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싱글맘 홍장미로 열연을 펼친 배우 유호정.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싱글맘 홍장미로 열연을 펼친 배우 유호정.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배우 유호정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써니’ 이후 8년 만이다. ‘써니’가 중년 여성의 소녀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를 추억하는 이야기라면, ‘그대 이름은 장미’는 억척스러운 싱글맘에게도 찬란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유호정은 싱글맘 홍장미를 연기하는 내내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영화를 봤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엄마께 이 영화를 바치고 싶어요.”

10. ‘써니’ 이후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유호정: 자극적인 소재보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딸이 유괴 당한 엄마, 딸이 성폭행 당한 엄마 같은 강한 역할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역할은 연기하면서도 너무 아프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최근에는 모성애를 다룬 작품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서 이 영화라면 제대로 엄마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10. 20대 장미는 배우 하연수가 연기했다. 둘이 함께 등장하는 부분이 없어서 궁금하지 않았나?
유호정: 연수가 젊은 장미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니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과 가수가 되려는 열정을 가진 장미의 모습을 하이틴 로맨스의 인물처럼 예쁘게 담아냈더라. 연수만의 사랑스러움이 처절한 장미의 인생을 희망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요소였다. 덕분에 후반부에 딸 현아 역인 (채)수빈과의 케미가 더 돋보일 수 있었다.

10. 영화를 보면서 20대 시절이 떠올랐을 것 같은데.
유호정: 보통은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연기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라면서 캐릭터에 접근했다. 나의 어린 시절보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치열한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을 생각했다. 가슴이 아팠다. 홀로 나와 여동생을 키운 엄마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대 이름은 장미’는 엄마께 바치는 영화다.

10. 생전 어머니께서 모니터링을 많이 해주셨나?
유호정: 내가 작품에 출연하는 걸 좋아하셨다. 10년만 더 살아계셨으면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 재롱 피우는 모습도 보셨을 텐데… 너무 일찍 가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참 안타까웠다.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0. 장미를 연기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나?
유호정: 극 중 홍수가 나자 장미와 현아가 사는 반지하방에 빗물이 들어찬다. 실제로 중학생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 우리 집 옆에 5층짜리 아파트가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거기 피신시켜 두고 가재도구를 옥상으로 옮기곤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셨다. 엄마가 물에 떠내려갈 거 같아 두렵고 속상해했던 기억이 난다.

10. 실제로도 워킹맘이니 장미에게 더 공감했을 것 같다.
유호정: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어느 엄마나 마찬가지일 거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는 아이를 좀 더 편하게 키웠다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장미가 녹록치 않았겠다 싶어 공감된다.

10. 첫사랑 명환 역은 박성웅이, 늘 장미의 곁을 지켜주는 남사친 순철 역은 오정세가 맡았다. 함께 연기하니 어땠나?
유호정: 성웅 씨는 강한 캐릭터를 많이 보여줬는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면이 있는 줄 몰랐다. 덩치 크고 강인한 남자에게 묻어나는 반전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감독님이 왜 부산까지 찾아가서 명환 역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는지 알겠더라. 정세 씨가 나오는 작품을 볼 때면 이 작품의 오정세와 저 작품의 오정세가 완전 다른 사람 같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적절한 선을 아는 영리한 배우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 이번 영화에서는 두 남자가 양 옆을 지켜줘서 든든했다. 두 사람 덕분에 여자로서 장미의 모습도 끌어낼 수 있었다.

10. 딸 현아 역의 채수빈은 어떤가?
유호정: 성실하고 성품이 곧은 친구다. 경험이 적어서 부족한 점은 열심히 해서 채워나갔다. 현장에서도 수빈은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요?’를 수없이 말했다. 욕심 내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이 장면은 연습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해보자’고 했더니 그 말을 알아들었다. 자기 것만 하는 배우가 아니라서 시너지가 났다.

유호정은 “이젠 남편(이재룡)과 서로 눈빛만 바라보는 시기가 아니라 손 붙잡고 한 곳을 향해 가는 시기다. 그렇게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유호정은 “이젠 남편(이재룡)과 서로 눈빛만 바라보는 시기가 아니라 손 붙잡고 한 곳을 향해 가는 시기다. 그렇게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0. 남편 이재룡과 열여덟 살 아들, 열다섯 살 딸을 두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엄마인가?
유호정: 딸에게 직접 물어봤다. ‘친한 친구 같은 엄마’라고 했다. 친한 친구한테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무슨 비밀이 있냐면서 저한테 다 말한다고 하더라.(웃음) 괜히 뿌듯했다. 사춘기가 지난 아들은 아직도 제게 와서 뽀뽀해준다. 정말 ‘스윗’하다. 딸도 그렇고 아들도 애교가 많다. 저 말고 남편을 닮았다.

10. 올해 결혼 24년차다. 이재룡은 어떤 존재인가?
유호정: 내가 일할 땐 남편이 쉬고, 남편이 일할 땐 내가 쉬었다. 그래서 일도 지금껏 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잉꼬부부라고 해주시는데, 사실 우리는 알콩달콩 애정 표현을 많이 하진 않는다. 나는 무뚝뚝하고 남편에게 잔소리가 많은 아내다.(웃음) 남편은 변함없이 친구처럼 든든히 옆에서 같이 가주는 사람이다. 동반자라는 게 이제는 뭔지 알겠다. 서로의 눈빛만 바라보는 시기는 한참 지난 것 같다. 대신 손 붙잡고 한 곳을 향해 가는 시기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10. 요즘 부부가 함께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도 있는데, 출연해보는 건 어떤가?
유호정: 카메라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의식해서 가식적으로 행동할 것 같다. 그러면 보시는 분들도 편하지 않을 거다. 내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10. 다음 작품 계획은?
유호정: 아직은 없다. 선택돼야 할 수 있지 않겠나.(웃음) 요즘 들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있기에 내 건강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걸 알았다. 건강해야 연기도 더 잘 할 수 있다. 그 동안 참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여전히 갈증이 있다는 것도 최근 느꼈다. 얼마 전 중년 로맨스를 다룬 ‘파리로 가는 길’을 보곤 ‘저런 영화 속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다이안 레인이 참 아름답게 늙었구나 싶었다. 요즘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가면서 다가올 후반부를 준비하려고 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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