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도어락’에서 오피스텔 경비원 한동훈을 연기한 배우 이가섭. /이승현 기자 lsh87@
영화 ‘도어락’에서 오피스텔 경비원 한동훈을 연기한 배우 이가섭. /이승현 기자 lsh87@
“일부러 무섭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똑같은 대사라도 테이크를 갈 때마다 제 눈빛도 바뀌어요. 주변 상황이나 상대 배우의 연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니까요.”

이가섭은 영화 ‘도어락’의 숨은 주인공이다. 그가 연기한 한동훈은 극 중 경민(공효진)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 경비원으로, 경민을 괴롭히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의뭉스럽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가섭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도어락’은 주거의 안전과 소통의 부재, 방관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이가섭은 현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현실성에 공감했다. 영화에 출연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물론”이라고 답했다.

“저도 8년째 혼자 자취를 하고 있어요. 항상 도어락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죠. 영화처럼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공감이 됐어요. 가장 따뜻해야 할 공간이 차가운 공간으로 변질되기 때문에 공포감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경민처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나만의 공간을 침범 당한다면 그와 비슷하게 온몸이 굳어버릴 것 같아요.”

영화 ‘도어락’의 한 장면.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도어락’의 한 장면.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가섭의 첫 출연작은 독립영화 ‘복무태만’(2011)이다. 막 촬영을 마친 영화 ‘니나 내나’까지 합치면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데뷔 연차에 비해 출연작이 적은 이유에 대해 이가섭은 “오디션을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봤던 오디션에서도 저를 불러주시진 않았다”며 멋쩍어했다. 하지만 그의 묵묵한 진심은 영화 ‘폭력의 씨앗’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이 영화로 지난 10월 열린 제55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폭력의 씨앗’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트로피를 받아드니 정말 울컥했습니다. 공부로도 상을 탄 적이 없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돼서 부모님께 죄송하고 또 감사했어요. 모든 것에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름을 알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하자 이가섭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항상 행복하고 재밌게 살아왔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며 “지나치게 짜인 계획 안에 나를 가두는 편은 아니다. 부족함을 채우면서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가섭은 “눈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현 기자 lsh87@
이가섭은 “눈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현 기자 lsh87@
이가섭은 고등학교 때까지 바둑을 공부했다. 고3 때 입시를 준비하다가 연기로 진로를 바꿨다. 이가섭은 “10여년 동안 하던 것을 제쳐두고 갑자기 연기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바둑은 내적으로 표현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포커페이스를 한 채 흑돌과 백돌의 수를 다 읽어내야 하죠. 연기도 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바둑보다 표출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이 넓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답답했던 거 같아요. 너무 제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를 밖으로 꺼내고 싶었어요.”

이가섭은 “바둑을 뒀던 경험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하니 ‘눈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단다.

“가까운 걸 볼 때, 멀리 있는 걸 볼 때, 혹은 좋아하는 걸 볼 때, 싫어하는 걸 볼 때 사람의 동공은 달라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매번 달라지고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눈을 갖고 싶어요. 너무 어렵겠죠?”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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