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SBS 월화드라마 ‘해치’에서 영조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정일우. /조준원 기자 wizard333@
SBS 월화드라마 ‘해치’에서 영조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정일우. /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정일우가 대체복무를 마친 지 2년 반 만에 SBS 드라마 ‘해치’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해치’는 드라마 ‘동이’ ‘이산’으로 숙종과 정조 시대를 재해석한 김이영 작가가 젊은 영조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또한 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 화원을 배출하는 도화서에 이어 오늘날 검찰에 해당하는 사헌부를 드라마 소재로 활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정일우는 “대체복무 이후 선택한, 쉽지 않았던 작품 ‘해치’를 잘 마무리하게 돼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해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김이영 작가님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젊은 영조를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은 거의 없어서 그런 영조의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연기하기 쉽지 않을 때마다 작가님이 제 마음을 잡아주셨고 장면 해석도 도와주셨어요. 작가님이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생각한 게 ‘왕상(像)’이었는데, 제가 왕상이라서 좋았다고 하셨어요. 하하. 작가님은 제게 어려운 캐릭터를 맡겨 미안하다고 했는데, 오히려 멋진 영조를 만들어준 작가님께 제가 감사하죠.”

정일우는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 연잉군에서부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이 되기까지 영조의 고뇌, 역경을 치열하게 그려냈다. 극 중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 없던 연잉군은 애민에 뜻을 두고 선정을 펴게 된다.

“천출의 피를 갖고 태어난 영조가 백성을 이해하는 왕으로 거듭나기까지 과정을 진정성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이전에는 표정이나 눈빛으로 연기를 만들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려고 했어요. 제 데뷔작이 시트콤이다 보니 표정이 과하게 나올 때가 있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는 저를 내려두고 연기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진정성 있게 와 닿았고 연기도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준 것 같아요.”

“고통스럽다는 건 캐릭터 표현을 더 잘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라고 격려해준 배우 임호의 말이 정일우는 와 닿았다고 털어놨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고통스럽다는 건 캐릭터 표현을 더 잘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라고 격려해준 배우 임호의 말이 정일우는 와 닿았다고 털어놨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일우는 “이번 작품은 유난히 힘들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영조를 연기하며 극 중에서 아버지, 이복형제 등 소중한 사람을 많이 잃었던 탓에 실제로도 감정의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정일우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나 혼자 남는 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 촬영 후반부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반려견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었단다. 무엇보다도 정일우를 괴롭혔던 건 극 중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채찍질했던 젊은 영조였다. 정일우는 “성장통을 겪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조의 애민이 느껴지는 장면은 그의 마음에 더 깊이 새겨졌다.

“‘해치’는 사극이지만 현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하들을 위한 기로연에서 백성을 위한 연설을 한다거나, 괴병이 퍼져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직접 활인서에 행차하는 장면은 마음에 울림을 주죠. 조작된 역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석고대죄를 하는 장면을 종일 찍고 난 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

슬럼프가 온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정일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온다”며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뚝딱 해서 나오는 거 같지 않다”고 말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슬럼프가 온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정일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온다”며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뚝딱 해서 나오는 거 같지 않다”고 말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일우는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의 윤호 역으로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모았다. 사춘기 소년의 다듬어지지 않은 반항기, 아릿한 짝사랑, 웃음을 자아내는 백치미가 여심을 사로잡았다. 이후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49일’ ‘해를 품은 달’ ‘꽃미남 라면가게’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등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하이킥’의 윤호로 정일우를 기억하는 대중도 많다. 정일우는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며 “‘하이킥’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냐고 묻자 “사실은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깨고 싶다고 깨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이미지를) 쌓아가는 거지 깨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지금 제 나이엔 다시 ‘하이킥’을 할 수도 없어요. 하하. 20대에 어울렸던 게 ‘하이킥’의 캐릭터라면 30대 때는 또 무언가 만들어가야죠.“

30대가 된 후에 20대 때와는 어떻게 달라졌냐고 묻자 “20대 때는 조급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며 “내가 계속 배우를 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잊히면 어떡할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대체복무를 한 시간이 변화의 계기가 됐을까.

“요양원에서 치매 어르신을 돌보며 2년을 보내면서 굳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쓸데없는 고민으로) 허비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를 즐기기만 해도 모자라다 싶었죠. 굳이 생기지도 않은 일을 사서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이 유연해졌습니다.”

정일우는 현재 잡지 편집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3월부터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크리빗’을 창간해 계간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 창간호에서 정일우는 ‘하이킥’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나문희를 직접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30대의 나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 음식, 문화 등을 소개하고 인터뷰도 직접 한다는 각오다.

“새로운 도전을 재밌게 해나가려고 합니다. 제 작품을 통해서도 대중들이 힐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