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KBS 수목드라마 ‘슈츠’ 에서 열연한 배우 진희경.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KBS 수목드라마 ‘슈츠’ 에서 열연한 배우 진희경.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저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연기를 할 때는 어떤 역이든 제 속의 여러 색깔들을 극대화하려고 해요. 그래서 목소리도 여러 종류를 가지고 있어요. ‘슈츠’의 강 대표가 됐을 때는 진정성있는 음색을 꺼냈죠.”

최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슈츠’에서 강하연 강&함 대표 역을 맡은 배우 진희경은 이렇게 말했다. 극 중 강하연(진희경)은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캐릭터도, 그 캐릭터에 투영된 배우도 그랬다. 국내 드라마에서 ‘무패전설’의 전문직 후배 남성과 그를 질투하는 또 다른 후배 남성을, 또 자신이 세운 회사를 그처럼 우아하고 노련하게 이끈 중견 여성 기업인 역은 흔하지 않았다. 이 단비 같은 캐릭터를 진희경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했다.

“저는 독기가 없는 편이에요. ‘이럴 수 있어’ 하고 포기가 빠르죠.(웃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어, 그 차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돼’라고 생각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는 편이에요. 최선이라는 강으로 향하는 물줄기는 많아요. 그래서 배우 인생을 살면서 현장에서도 ‘조금 돌아가면 어때, 내가 조금 기다리면 어때’라고 여겨왔어요.”

영화 ‘커피 카피 코피’(1994)로 데뷔해 어느덧 연기자의 길을 걸은 지 20년이 넘은 그에게도 ‘슈츠’는 특별한 현장이었다. 진희경은 “멋있는 현장이자 모범적인 배우들의 모범적인 현장이었다”고 밝혔다.

“저랑 (장)동건이 둘 다 지금까지의 촬영 중 베스트로 꼽은 현장이에요. 누구 하나 얼굴 붉히는 일이 없이, 인상 쓰는 일 없이 서로를 배려했고 그 중심에 장동건과 박형식이 있었어요. 동건이는 자기 신이 아닌 장면을 촬영할 때도 상대 배우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줬어요. 형식이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요. 그 둘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했죠.”

‘슈츠’의 숨은 주역 진희경.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슈츠’의 숨은 주역 진희경.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촬영에 돌입하기 전부터 원작 미국드라마 ‘슈츠’의 팬이었던 진희경은 자신에게 강하연 역(원작에서 제시카 역)을 제안하고 촬영 후엔 “대체불가”라고 찬사를 보낸 김진우 감독에게도 감사함을 표현했다.

“제가 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제 안에 있는 어떤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잡아줬죠.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배우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소소하고 세세한 부분을 짚어줬어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많은 감독님이에요. 강하연 캐릭터에 대해서도 자칫 날카롭거나 표독스러워지지 않게 표현하자고 같이 고민을 많이 했고요. 자신의 것만을 지키는 이기적인 인물이 아니라 자기 사람들을 잘 지키려는 그릇이 큰 캐릭터였거든요. 남자로 치면 장군감이죠.(웃음)”

진희경은 역할이 크든, 작든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배우다. 그는 “현실이 어떻든 잘 버텨내고 내 몫을 가지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편“이라며 ”제 필모그래피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한 단계씩 밟아왔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강대표 캐릭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모적인 캐릭터들을 제안이 오는 대로 다 받았다면 강 대표는 못했을 것 같아요. 저와 연배가 비슷한 배우들끼리 ‘내 캐릭터의 때가 있다’고 종종 얘기하곤 합니다. 곧 개봉하는 영화 ‘허스토리’가 기대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성실하게 그 자리를 지킨 배우들이 흔치 않은 캐릭터들을 맡아 제 몫을 할 영화일 것 같아서입니다. 좋은 기회가 온 거죠.”

진희경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이야기다.

“저는 이야기를 봐요. 이야기가 재밌는지, 그 다음에 제 캐릭터가 무엇인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때까지 살펴봤다면 역할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이 이야기를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제가 잘 쓰일 수 있을까가 중요하죠. 제가 잘 쓰였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요.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벙거지 모자 쓰고 슬리퍼를 끌고 다녔던 가나코 황(황복희) 역도 그래서 너무나도 재밌고 행복했어요.”

진희경은 갈구하고 아등바등해봐야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금 주어진 이 순간을 잘 해내야 찾아오는 다음 단계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어요. 배우로서도, 인간 진희경으로서 삶의 자세도 그러했으면 해요. 굳이 점프를 할 필요는 없어요. 제자리걸음이면 어때요? 조금 쉬어갈 수도 있죠. 쉬어가는 재미도 있잖아요. 당분간은 평범한 자연인 진희경으로서 여유를 찾다가 좋은 작품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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