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애니메이션의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신작 ‘미래의 미라이’를 들고 서울을 찾았다./ 사진제공=얼리버드픽쳐스
애니메이션의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신작 ‘미래의 미라이’를 들고 서울을 찾았다./ 사진제공=얼리버드픽쳐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세밀한 일상을 뿌리로 한 판타지에 능하다. 신작 ‘미래의 미라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의 타임리프, ‘썸머 워즈’(2009)의 가상세계, ‘늑대 아이’(2012)나 ‘괴물의 아이’(2015)의 가족까지 전작들에서 다룬 소재들이 총망라된 작품이다. 내년 1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필운동의 카페에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가에 머무르던 미소는 차가운 겨울밤에 진행된 인터뷰 현장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마치 문장을 써내려가듯, 정성 깃든 답변도.

10. 가족이 모두 당신의 팬이다. 특히 열 살인 딸이 꼭 물어봐 달라고 당부한 질문이 하나 있다. 감독님의 어마어마한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얻는 것이냐고?

호소다 마모루: (웃음) 정말인가? 따님이 질문을 해줘서 너무 기쁘다. 젊었을 때는 외국 영화나 옛날 화가의 오래된 그림에서 대부분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 아내나 아이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 속에 굉장히 소중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항상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상상력의 영감을 받고 있다.

10. ‘미래의 미라이’에는 가족의 모습이 더 깊숙이 담긴 듯하다.

호소다 마모루: 영화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대부분의 대사는 실제로 내가 들은 말이다. 재현율 자체가 엄청 높다. 그래서 아빠 역할을 맡았던 호시노 겐이 “아빠를 어떤 식으로 연기할까요?” 했을 때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랬다고 실제 느낌을 설명하기도 했다.

10. 영화 속 아빠처럼 성장한 것인가?

호소다 마모루: 영화에서도 아버지가 성장하는 모습이 굉장히 자세하게 드러난다. 내가 처음 아이를 돌보게 됐을 때, 계속 아내를 쳐다봤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봤더니, 아내가 자기를 보지 말고 아이를 보라고 했다. 그때는 의미를 전혀 몰랐다. ‘무슨 말이지?’라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어떤 의무감에서, 아니면 아내의 육아를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의지했다. 그런데 점점 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의미가 생기고, 또 제대로 의미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졌다. 내 안에서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그러한 것들이 영화 속에 반영이 됐다.

영화 ‘미래의 미라이’ 스틸
영화 ‘미래의 미라이’ 스틸
10. 영화 속 쿤과 미라이의 모습에 실제 아들과 딸의 모습이 담겼다고 들었다.

호소다 마모루: 지금 아들은 여섯 살, 딸은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나서 세 살이 되었다. 영화를 만들 때는 아들은 세 살, 딸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됐을 때다.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면, 어른이 아이에게서 받는 것이 훨씬 많다. 영화에도 이야기로 나오지만, 네 살짜리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면 내가 네 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네 살 때 있었던 일들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한 번 더 그 시절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아주 막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선명해지면서 어린 시절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배우게 됐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10. 영화의 주무대는 집과 마당이다. 계단식으로 된 집의 구조가 상당히 독특하다. 개인적으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집이기도 했다.

호소다 마모루: 이 집 자체는 아이에게 있어서 온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즐거운 느낌, 무언가 도전하는 느낌 같은 여러 가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이가 이 집을 딱 보았을 때 너무나 흥분되고, 재미있을 거 같다고 느낄 만한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집에서 살게 되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웃음)

10. 네 살 아이의 걸음걸이를 리얼하게 살렸다. 아이의 짧은 다리로는 계단식의 구조가 벅차게 느껴졌는데 의도한 설정인가?

호소다 마모루: 맞다. 그런 걸 생각하고, 이 집의 구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변해간다. 그래서 처음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이 어느 샌가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아이가 처음에는 영화 속에서 엎드려서 계단을 오르고 내리다가, 영화가 끝날 쯤에는 어른처럼 제대로 올라가고 내려간다.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기에도 계단식으로 된 집이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0. 네 살 쿤의 목소리가 아이답지 않아서 초반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는 했다. 영화가 점차 흐르면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쿤의 목소리로 카미시라이시 모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호소다 마모루: 성우 오디션에 정말로 많은 분들이 왔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40~50대 여성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가. 그 안에서 쿤에게 가장 가깝다고 판단한 카미시라이시 모카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나는 누구인가 의문을 품고, 가족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본인에 대해서 깨닫고 여동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나 의문은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답을 추구하고 찾아가는 질문이다. 고민 끝에 어린이의 목소리에 가까운 성우를 쓰는 것을 포기하고, 누구라도 공통적으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목소리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18세인 카미시라이시 모카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약간 그림이 붙지 않는 부분에서 생기는 위화감, 어색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작품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국 관객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사진제공=얼리버드픽쳐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작품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국 관객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사진제공=얼리버드픽쳐스
10. 애니메이션계 입문기가 궁금하다.

호소다 마모루: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당시 애니메이션계가 가혹하다는 이야기를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큰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도에이 동화’에 들어갔다. 소문대로 굉장히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급은 작고, 장시간 업무를 해야 되고, 보장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심지어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림도 잘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1991년이었다. 그때 마침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가 나왔다. 그것을 보고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힘들지만 좀 더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한 것이 지금에 도달하게 됐다. 힘들어도 용기를 가지고, 지속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 당신의 작품을 ‘인생 애니’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에게도 그러한 애니메이션이 있는지?

호소다 마모루: 일단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이웃집 토토로’.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1985년작 ‘은하철도의 밤’.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동화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원작이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세계를 뛰어넘어서 굉장히 잘 만들었다. 영화 자체는 꽤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좀 지루한 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 안에서는 농밀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10.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당신의 작품은 늘 핫하다.

호소다 마모루: 한국의 관객들은 매우 정열적으로 나의 작품을 본다. GV를 할 때, Q&A를 할 때 굉장히 본질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신다. 그냥 떠오르는 의문점 같은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매우 깊이 생각해서 그것에 대한 진짜 답을 원하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12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당시의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본질적인 질문을 많이 던져주셨다. 그런 점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10. 3년 단위로 작품이 나왔다. 차기작은 2021년인가? 차기작 구상이 이미 나왔는지?

호소다 마모루: 2021년을 목표로 열심히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미래의 미라이’하고는 정반대인,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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