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PMC: 더 벙커’에서 PMC 핵심팀 블랙리저드 팀장 에이헵 역할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PMC: 더 벙커’에서 PMC 핵심팀 블랙리저드 팀장 에이헵 역할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난해 연말 ‘1987’(723만), ‘신과함께-죄와 벌'(1441만)로 흥행에 성공하고 여름에 개봉한 ‘신과함께-인과 연'(1227만)으로 ‘쌍천만’ 신화까지 이룩한 배우 하정우가 신작 ‘PMC: 더 벙커’로 돌아왔다. ‘더 테러 라이브’를 함께한 김병우 감독과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에 이어 밀폐된 공간에서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대사의 80%를 영어로 소화했다. 오로지 돈을 위해 싸우는 민간 군사기업 PMC의 핵심인 블랙리저드 팀장 에이헵 역할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하정우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PMC: 더 벙커’로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 기분은?
하정우: 제작 과정을 5년 동안 지켜봤기 때문에 남다르다. ‘더 테러 라이브’ 이후 ‘PMC: 더 벙커’ 제작이 확정되고, 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에이홉 캐릭터를 외국인으로 할지, 내가 북한 의사 윤지의를 연기할지, 팀원 중에 한국인을 더 넣을지 등 설정부터 시나리오까지 함께 논의하며 바꿔 나갔다. 제작진이 어떻게 준비하고 노력했는지 체감하기 때문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10. 전작인 ‘신과함께’ 시리즈를 통해 ‘쌍천만’ 배우가 됐다. ‘최연소 1억 관객 동원 배우’라는 타이틀도 생겼다. 더 부담될 것 같은데?
하정우: 아침에 한강을 걷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께 연락했다. ‘느낌이 새롭다. 걱정된다’라고 했더니 ‘걱정해서 될 일이니?’라고 하셨다. 맞다.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걱정’이라는 단어를 안 쓰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마냥 연승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패배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부담은 내려놓으려고 한다.

10. 영화 속 전투 장면은 슈팅 게임 ‘배틀 그라운드’를 연상시킨다. 촬영 기법 때문에 어지럽고 정신없다는 반응이 있는데?
하정우: 새롭게 시도한 방식이라 초반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게임에 익숙한 10대, 20대들은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도 비슷한 부류의 게임을 안 해봐서 새로웠다. ‘이런 형식의 영화다’라는 걸 사전에 알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전처럼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몸을 맡기고 체험하듯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10. 영어 대사가 80% 이상이다.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나?
하정우: 외우고 말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감정 연기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예를 들어 순간적으로 확 튀어나오는 리액션이 있는데, 머리로 한 번 갔다가 영어로 뱉어야 했다. 즉각 나올 수 있게끔 하는 훈련을 했다.

10. 욕은 한국말로 하던데?
하정우: 촬영하면서 욕 대사가 점점 늘어났다.(웃음) 욕까지 영어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혼잣말이나 욕은 한국말로 해야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10. ‘더 테러 라이브’ ‘터널’에 이어 또 제한된 장소에서 연기를 펼쳤다. 경험이 있어서 좀 더 수월하지 않았나?
하정우: 고립된 곳이 굉장히 비좁아서 정신이 없었다. ‘터널’을 찍을 때는 차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협소한 공간에 세팀의 촬영 감독님이 들어와서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그랬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패턴의 연기를 보여드리면서 ‘관객이 재미있게 봐줄까’를 고민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인이어 폭탄이 있었고 ‘터널’에서는 외부의 공사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긴장감이 있었다. 이번엔 긴장감을 형성시키는 하나의 설정보다 여러 가지 미션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참견해야 했고, 옆에는 납치한 ‘킹’이 누워 있었다. 어떻게 연기해야 재미있을까 고민했다.

10. 외국인 용병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대단했다. 지금보다 살이 쪄 보이던데.
하정우: 외국 배우들이 워낙 덩치가 좋아서 운동으로 몸을 불렸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5kg이 더 나갔다. 몸을 크게 만드니까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아 보여서 좋았다.

10. 에이헵이라는 인물은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다른데 어떻게 보면 될까?
하정우: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리더로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본성 자체가 나쁜 사람이냐 등 물음표를 던져 놓고 마지막 낙하산 장면에서 해답을 주고 싶었다. 극한 상황이 왔을 때 판단하고, 결정하고, 또 고립되고 방치되는 동안 인물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시작점 자체가 바닥인 인물이다. 이 인물의 성장을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PMC: 더 벙커’의 하정우가 “극 중 에이헵의 성장을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밝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PMC: 더 벙커’의 하정우가 “극 중 에이헵의 성장을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밝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사과 먹방’이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왜 사과였나?
하정우: 사실 사과를 별로 안 좋아한다. 소양인이라 사과, 오렌지, 망고는 잘 안 맞는다. 아삭아삭 소리가 좋아서 선택한 것 같다. 제 의도는 아니다. 장면 자체가 감독의 취향이다. 사과를 먹는 건 ‘더 테러 라이브’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넥타이를 매고, 재킷 상의를 갈아입는 것과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감독이 그렇게 정신 사납게 뭘 하는 걸 좋아한다.(웃음)

10. 영어 대사부터 외국인 배우들까지 ‘PMC: 더 벙커’는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인가?
하정우: 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한국영화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졌다. ‘신과 함께’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PMC: 더 벙커’를 기획, 제작할 때도 우리나라 중심의 글로벌한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렇게 밀어붙였다. 제작자들이 시장을 더욱 넓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통할 수 있을 것 같다. ‘신과 함께’가 첫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미국에서 신파가 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더라. 넷플릭스에서도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를 높이 산다고 했다. 여러 모로 반가운 이야기들이다.

