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사진제공=CGV 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사진제공=CGV 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한동네 친구인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미스터리한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다. 제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본상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각국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은 작품에게 수여되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최고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을 수상했다.

‘초록물고기(1997)’를 시작으로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버닝’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녹록하지 않은 이야기를 줄곧 품어왔다. 8년 만에 감독의 역할로 돌아온 그를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칸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쏟아졌을 법 싶은데 이 감독은 처음 질문을 받는 양 깍듯했다.

10. 칸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이창동: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보통 칸에 나오는 영화들이 예술영화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다.그러다 보니 호불호가 나눠지기도 한다. ‘버닝’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들 좋다고 하니까 이게 어떤 방식으로 지금 전달되고 읽히는 건가 싶었다.

10. 수상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는지?

이창동: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국내 흥행이 ‘버닝’이라는 영화가 칸에서 거둔 결과에 올인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여러 정황이 겹쳐져서 그런 것 같은데, 결과 자체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만약 수상을 했다면, 관객들이 새롭고 낯설게 보인다 하더라도 오히려 인정받는 것이 돼서 좋게 해석하게 되는 감상의 어떤 이점이랄까 하는 지점이 사라졌다. 기대를 너무 높여놔서 실망감이 더 커져버린 것도 같다. 또한 수상으로 한국영화 전체에 자극이나 활력을 줄 수도 있었는데 사실 그 점이 아쉽다.

10. ‘버닝에서 해미가 하는 말들의 진실은?

이창동: 사실 종수만 이야기꾼이 아니다. 해미도 이야기를 한다. 언니 말에 따르면, 해미는 이야기를 잘 지어낸다고 한다. 해미에게도 분명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사람은 서사가 없으면 못 산다. 그게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미가 만든 이야기라면 해미는 도대체 왜 그런 서사를 만들어서 품고 다닐까? 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10. 해미를 향한 종수의 사랑은?

이창동: 이 영화 때문에 취재를 하면서 만났는데, 종수처럼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여자를 제대로 못 만나본 친구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충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건 그렇게 낭만적이고 뭐 대단하지 않아도 그냥 아주 작은 계기로도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

10. 마지막 씬, 마지막 버닝이란?

이창동: 느낌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마지막은 결국 거기에 어떤 의미나 상징이나 관념으로 관객한테 전달되기 보다는 그냥 느낌으로 전달되기 바란다. 그 다음에 거기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그냥 벌거벗은 이미지 그 자체, 그 감정도 그게 두려움인지 그냥 통쾌함인지 모르는 원초적인 막 태어난 생명체 같은 그런 그것 자체가 아닐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CGV 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CGV 아트하우스.
10.’버닝’을 향한 다양한 해석들은?

이창동: 각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자기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 가지고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당연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화의 구조 자체가 그러니까. 그렇다고 자기만의 서사가 옳은 것은 아니니, 다르게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의 서사에도 귀를 기울이고 서로 한 번 이야기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 ‘버닝속에 담기는 윌리엄 포크너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창동: 윌리엄 포크너와 무리카미 하루키의 대립이랄까. 개인적으로는 흥미 있는 지점이었다. 이 것은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 자신도 작가 출신이고 문학과 서사에 대해서 평생 생각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 포크너의 이야기랄까. 이 세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뭐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라서 소화가 잘 안 될 것 같은데…(웃음)

10. 이창동의 영화란?

이창동: 내 영화에 대한 약간의 오해랄까… 내가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았다. 그냥 질문할 뿐이다. 거기서 어떤 메시지나 뭔가를 받아들이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항상 질문했다. 그게 불편할 수도 있다. 질문 자체는 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질문은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