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다큐 영화 ‘옹알스’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차인표./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다큐 영화 ‘옹알스’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차인표./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연기도 했고, 음반도 내 봤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이 맞아서 한 것도 있고 누군가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도 있죠. 영화 제작과 연출은 스스로 결정해서 하게 된 일입니다.”

배우 차인표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자신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를 오는 30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그는 “긴장은 안 된다. 끝까지 찍었고, 전주영화제에도 초대 받았고, 개봉까지 하게 됐다. 감사할 뿐이다”라며 웃었다.

‘옹알스’는 12년간 46개 도시에서 한국의 코미디를 알린 넌버벌 코미디팀 옹알스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전기를 담은 작품이다. 2018년 1월 미국 LA에서 촬영을 시작해 13개월 간 찍고 편집한 끝에 완성했다.

왜 ‘옹알스’였을까. 차인표는 “오래 전 한 보육 시설에서 재능기부 공연을 하고 있는 옹알스를 처음 봤다”고 했다. 옹알스가 10년여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코미디를 알려온 이야기, 리더 조수원의 암 투병, 라스베이거스라는 큰 무대로 도전을 준비 중이라는 계획을 그때 들었다.

“옹알스는 지상파 방송에서 밀려나 설 자리가 없었는데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끼리 설 자리를 찾고, 연습하고, 새로운 무대를 찾아 눈을 돌린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애초 차인표는 제작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직접 카메라를 잡았다. 그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많이 힘들었다. ‘옹알스’ 촬영은 내게 도를 닦는 시간과 다름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라스베이거스 도전에 성공하기까지를 담으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혈액암을 앓고 있는 리더 조수원의 병세가 악화 됐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외국인 배우 타일러를 투입했지만 팀에 동화되지 못했다. 이런저런 상황에 흔들린 멤버들은 힘이 빠졌다.

차인표는 “‘도전합시다’ 하며 찍기 시작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고, 멤버들을 다그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계약된 일정이 다 돼서 지난 4월 촬영팀이 해산됐다. 차인표도 잠시 손을 놓고 미국에 있는 가족한테 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많이 호전된 조수원과 옹알스의 원년 멤버 채경선, 조준우가 미국으로 찾아왔다.

“과거 유럽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를 생각하며 심기일전했죠. 있는 그대로 다시 찍기 시작했어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속 얘기를 들었고, 마음을 다 잡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영화 ‘옹알스’를 공동 연출한 차인표와 전혜림 감독./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영화 ‘옹알스’를 공동 연출한 차인표와 전혜림 감독./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촬영팀까지 해산했지만 마지막까지 차인표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돼준 사람이 있었다. 공동 연출을 맡은 전혜림 감독이다. 2013년 차인표가 영화 ‘마이모이’를 촬영할 때 전 감독은 연출부 막내였다. 차인표는 “당시 전 감독을 눈 여겨 봤다. 내가 제작사를 차리고 단편 영화를 찍을 때 조감독으로 모셨고, 두세 번 정도 같이 작업했다. 그리고 ‘옹알스’를 함께 찍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선후배 사이라도 맞춰가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도 있었다. 차인표는 “전 감독은 내가 의견을 말하면 덥석 물어서 해결해주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반론하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이에 전 감독은 “필요했던 충돌이었다. 건설적인 싸움이었던 것 같다”며 “그 과정도 재미있었다. ‘영화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 더 큰 시너지가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차인표는 “상황이 힘든 옹알스 멤버들 눈치 보고, 늘 기다리면서 잘 버텨줬다”며 “전 감독이 연출부 막내 때부터 말을 놓지 않았다. 반말을 했다면 이런 관계가 안 됐을 것이다. 역시 어리다고 함부로 말을 놔선 안 된다”며 웃었다. 전 감독은 “한참 후배인데도 끝까지 같은 연출자로 봐 주셨다. 안 그랬다면 진작 도망 갔을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는 차인표와 전 감독, 그리고 옹알스 멤버들이 애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말도 달라졌다. 덕분에 ‘도전’이라는 진짜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다.

“도전에 집중하려 했죠. 하지만 그들의 삶 깊숙히 들어가보니 한 가정의 가장, 결혼을 앞둔 그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과 오늘 당장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것이 절박한 문제더군요. 자연스럽게 관심이 바뀌었습니다.”

옹알스는 아직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서지 못했다.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에도 당연히 그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

“하루하루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그게 삶이죠. 옹알스는 멀리서 보면 단단한 돌맹이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작은 조약돌들이 모여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여요.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이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뭐가 힘드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죠.”

옹알스처럼 차인표 또한 매 순간 도전하고 있다. 2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한 그는 돌연 제작사를 차리고, 직접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1995년 영화에 데뷔했는데, 2004년 ‘감기’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게 마지막 상업 영화다. 내가 출연했던 상업 영화가 이상하게 잘 안 됐다”며 “배우의 캐스팅은 통계다. 흥행의 통계에 따라 캐스팅이 되는 건데 ‘감기’ 이후 상업 영화 대본이 거의 안 들어왔다”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배경을 설명했다.

감독에 도전한 배우 차인표가 “극한의 상황에서 도전하는 옹알스를 보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승현 기자 lsh87@
감독에 도전한 배우 차인표가 “극한의 상황에서 도전하는 옹알스를 보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승현 기자 lsh87@
“2016년에 TKC픽처스를 차렸습니다. 영화 연출을 배우려는데 주변 사람 중 한 분이 현장에서 시작하라고 하더라고요. 큰 영화로 대접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작은 영화부터 찍어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차인표는 TKC픽처스 창립 작품인 단편영화 ’50’으로 첫 연출을 맡아 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였다. ’50’은 자신이 나이 50을 맞이해 도전한 작품이다. 이후 여러 편의 단편을 시도하며 역량을 키웠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일에 만족한다. 이왕 시작했으니까 영화(제작·연출)는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영화를 오래 하고 싶습니다. 영화 감독이 하고 싶은 것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직업으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뿐이죠.”

익히 알려진 대로 차인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나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건전한 가족물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억 투자 받아서 영화를 찍으면 행복할까? 난 불안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투자를 받을 만한 깜이 안 된다. 큰 영화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옹알스나 차인표 모두에게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옹알스2’가 나올까? 차인표는 “멤버들은 찍자고 하는데 우린 그럴 생각이 없다. 그들과는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형, 동생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옹알스’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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