10. 영어 대사로 연기하는 걸 보니 할리우드 진출이 멀지 않아 보인다.
하정우: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PMC: 더 벙커’를 찍으면서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영어 대사 연기는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힘이 확장된 거라고 생각한다.

10. 주로 남자들과 호흡한다. 이번 영화에도 멜로가 없다. 여배우와 러브라인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하정우: 차기작 ‘백두산’에서 수지가 아내다. 그런데 단 한 장면도 만나지 않는다. 난 이병헌 형님과 백두산으로 가고, 수지는 서울에서 찍는다. ‘보스턴 1947’은 남자 둘 데리고 보스턴에 가는 이야기고, ‘피랍’도 남자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이 세 작품을 찍고 나면 44살이 된다. 로맨스에 관심이 많다. ‘뉴욕의 가을’ ‘러브 어페어’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10. 최근에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에 주로 출연하고 있는데?
하정우: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트 보이즈’ ‘러브픽션’ ‘멋진하루’ 같은 작품을 통해 성장했다. 소소한 작품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싱글라이더’에 제작자로 참여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제작비가 많이 올라갔다. 요즘은 50억도 적은 예산이라더라. 영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다. 그만큼 돈이 들어간다. 대작 영화를 일부러 선택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이야기, 소소한 제작 방식을 늘 놓지 않으려고 한다.

10.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하정우: 시나리오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람이 잘 맞으면 참여하고 싶어진다. 부족한 부분은 함께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사람이 안 맞으면 발전시키기 힘들다. 김병우 감독, 김성훈 감독, 윤종빈 감독 등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참 좋았다.

10. ‘신과함께3’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정우: 정해진 건 아직 없다. 제 생각이지만 물리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3년 후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이 다른 작품을 먼저 찍을지, ‘신과 함께’ 3, 4편을 연달아 찍을지 아직 이야기를 나눠보진 않았다.

배우 하정우가 “로맨스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정우가 “로맨스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이어 세 번째 연출작도 준비 중인 걸로 안다. 어떤 작품인가?
하정우: 다음 주에 초고가 나온다. 그것을 바탕으로 천천히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원래 하와이 코리아타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 아이템을 듣는 순간 흥미롭다고 생각해 영화화에 착수했다. 기자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같은 느낌은 아니다. 장르적으로 따지면 케이퍼 무비(범죄 영화의 하위장르 중 하나로,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작품)다.

10. 출연도 하나?
하정우: 조연 역할로 10회차 미만을 생각하고 있다.

10. ‘2018 Asia Artist Awards’ 시상식에서 가수 선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듯한 영상이 찍혀 오해가 불거졌다. 어떤 상황이었나?
하정우: 원더걸스 팬이다. 처음 본 선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팬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주지훈에게 ‘어서 악수하라’라고 말한 건데 그렇게 잡혔더라. 억울하진 않았고 그냥 웃겼다. 난 레드벨벳 슬기도 좋고, 트와이스 채영도 좋다. 걸그룹들을 다 좋아한다.

10.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하정우: 얼마전 촬영을 마친 ‘클로젯'(2019)이란 영화를 찍을 때 아역 배우들과 함께했는데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을 보니 결혼하고 싶더라. 결혼이라는 게 이번 주에 해야지, 내년 상반기 안에 해야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노력하고 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도 얘기한다. 마흔다섯 안에 하는 게 목표다.

10. 결혼을 한다면 2세 계획은?
하정우: 아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카니발이나 12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싶다.

10. 배우로 활동하면서 후회했거나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나?
하정우: 성격상 아쉬워하지 않는다. 어떠한 순간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쉬웠다고 말을 뱉는 순간 진짜 아쉬운 순간이 될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운이 좋았다. 나도 나약한 인간인데, 능력 밖의 일을 선택하고, 결과물을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해냈을 때’ 어떻게 해냈지?’ 하는 생각도 했다.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잘 버텨왔다.

10. 최근 한 설문에서 올해를 빛낸 배우 2위에 올랐는데?
하정우: 너무 좋다. 늘 5위 안에만 들어주면 좋겠다. 하하.

10. 아버지(김용건)는 ‘PMC: 더 벙커’를 보고 뭐라고 하셨나?
하정우: 뭐 늘 그랬듯 ‘멋있었어. 좋았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정신 사나웠다고 하시더라. 그런 영화니까 부정할 수 없다.

10.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정우: 우리 영화는 D열 정도에서 보는 걸 추천한다. 무대인사 때문에 맨 앞자리를 선택했다면 어쩔 수 없는데 A~B열은 아닌 것 같다. ‘서편제’ 같은 영화도 맨 앞에서 보면 어지럽지 않나?(웃음)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