./ 사진제공=소스카르텔
힙합 친남매 지토모(왼쪽)와 릴체리./ 사진제공=소스카르텔
10. 학창시절 때 직접 느낀 경험이 현재의 음악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릴체리: 편견을 뒤집는 것을 직접 해봤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마이애미 공립 학교에 다닐 때 혼자 한국 사람이었다. 아무도 본명인 ‘정선우’를 발음하지 못해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선우’에 리듬을 넣어봤더니 어느새 유행어가 되는 걸 경험한 적이 있다.

지토모: 학생들 대부분이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 계열이어서 인종차별이 엄청 심했다. 초반에는 친구가 없었지만 졸업할 때는 ‘Prom King’이 됐다. (프롬은 북미의 고등학교 졸업 때 열리는 댄스 파티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애써 감추기보다 받아들이고 여유롭게 웃으면서 상대를 쳐다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뉴웨이브를 더 좋아하게 된 이유도 상처를 재밌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장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10. 어떻게 유일한 동양인이 ‘프롬 킹’으로 졸업하게 됐나?
지토모: 그 때가 2005년경이었다. 학교에서 CD를 구울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웃음) 흑인 친구들이 투팍, 비기 등의 앨범을 CD로 구워달라고 부탁하면서 방과 후 활동에 날 끼워주기 시작했다. 구운 CD를 5달러 받고 팔았다. 하하. 힙합에 대해 깊게 알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흑인 친구들도 심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10. 음악인으로서 지토모의 정체성은 래퍼와 프로듀서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지토모: 래퍼 반, 프로듀서 반이다. 욕심이 크다.(웃음) 롤모델인 퍼렐 윌리엄스, 박재범, 염따처럼 래퍼와 프로듀서로 모두 인정받고 싶다. 미국 힙합계에서 인정 받는 아티스트들을 소위 ‘OG(Original Gangster)’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올라설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10. 현지에서는 본인들의 음악이나 영상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릴체리: ‘Motorola’ 뮤직비디오에 나온 옥상 장면을 어디서 촬영했는지를 많이 물어봤다. 서울에서 찍었고 워낙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에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서울이라고 밝히자 자연스럽게 서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한국만의 멋, 아름다움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항상 연구하고 있다.

10.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릴체리: 완전해 보이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체로 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우리만의 음식 위에 사랑을 듬뿍 뿌리고 전 세계에 전파하고 싶은 바람이다. 친남매라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우리끼리 즉흥적인 시너지로 완성하는 곡들이 많다. 친형제 그룹으로 시작해 빌보드 차트까지 접수한 레이 슈레멀드가 우리의 롤모델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싶다.

10. 이루고 싶은 목표에 빌보드 차트인도 포함돼 있나?
지토모: 빌보드 차트 100위 안에 드는 것만 해도 경사다.(웃음) 체리와 나만의 팀플레이로 멜론에서도 1위를 언젠간 해보고 싶다. 우리끼리 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10. 한국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이나 예능 콘텐츠에도 출연해보고 싶은 의향이 있는지?
지토모: KBS2 ‘뮤직뱅크’가 불러만 주신다면 퍼포먼스는 자신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요 톱10’이나 ‘뮤직뱅크’와 같은 국내 음악 방송을 즐겨 보고 좋아했다.

10. 올해 새 앨범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
릴체리: 올해 안으로는 신보를 낼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 음반으로도 발매할 계획이다. 단독 공연도 준비 중이니 기대해 달라.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