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배우 이선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선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영화 ‘악질경찰’ 등 화면 가득 간절한 표정으로 극을 이끌던 이선균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돌아왔다. 빈자와 부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생충’에서 이선균은 IT회사 CEO 박 사장 역을 맡아 시종일관 의뭉스런 표정으로 인물들 사이를 오간다. 아들에게는 쿨하고 다정한 아빠이지만, 빈자의 감출 수 없는 냄새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얼굴을 구기며 신흥 부자의 새 면모를 스크린에 새겨넣었다. 오랜 시간 좋아하던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참여해 “꿈만 같다”는 이선균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기생충’이 흥행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이선균: 내 일 같지가 않다.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할까. 배우들끼리 너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면서 얘기하고 있다. 흥행의 단위가 바뀐 느낌이다. 영화가 훌륭한 건 알았지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실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우리도 긴장감이 있었다. 칸 다녀온 게 경사처럼 번진 것 같다.

10. 제작보고회 때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에게 연락받고 믿기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선균: 그 전화를 받았을 때가 칸에 갔을 때보다 더 좋았다. (웃음) 칸에 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작품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봉 감독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했으니 (출연은)얼마나 좋겠나.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마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배우들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한다. 너무나 동경하던 감독과 팀으로 함께 하고 그 안에 나온다는 것이 갖는 의미가 크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봉준호 감독 작품과 첫 작품이다. 호흡이 어땠나.

이선균: 솔직히 감독님이 너무나 완벽히 준비해 주셨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가 끌고 가는 역할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부담이 없는 것도 좋았고 마음도 가벼웠다. 사실 처음에는 감독님의 이름이 가져오는 무게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다. 나한테 너무 큰 분이셨으니까. 그런데 좀 지나니까 정말, 동네에서 영화 제일 잘 찍는 형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10. 처음 시놉시스를 받고 박 사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

이선균: 시놉시스도 받기 전에 출연 결정을 했다. 그리고나서 박 사장을 만났는데, 그가 사건 중심에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달라질 것 같았다. 캐릭터도 잘 잡아야 할 것 같고, 인물의 이중적인 성격도 잘 드러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콘티에 모든 게 들어있었다. 차 뒷 자리에 앉아 컵에 커피를 가득 채워 놓고 앉아있는 모습까지 모든 게 그 안에 있었다. 이런 장치들이 잘 짜여 있었고, 봉 감독님이 연기도 되게 디테일하게 잘 알려준다. 캐릭터의 리듬에 맞춰가면서 그냥 잘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0. 박 사장은 계급 상층부에 있지만 기존의 부자 묘사와는 다르다.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이선균: 그런 이중성이 박 사장을 연기하는 재미였다. 연교(조여정)와 처음 만나서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훨씬 더 딱딱했다. 그런데 슛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결혼 일찍한 부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그렇게 됐다. 그 다음부터 좀 더 편하게 된 것 같다. 원래는 정말 잘 하려고 했는데, 첫 날 디렉팅을 받고 뭘 더 하려고 하지 말고, 유연하게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됐다.

이선균은 ‘기생충’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놀랍고, 생생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심플한 이야기가 큰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는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길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덧붙였다./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선균은 ‘기생충’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놀랍고, 생생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심플한 이야기가 큰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는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길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덧붙였다./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힘이 더 들어갈 수도 있는데 오히려 편안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이선균: 꿈꿔왔던 작품이고, 그래서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고 얼마간은 너무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웃음)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그런데 영화 자체가 한두 명이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니까, 욕심보다 가끔씩 노출되는 내 연기가 극 사이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조절해 나갔다. 감독님을 100% 믿고 갔다. 그런데 사실 감독님이 잘 조절해준 것 같다. 그냥 콘티와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잘 하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뭘 더 하면 촬영 기간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도 더 그랬다.

10. ‘끝까지 간다’로 칸에 초청됐지만 가지 못했다. 이번에 칸에서 자신의 연기를 본 감회는?

이선균: 연기는 기술 시사회에서 먼저 봤고, 칸에서는 두 번째로 본 거였다. 내 연기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영화가 너무 좋다 보니까 영화를 봤다. 처음에는 내용을 다 알고 있어도 그 상황에서 오는 코미디가 더 돋보였는데, 두 번째로 볼 때는 기우 역의 (최)우식이한테 많이 이입됐다. 되게 먹먹했다. 나는 되게 먹먹해서 울컥한데 칸의 반응은 너무 열광적이고…. 그것조차 희비극이었다.

칸에서 볼 때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 기우 역에 더 몰입돼 먹먹했다는 이선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칸에서 볼 때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 기우 역에 더 몰입돼 먹먹했다는 이선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생각해보니 최근 보여준 캐릭터는 늘 궁지에 몰리고 초조했는데 박 사장은 달랐다.

이선균: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는 이질감이 있던 것도 같다. ‘나의 아저씨’ 끝나고 바로 투입된 거라서 박 부장이 박 사장이 된 느낌이었다. 6개월 동안 ‘나의 아저씨’로 있다가 와서 이질감이 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또 재미있더라. 연기할 때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을 보니 그런 건 없어서 만족스럽다.

10.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몇 없던 부자의 얼굴인데, 이선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는 평이 많다.

이선균: 그런 평을 들으면…이번에는 정말 그거면 됐다 싶다. (웃음) 출연한 것만으로 영광이니까.

10. 봉 감독에게서 다음 작품에 대한 언질은 없었나?

이선균: 말했지만, 이번 작품만으로도 영광이다. 정말 생각지 못한 큰 기회였다. 봉 감독님이 자신의 다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를 나도 읽었다. 당연히 또 하고 싶다. 영원히 기생하고 싶다. 봉 감독님을 영원히 숙주로 모시고 싶다. 하하하.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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