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모두가 백수인 가족의 둘째 딸 기정 역을 맡은 배우 박소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모두가 백수인 가족의 둘째 딸 기정 역을 맡은 배우 박소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박소담은 대선배인 이정은이나 이선균, 장혜진에게도 ‘언니’ ‘오빠’라고 부를 만큼 살갑고 사랑스럽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영화 ‘검은 사제들’ 때 악령이 깃든 소녀 역으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고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러 가면 긴장되고 주눅이 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연기자라는 일을 앞으로 잘 할 수 있을지 고민됐다고 했다. 슬럼프를 겪고 다시 충전됐을 때 거짓말처럼 만난 작품이 영화 ‘기생충’이었다. 박소담은 “조만간 관객으로 조용히 혼자 가서 영화를 볼 것”이라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잔뜩 꺼내보였다.

10. 영화 개봉 후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박소담: 찍으면서도 행복했는데 많이 사랑해주시니 감사하고 얼떨떨하고 믿기지도 않는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경험을 해도 되나 싶다.

10. 칸에 갔던 기분은 어땠나?
박소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도착해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칸인지 실감이 안 났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서야 그 레드카펫에 섰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때는 레드카펫에서 넘어지지 않고 예쁘게 걸어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는데 이번에는 언니, 오빠들, 그리고 감독님과 다 같이 걸으니 촬영하면서 길거리를 걸어다니던 느낌이었다.

10. 기정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봤나?
박소담: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는 할 말 다하고 당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정을 알아갈수록 짠했다. 입시부터 시작해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일인 미술로 28살이 될 때까지 대학에 떨어지고 취업에도 실패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혼자서라도 꿋꿋이 공부해왔을 텐데, 가족들에게도 힘든 티를 내지 않던 막내다. 비가 와서 변기 물이 흘러넘칠 때도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던 기정이 짠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세팅을 바꾸러 나가도 나는 ‘여기 좀 더 있어도 되느냐’고 하고 변기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집 안에서 기정이 속앓이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은 그곳뿐인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10. 기정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기정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고민한 건가?
박소담: 나도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다는 걸 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들 중에 유일하게 휴학을 안 하고 4년을 다녔다. 악착 같은 게 아니라 재밌어서 쭉 다녔다. 졸업한 해에 마침 신인 여배우를 찾는 오디션이 많았다. 한 달에 17번을 봤는데 줄줄이 떨어져서 힘들었다. 나름대로 학교에서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때 내 감정을 기정은 몇 년째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기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번번이 입시에 실패하는 기정을 보면서 배우 박소담은 졸업 후 한달 간 17번의 오디션을 보면서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이 떠올라 공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번번이 입시에 실패하는 기정을 보면서 배우 박소담은 졸업 후 한달 간 17번의 오디션을 보면서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이 떠올라 공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경계가 모호한 이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나?
박소담: 무능력한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있지만 이 가족은 사이가 좋고 돈이 없어도 서로 사랑한다. 기정과 기우는 부모의 사랑 아래에서 잘 자라온 아이들이다. 반지하에 살지만 양말을 말릴 만큼은 햇살이 들어오는, 태어나서부터 살아온 그 집에 대해 기정과 기우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그런 모습들이 현실적이라 공감됐다. 물론 부잣집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가서는 그 스케일에 놀랐을 거다. 나도 그 세트장의 규모에 놀랐으니까.(웃음)

10. 그 집을 보고 기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박소담: 기정과 기우가 그 집에 갔을 때 자신들이 살던 곳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세계를) 꿈꾸거나 짐작하는 자체도 안된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면 먹먹하거나 찜찜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부분이 기우가 그 집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장면이다. 나도 그 장면을 보고 멍해졌다.

10. ‘독도는 우리땅’의 음에 맞춰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고 하는 대사는 은근히 중독성이 있고 관객들도 재밌어한다. 특별히 임팩트를 주려고 했나?
박소담: 그렇지는 않았다. 부잣집에 들어가기 위해 내 정보를 준비해야 하는데 뭔가 외울 때 노래에 넣어서 외우면 더 빨리 외워지지 않나. 감독님이 이걸 쓴 걸 보고 재밌었다. 원래는 4절까지 있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제일 처음 외운 대사도 그거였다. 일상적이거나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사들이 현장에서 바뀔 수도 있지만 그 대사만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최우식과 닮은꼴이라는 점은 인정하나?
박소담: 둘 다 처음엔 인정하지 않았다. (웃음) 감독님이 우리 둘과 함께 만나자마자 붙어보라고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받고 나서야 둘 다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영화를 보니 닮았더라. 내가 캐스팅된 건 먼저 캐스팅된 오빠와 닮았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평생 오빠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10. 봉 감독은 어떤 얘기를 하면서 출연 제의를 했나?
박소담: 감독님이 ‘옥자’에서 미자 역을 맡을 배우를 찾던 중 내 사진을 보고 10대 중반 연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면서 나를 부른 적 있다. 나중에 내가 미자의 나이와 맞지 않아서 안 되겠으니 온 김에 차나 한 잔 먹고 가라고 했다. 편하게 한 시간 반 정도 수다를 떨고 왔다. 그러고 나중에 모르는 번호로 봉 감독님이 나를 뵙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믿기지 않고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답을 안 했다. 두 번째로 연락을 받고 실제로 만나서야 진짜인 걸 알게 됐다. 3년 전 여름이었다. ‘기생충’이라는 제목도 나오지 않았고, 당시 정해진 건 송강호 선배와 함께 한다는 것, 내가 선배의 딸 역할이라는 것, 가족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하자고 한 후 감독님이 두 달간 연락이 없어서 또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감독님은 그냥 시나리오 쓰느라 바빴던 거였다.

박소담은 “다음 작품은 액션 영화인데, 힘내서 잘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박소담은 “다음 작품은 액션 영화인데, 힘내서 잘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송강호, 이정은 등 선배들과 같은 작품에서 연기한 소감은 어떤가?
박소담: 좋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난 게 ‘기생충’을 하면서 가장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송)강호 선배는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편하게 전화하라고 해주셨다. 감독님은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게끔 다잡아주셨다. (장)혜진 언니의 그 에너지에 놀랐다. 언니는 (학교) 후배를 현장에서 만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고 했다. 모든 배우들이 ‘우리는 같이 일하고 같이 해 나가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저와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정은 언니까지도 내게 ‘너는 친구같다’고 했다. ‘선배님’이라고 부르다가 그 말을 듣고 ‘언니’라고 해도 되느냐고 했더니 ‘당연하다’면서 반겼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돼서 이 현장이 끝나지 않았으면, 이 행복이 계속 됐으면 하고 바랐다.

10. ‘검은 사제들’에서 이후 특별히 주목받은 작품이 없었다. 힘들진 않았나?
박소담: ‘검은 사제들’을 한 후에 많은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이후에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컸다. 당시 소속돼 있던 회사도 나오게 되고 작품도 들어오지 않으면서 생각이 많았다. 여행도 가고 자연스럽게 회복이 됐는데, 이젠 연기가 너무 하고 싶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 (봉준호) 감독님에게 연락이 온 거다.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면 ‘기생충’을 이렇게 행복하게 작업하지 못했을 것 같다. 또 연기를 잘 해내야 된다는 생각밖에 못 했을 것 같다. ‘기생충’을 하면서 사람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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