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지난 20일 종영한 KBS2 ‘인형의 집’에서 홍강희를 연기한 배우 김지성. / 이승현 기자 lsh87@
지난 20일 종영한 KBS2 ‘인형의 집’에서 홍강희를 연기한 배우 김지성. / 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김지성은 KBS2 일일드라마 ‘인형의 집’에 캐스팅되고도 부모님에게 얼른 말씀 드리지 못했다. 출연이 불발돼 실망감을 드릴까 염려해서였다. 김지성의 걱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7년 동안 가수 연습생으로 지내면서 데뷔가 어그러진 게 이미 여러 번. 트라우마와도 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는 첫 촬영 날이 돼서야 부모님에게 드라마 출연 소식을 알렸다.

요즘은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과 낙곱새(낙지+곱창+새우 전골)를 먹으러 갔다가 식당 주인과 옆 자리 손님이 자신을 알아본 덕분에 어깨가 으쓱했단다. 주변 사람들이 김지성에게 “혹시 드라마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자식 자랑에 서투른 부모님이 짐짓 모르는 척했지만 그래도 뿌듯해하시는 게 다 느껴져서 귀여웠다고 그는 말했다.

김지성은 ‘인형의 집’에서 금영숙(최명길)의 막내 딸 홍강희를 연기했다. 철없지만 밝은 성격으로 작품에 코믹한 요소를 더했다. 남매로 호흡을 맞춘 박하나, 김기두, 정수영 등과는 열 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모두들 친동생처럼 대해준 덕분에 나이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단다. 김지성은 “막내로 지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며 웃었다.

“‘학교 2017’을 찍을 땐 또래 배우들을 많이 만났는데 ‘인형의 집’에서는 내내 선배님들과 같이 지냈어요. 그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배우의 길을 먼저 걸으셨던 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들었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인생 조언도 들었어요. 한상진 선배님은 책도 선물해주셨답니다!”

홍강희는 명랑한 성격이었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친자매인 줄 알고 자란 홍세연과 진짜 피를 나눈 언니인 은경혜(왕빛나) 사이를 오가며 내적인 갈등을 겪었다. 김지성은 “20년 동안 같이 산 언니(홍세연)가 친언니가 아니라고 해서 한 순간에 뒤돌아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반면 경혜 언니는 내 핏줄이라고 하니, 세연 언니와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 느껴졌다”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자 많이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촬영 현장에서 막내로 지내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는 배우 김지성.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촬영 현장에서 막내로 지내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는 배우 김지성.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가족으로 얽힌 박하나, 왕빛나, 최명길과는 자주 호흡을 맞췄다. 이들과 호흡을 묻자 신이 나서 칭찬을 늘어놨다.

“우선 하나 언니는 정말 하얗고 예뻐요. 일일드라마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았죠. 그리고 빛나 언니는 대학교 선배님이기도 한데요, 성격이 정말 좋으셔서 스태프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어요. 평소엔 천사 같은데 촬영만 시작되면 완전히 달라져서 꼭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명길 선생님은 정말 프로페셔널하세요. ‘인형의 집’을 하기 전부터 팬이었는데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죠. 저도 30년 뒤엔 최명길 선생님 같은 선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은 지난 1월 시작돼 이달 초 끝났다. 한파와 폭염을 모두 겪어 힘들었을 법도 한데 김지성은 “선배님들 말씀이,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한 번 해봤으니 다음 작품을 할 땐 (체력 분배가) 수월할 거라고 하셨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그에겐 매 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연출을 맡은 김성휘 감독도 ‘(홍)강희,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며 그에게 ‘판’을 깔아줬다.

김지성은 2016년 Mnet ‘프로듀스101’으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동안 10대와 20대 팬들만 자신을 알아봤는데 ‘인형의 집’에 출연하고 나서부터는 아주머니 팬들도 꽤 생겼다. 식당에서 반찬 서비스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는 “이모가 많이 생긴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한 덕에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지금은 배우 데뷔를 준비 중인 동생 김홍은에게도 그는 모범이 되고 싶어 한다. 어깨에 진 짐이 많아 때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홍강희가 부럽기도 했단다.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에요, 전.(웃음) 제가 빨리 자리를 잡아서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니가 되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까 책임감이 좀 더 커졌죠. 동생을 보면 5년 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요. 서로를 붙잡고 한풀이도 하고 고민도 나눕니다. 동생은 아직 어리고 사회생활 경험도 저보단 적으니까 제가 터득한 노하우를 전해주려고요.”

김지성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늘 준비돼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김지성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늘 준비돼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가수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코앞까지 왔던 데뷔가 물거품 된 것만 여러 번이다. 지금은 활동하는 걸그룹들을 보며 무대에 대한 갈증을 푼다. 김지성은 “에이핑크와 블랙핑크의 ‘광팬’”이라고 했다. 앨범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까지 꿰고 있단다. 자리를 함께한 소속사 관계자는 “지성이가 차 안에서 하도 노래를 많이 불러서 나까지 외울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지성은 “블랙핑크 팬카페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절차가 꽤 까다롭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연습생으로 지내는 7년 동안 김지성은 안부 인사처럼 묻는 ‘TV 언제 나와?’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그에겐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소중하다. 김지성은 “긴 시간 데뷔를 준비하면서 스태프들에게 잘하자고 다짐하게 됐다”며 “나를 위해 이리저리로 뛰어다니시는 분들이다. 이 분들이 옆에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인생에는 총 세 번의 기회가 온대요.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그 얘기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는데 ‘인형의 집’을 찍으면서 아버지 말씀이 옳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외모와 실력 모두 늘 갖춰져 있으려고 해요.”

쉬는 날엔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본다. 방학 기간인 동생과 함께 대사도 따라한다. 김지성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영화 ‘노트북’과 드라마 ‘연애의 발견’이다. 한 때 한집살이를 했던 소속사 관계자가 진저리를 칠 정도로 여러 번 봤단다. 김지성은 “‘연애의 발견’처럼 현실적인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액션이나 추리극 같은 장르물에도 관심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이순재 선생님과 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모든 분들의 우상 같은 존재시잖아요.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연기를 준비하시고 또 연기하시는지,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많이 배우고 싶어요.”

김지성은 시간이 흘러도 배움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변할 수 있잖아요. 그래도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태도는 잃고 싶지 않아요.”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김지성의 포부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그냥 ‘김지성, 괜찮더라’는 담백한 말로 불리고 싶단다.

“나쁜 기억은 지우려고 한다잖아요. 저도 힘들었던 때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나쁜 기억도 아련한 추억이 되더라고요. 힘든 시간이 와도 조금만 견디고 이겨내면, 틀림없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결과가 곁에 있을 거라고 예전의 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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