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KBS2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세진./사진제공=JBD엔터테인먼트
KBS2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세진./사진제공=JBD엔터테인먼트
KBS2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영화 ‘내부자들’ 속 배우 이병헌의 모습을 흉내 낸 개그맨 이세진이 유민상을 향해 “장난 나랑 하냐 지금?”이라고 묻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내부자들’의 대사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 하자”를 패러디한 유행어다. 이세진은 지난해 ‘1대 1’ 코너에서 이 유행어를 성공시켜 유망주로 떠올랐다. 소속사 JDB엔터테인먼트에서는 ‘2018년 가장 전망이 밝은 개그맨’으로 꼽힌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개그콘서트’ 리허설을 해요. 녹화는 수요일이고요. 목, 금요일엔 회의가 있어요. 기존 코너 아이템을 짜기도 하고 새 코너도 검사 받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요? 새로운 코너를 만드는 건 물론 어려워요.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코너에) 적응되면 금방 아이디어가 나와요.”

이세진은 언어유희에 강하다. ‘개그콘서트’ 데뷔 코너 ‘힙합의 신’을 시작으로 최근 내놓은 캐릭터 ‘DJ믹세진’까지 ‘말’로 사람을 웃긴다. “‘아구찜’과 ‘곱창’을 믹스했다”며 ‘아구창’을 외치는 식이다. 그는 “평소엔 ‘아재 개그’라고 욕먹는 말장난도 무대에서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며 “‘DJ 믹세진’ 캐릭터는 클럽 음악과 접목시켰더니 좀 더 세련돼졌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 1987′ 코너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이세진(왼쪽)과 신봉선/사진=’개그콘서트’ 방송화면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 1987′ 코너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이세진(왼쪽)과 신봉선/사진=’개그콘서트’ 방송화면
개그맨 장동민, 김대희, 신봉선과 함께 만드는 ‘대화가 필요해 1987’은 큰 배움의 기회다. 가장 선배인 김대희는 이세진보다 15년 먼저 KBS에 합격했다. 장동민과 신봉선은 각각 10년, 9년 선배다. 이세진은 “(선배들과 한 코너를 하게 돼)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조심스러웠다”며 “그런데 회의를 해보니까 다들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다. 후배들을 잘 배려해주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배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세진은 신봉선을 짝사랑하는 순정남으로 맹활약 중이다.

이세진은 초등학생 때부터 개그맨을 꿈꿨다. 고등학교 2학년 교내 축제에서 코믹 댄스로 공연한 것을 계기로 개그계에 발을 들였다. 인근 학교 축제에 찬조 공연을 가기도 하고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나가서 금상을 타기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대학로 갈갈이홀로 향했다. 이세진의 코믹댄스를 본 개그맨 장동혁은 “이건 장기자랑이지 개그가 아니다. 이제부터 (개그를) 배워라”고 했다. 그 때부터 3개월 동안 극단 막내 생활이 이어졌다. 겨울방학이 끝나면서 이세진은 갈갈이홀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1년 뒤 그는 대학로가 아닌 학교에 들어갔다. 서울예술대학교다.

“서울예술대학교에 개그클럽이라는 동아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휘재 선배, 신동엽 선배, 안재욱 선배, 송은이 선배…내로라하는 분들이 그 곳 출신이더라고요. ‘저길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연기학원에 다녔어요. 그 때 절 가르쳐주신 분이 배우 김동욱 씨에요. 선생님에게 잘 배운 덕분에 학교에도 입학하고 개그클럽에도 들어갔죠.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입니다.(웃음)”

이세진은 일찍부터 개그계 선배들에게 주목 받았다./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이세진은 일찍부터 개그계 선배들에게 주목 받았다./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이세진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막 스무 살이 된 그에게 그룹 틴틴파이브와 컬투가 손을 내밀었다. TV에도 나오고 라디오에도 나왔다. 대학로 컬투홀에서 극단 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이세진은 “그 땐 기고만장했다. 내가 연예인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가 인생의 쓴 맛을 본 건 2010년, 출연하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폐지되면서부터다. MBC 공개 코미디 ‘하땅사’로 옮겨갔지만 5개월 만에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설상가상으로 컬투홀도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았다. 갈 곳이 없어진 이세진은 함께 살던 서태훈과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다. 서태훈은 붙고 이세진은 떨어졌다. 이세진은 군대로 눈을 돌렸다. 마침 해군 홍보단에 자리가 났다기에 지원했다. 결과는 탈락. 이세진은 “1년 정도 폐인 생활을 했다. 잉여 인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스물다섯 살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 번 해군 홍보단에 지원서를 넣었다. 이번엔 합격이었다.

“군대에서 철이 들었어요.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일단 다이어트부터 하기로 했어요. 입대 당시 몸무게가 108kg까지 나갔거든요. 개그 아이디어도 많이 짜고 음악도 많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각종 군 행사를 진행하면서 감(感)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선·후임 개그맨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면서 ‘사회 나가면 열심히 해보자’고 의지를 다졌어요.”

이세진은 ‘개그콘서트’의 매력으로 친근함을 꼽았다./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이세진은 ‘개그콘서트’의 매력으로 친근함을 꼽았다./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군에서 전역한 뒤 계속해서 방송국의 문을 두드렸다. 시험에서 떨어져도 ‘나는 잘 하는 놈이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합격의 기쁨은 2014년 찾아왔다. KBS 29기 공채 개그맨이 된 그는 같은 해 ‘개그콘서트’의 ‘힙합의 신’ 코너로 데뷔했다. 첫 녹화 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세진의 개그에 객석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파트너인 서남용이 다음 대사를 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세진은 “울컥했다”며 “박수의 중독성이 강했다. 한 번 웃음의 맛을 보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힙합이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미국 래퍼 에미넴의 음악을 들으며 힙합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 전 지인과 음반을 준비했을 정도로 그의 열정은 뜨겁다. 최근에는 연남동에 작은 작업실을 빌렸다. 가사도 쓰고 레슨도 받는다. 그는 “미국에는 릴 디키처럼 코미디언이면서 힙합 가수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음악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이세진은 요즘 고민이 많다. 공개 코미디가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지는 반면 수위 조절은 예전보다 까다롭다. 자유로운 발상이 제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에는 ‘개그콘서트’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개그콘서트’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친근하죠.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개그는 많이 덜어내서 남녀노소가 편하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공개 코미디가 위기라고들 하잖아요. 그걸 극복해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죠. 개그 열심히 해서 행복해지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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