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TV조선 ‘대군 – 사랑을 그리다’에서 루시개를 연기한 배우 손지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TV조선 ‘대군 – 사랑을 그리다’에서 루시개를 연기한 배우 손지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손지현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2009년 그룹 포미닛의 멤버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그는 2016년 팀이 해체한 뒤 배우로 전향했다. 이름도 바꿨다. 어머니의 성인 ‘손’을 붙였다. 데뷔 10년 차를 맞았지만 손지현은 다시 신인이 됐다고 느낀다.

◆ “저 고생 좋아해요! 시켜만 주세요!”

자신과 상반된 성격을 가진 루시개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손지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자신과 상반된 성격을 가진 루시개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손지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이하 ‘대군’)는 손지현이 이름을 바꾼 뒤 처음 참여한 작품이다. 손지현은 이휘(윤시윤)의 호위무사인 루시개를 연기했다. 그는 자신과 상반되는 루시개의 성격에 끌렸다고 한다. “나는 화를 잘 못내는 성격인데, 감정에 충실한 루시개를 연기하면서 치유를 받았다”고 했다. 루시개의 끈질긴 생명력도 손지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아이에요. 너무 불쌍했고 동시에 마음을 울렸죠.”

손지현은 루시개를 연기하기 위해 석 달간 액션 스쿨에 다녔다. “칼을 두세 번만 휘둘러도 팔 힘이 달리더라”고 했다. 체력 증진을 위해 복싱 학원도 다녔다. ‘대군’을 연출한 김정민 감독을 만난 날, 손지현은 “고생이 심할 것”이라는 김 감독의 말에 “저 고생 좋아해요. 시켜만 주세요”라고 대답하는 당돌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가 의욕 넘쳐 보였대요. 사실 그게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는데, 진심이 전해졌나 봐요. 제가 뭐든 잘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하하. 제 오디션 영상을 작가님과 공유하시더니 ‘한 번 맡겨보자’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함께 연기한 주연배우들도 다들 선하시고 저를 굉장히 잘 챙겨주셨어요. 제가 인복이 있나 봐요.(웃음)”

윤시윤은 손지현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에게 뼈있는 조언을 해줬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서 발견되는 주눅 든 모습이 그에게서도 보인다면서 ‘그냥 너 자신을 믿고 연기하면 된다’고 해줬단다. 손지현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시윤 오빠가 알아줬다”며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라고 했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의 이사인 배우 정우성 또한 손지현에게 귀한 조언을 해주는 선배다. 손지현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많이 하신다”며 “‘요즘 고민은 뭐야?’ ‘어떻게 지내?’ 같은 간단한 질문인데도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고 말했다. 덕분에 손지현은 예전보다 훨씬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연기를 대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오디션에서 100번 넘게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많이 강해지기도 했고요.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요? 전혀요. 가수로서 경력이 지금 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리고 (포미닛 해체 후) 1년 동안 쉬면서 많이 내려놓았어요.”

◆ 포미닛 해체 이후 2년, 손지현이 다시 돌아온 이유

손지현은 한 때 연예계를 떠날 생각을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손지현은 한 때 연예계를 떠날 생각을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포미닛이 해체한 뒤 손지현은 연예계를 떠날 생각까지 했다. 허무함 때문이다. “평생을 다 바쳐서 해온 일이 없어지면 누구라도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도전해보지 못한 일을 갈망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도 있었다. 손지현이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게 된 이유다.

요즘도 노래방에 가면 세 시간은 기본으로 넘길 정도로 춤과 노래를 향한 애정은 뜨겁다. 하지만 당분간은 취미로만 즐길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뷰마다 포미닛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는 그는 행여 멤버들에게 피해가 갈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어렸을 땐 마냥 춤이 좋았어요. 평생 춤을 추면 행복할 것 같아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죠. 그런데 그게 일이 되다보니까 견뎌야 할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연습생 기간도 짧았던 데다가 사회생활을 처음 했던 거라 상처 받는 일들이 생겼죠. 제 부족함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어렸던 것 같아요, 그 땐. 여리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미안하죠.”

얼마 전 만난 중학교 동창생은 그에게 ‘성숙해졌다’는 말을 해줬다고 한다. “어렸을 때 전 좋아하는 일만 쫓아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젠 중도를 지키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변화는 사소한 곳에서부터 발견된다. 어린 시절 ‘관종’(관심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는 그는 요즘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지현은 “내가 지나온 모든 인연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며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 회사 식구들, 포미닛 멤버들 모두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배우게 만들었다”고 했다.

손지현은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무너질 것 같은 때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항상 버텨냈다. 마음이 정 고단할 땐 남동생에게 털어놓는다. 특별한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남동생에겐 자신의 고민을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손지현은 “동생이 인터뷰 때 자기 얘기 좀 하지 말랬는데…”라며 웃었다.

“연습생 때부터 위기의 순간은 늘 있었어요. 다만 많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제가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제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이 편한지 알게 됐어요. 경험이 많이 쌓인 데다 한 번 내려놓는 경험을 해봐서 그런지 제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지 알 것 같아요. 제가 할 일에 집중하고 저에 대해서 확신을 얻으려고 합니다.”

◆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손지현은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손지현은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요즘 손지현에게 필요한 건 편견 없는 시선이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지현은 그걸 원망하진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손지현은 사람들의 편견에 주눅 드는 대신 ‘내 갈 길을 꿋꿋이 가다보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보겠지’라고 믿기로 했다.

“조바심은 늘 있어요. 그걸 다스리려고 노력하죠. 조바심이 제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지나치면 부정적이게 되잖아요. 중간을 잘 지키고 싶어요. 적당한 욕심과 인내심을 갖고 제게 맞는 캐릭터를 만날 때까지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손지현은 연기를 좋아한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고 싶어 하는 그에게 연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손지현은 “다양한 환경을 만나는 것이나 다양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가 된다”고 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내면에는 도전과 자유로움에 대한 욕구가 요동친다. 그는 “액션이나 법정물 같은 장르물을 해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장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노력하면 성장한다. 재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대군-사랑을 그리다’는 그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연기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계기였지만 동시에 배우로서의 삶에 더 큰 기대를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제 재능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희망이 생겼어요.”

스무 살에 데뷔한 손지현은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 서른을 준비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덤덤하다. 손지현은 “언니들에게 물어보니 나이만 달라지는 거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래도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실수해도 예뻐 보일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것 같다”며 “동생들도 많이 생겼으니 좀 더 성숙해지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돌아보면 항상 불안해했던 것 같아서죠. 그런데 아마 말해줬어도 못 알아들었을 거예요. 하하하. 저는 늘 부딪혀 보고 깨닫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앞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하면서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것들을 사람들과 나눌 줄도 아는 사람이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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