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우상’에서 미스터리한 여성 최련화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사진제공=딜라이트
영화 ‘우상’에서 미스터리한 여성 최련화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사진제공=딜라이트
영화 ‘써니’ ‘한공주’ ‘곡성’ 등 여러 작품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천우희가 더욱 강하고 파격적인 캐릭터로 돌아왔다.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은 후 진실을 쫓는 아버지, 사건 당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등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상'(20일 개봉)을 통해서다. 극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여성 최련화를 맡아 한석규, 설경구 등 대배우들과 호흡을 ?춘 천우희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우상’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
천우희: 이수진 감독님이 ‘시나리오나 한번 읽어봐’라고 하셨다.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께 ‘쉽지 않겠다. 전무후무한 캐릭터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감독님이 ‘다른 배우가 하면 아깝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그냥 읽어보란 얘기가 아니었다. 노림수였다. 하하.

10. 바로 출연을 결정했나?
천우희: 탐났지만, 섣불리 도전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건 다르다. 하고 싶지만 두려웠다. 감독님께 ‘일단 다른 여배우도 찾아보라’고 했다. 아마 ‘우상’을 제안받은 웬만한 배우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10. ‘한공주’에 이어 이수진 감독 영화에 또 출연했다. 두 번째 작업은 어땠나?
천우희: 한 명의 감독님과 두 번 일한 건 처음이다. ‘한공주’ 때 워낙 호흡이 잘 맞았다. 촬영 기간도 짧아 매우 급하게 찍었지만, 감독님과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해서 좋았다.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감독님과 함께한다고 했을 때 설렘도 있었다. 어떤 배우든 연출하는 사람이 내 연기를 정확히 알아채거나 알아줄 때 만족감이 있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기대가 있었다.

10. 련화라는 인물은 겉모습부터 파격적이다. 눈썹은 진짜 민 건가?
천우희: 진짜 밀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하하. 처음엔 한 번만 밀면 된다고 했는데 촬영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두 번 밀었다. 처음에 밀었을 땐 ‘어떡해’라는 말부터 나왔다. 한 달간은 집에서 칩거했다. 자라는 데 고충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련화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10. 한석규와 설경구도 ‘련화’ 캐릭터에 도전한 자체를 높이 평가했다. 부담을 어떻게 떨쳐냈나?
천우희: 배우들은 작품에 임하기 전 ‘이건 나밖에 못 하는 거야’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련화를 연기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작했다.

10.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연기했나?
천우희: 련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왜 이렇게까지 행동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시나리오에도 과거 이야기가 없는 인물이라 많은 부분을 상상해서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련화는 구명회(한석규)처럼 비겁하지 않고 솔직하다. 순간의 상황과 감정이 중요했다. 이 인물을 어떻게 하면 짠하게 여겨지게 할까 고민했다. 혹시라도 너무 무서운 인물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영화 ‘우상’에서 파격적인 캐릭터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 “련화는 탐났지만 섣불리 도전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딜라이트
영화 ‘우상’에서 파격적인 캐릭터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 “련화는 탐났지만 섣불리 도전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딜라이트
10. 생각한 대로 잘 표현했나?
천우희: 생각했던 만큼 따라주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몰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용납이 안 됐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한석규, 설경구 선배님들의 무시무시한 내공 앞에서 나는 보잘것없구나 싶었다. 련화 캐릭터가 나를 잡아먹는 느낌도 받았다.

10.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천우희: ‘한공주’로 가능성을 열었다면 ‘우상’으로 한계를 맛봤다. 자신감이 추락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배우구나’라고 생각했고, 연기에 자신이 없었다. 이 감독님과 두 번째 작업이기에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보다 뭔가 다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마음처럼 안되면 조급함이 몰려왔다. 원래 외부적인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당황할 정도로 컨트롤이 잘 안 됐다. 사실 초반까지만 해도 온몸 불사르겠다고 생각하며 달렸는데 김주혁 선배의 죽음 이후 많이 흔들렸다. ‘다 부질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너졌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해결해준 부분도 있다.

10. 결과물을 봤을 땐 어땠나?
천우희: 최고로 잘했다고 할 순 없고, 기술적으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고 진심을 다해 진정성 있게 연기했다.

10. ‘한공주’ ‘곡성’ ‘우상’ 등 왜 자꾸 어려운 역할만 하는 건가?
천우희: 왜 자꾸 나한테 어려운 역할을 주는지 모르겠다. 왜 이럴까 싶기도 하지만 좋게 생각해보면 내가 표현할 수 있다고 믿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내 취향도 한몫하는 것 같다. 실제 나와 반대되는 모습이 있다 보니 끌리는 점도 있다. 어려운 역할을 나한테 맡겨놓은 느낌이 들고, 배우로서는 어떻게든 해내야 하기에 부담은 있다. 하지만 스스로 해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10. 한석규가 센 역할을 그만하라고 했다던데?
천우희: 우아한 목소리로 ‘우희야, 당분간 하지마’라고 하셨다. 그런데 세고 어려운 역할이 뭔가 임무처럼 주어진다. 이제는 안 해본 장르나 캐릭터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

10.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JTBC 로맨틱 코미디 ‘멜로가 체질’을 선택했나?
천우희: 어떻게 할지,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내가 엄살이 좀 심한 편인데 지금도 계속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 (웃음) 한석규 선배님이 ‘넌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 없으니까, 시청자들도 본 적 없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라고 하셨다. 큰 가르침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선배님’이라고 했다. 하하.

센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배우 천우희는 “안 해본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딜라이트
센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배우 천우희는 “안 해본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딜라이트
10. 영화가 어렵다는 평이 많다.
천우희: 솔직히 말해 불친절한 영화다. 그런데 모든 영화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석하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어렵다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들기 쉽다.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결말이다. 끝에 가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시 보면 된다. 하하.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나는 만족한다.

10.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데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이 있다.
천우희: 직접적인 행위보다 그 이후의 모습들이 나온다. 사실 나도 가끔은 어떤 기준으로 등급이 정해지는지 궁금하긴 하다.(웃음)

10. 배우로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
천우희: 얼굴이다. (웃음) 예쁜 얼굴이라는 게 아니라 여러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을 가진 것 같다. 장점이자 단점인 게, 이런 내 얼굴을 담아낼 수 있는 감독님을 만나지 못하면 발현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10. ‘우상’ 촬영을 마치고 배우로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천우희: ‘우상’은 초심을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미처 몰랐는데 나는 자신을 많이 옥죄고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그 인물을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에게는 연기가 맹목적인 우상이 되는 것 같다. ‘연기를 잘한다’라는 말은 사실 각자의 취향일 수 있고 봐 주는 분들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언제부턴가 연기를 잘 하고 싶어졌고, 인물과 100% 일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한 마음들이 이번에 정점을 찍었다. 한계에 부딪히니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늘 최선을 다하지만, 매번 성장할 수는 없다. 그걸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석규, 설경구 두 선배님을 보면서 ‘저렇게 오랫동안 좋은 연기를 하는 게 쉬운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주변의 선택과 평가에 자신을 다독이면서 자기 길을 간다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다시 보게 되고, 나에게 많은 것을 끌어내고, 또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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